일하는 엄마, 일과 삶 사이에서 나를 찾다

"워킹맘의 무용담은 가열찼던 육아기"

by hyunju lee

나는 금융권에서 20년을 일했다.


거의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했고,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워킹맘이었다.

아이 둘을 낳고도 육아휴직 한 번 없이 계속 일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땐, 가정도 회사도 어느 곳도 온전하지 않았다.
한쪽은 늘 부족했고, 한쪽은 늘 죄책감이 남았다.

그 시절, 선배 워킹맘들이 이런 말을 해줬다.


“아이 어릴 땐 돈 안 남아.
가사도우미 월급 주고 나면 남는 게 없어.
그래도 일해야 해. 그 시절 커리어가 끊기지 않으면
나중에 그게 남는 거야.
돈은 아이들 다 키우고 나서 버는 거지.”


나는 그 말이 일리 있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일은 단순한 생계를 넘어서
나라는 사람을 증명해주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살았다.

버는 족족 도우미 월급으로 나가도,
그래도 출근했고, 일했고, 성과를 냈고, 버텼다.


그런데 지금, 아이들이 자라고
“이젠 워킹맘의 수확기?”라고 말할 수 있는 이 시점에
커리어에 위기가 찾아왔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나는,
뿌리기만 하고
정작 수확기엔 주저앉을지도 모르겠다.”


그 생각이 스쳤을 때,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건 단순히 일이 힘들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오랜 시간 애써 살아온 내 삶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그저 그렇게 끝나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깊은 감정이었다.


나는 지금, 멈추는 것이 아니다.
내 삶을 다시 정비하고 있는 중이다.

버려지는 게 아니라,
내가 ‘버틸 자리’를 다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건 포기가 아니라,
나를 다시 중심에 두기 위한 시작이다.


나는 아이 둘 모두
모유 수유가 잘되지 않았다.

조리원에 있을 때부터 유축기를 열심히 돌려도
정말 한 모금 겨우 나오는 정도였다.
젖병에 모인 그 소량의 모유를 보며
살면서 처음으로
‘나는 정말 루저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왜 그렇게까지
끝까지 해보겠다고 집착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모든 걸 잘 해내고 싶었던
그 지독한 성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첫째가 100일이 되기도 전에,
나는 다시 출근했다.

단유되지 않게 하려고
점심시간마다 수유실에 가서 유축기를 돌렸다.

그러다 한 달쯤 지났을 무렵,
회사에 큰 사고가 터졌다.
지금까지도 업계에서 회자될 정도로 임팩트가 컸다.

직접적인 내 실수는 아니었지만,
나는 그 일의 책임자였고,
정면으로 부딪혀야 했다.

사고가 터지고 단 하루 만에
내 몸은 자가 단유가 되어버렸다.

유축기를 돌릴 필요조차 없었다.

그렇게 모유 수유는 끝이 났다.


그 시절, 나는 매일 자정이 넘어서 퇴근했다.
집에 돌아와 잠든 아기를 바라보았지만
어떤 감정도 들지 않았다.

사랑스럽다, 예쁘다, 미안하다…
그 어떤 감정도 없었다.
그저 공허했고, 마비된 듯했다.


"아니 사람이 얼마나 힘들면 엄마가 이렇게 되는 거지?"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몇 시간 동안
가만히 아기를 바라보다가
동이 트기 전에 다시 회사로 향했다.

퇴근해도 잠들 수 없었고,
집에 있어도 쉬지 못했다.

그렇게 딱 한 달. 아니 지옥같은 한달.
다행히 사고는 잘 수습되었다.

그사고로 인해 작성했던 대고객 사과문은 이렇게 시작했다

"동트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고 하였습니다 "

고 썼지만

나는 지금 내삶이 가장 어둡다고 생각했다.

그저 일일뿐인데 감당하기 힘들었다.


지금 돌아봐도
그보다 더 잘할 수는 없었을 만큼
나는 정말 잘 해냈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그 한 달은
내게 ‘일’과 ‘삶’이란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새긴 시간이었다.

그때의 경험은
지금까지도 내 가장 큰 자산이다.


나는 버티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애써 살아낸 사람이었고,
그 시간은 지금까지도
나를 지탱하는 단단한 기억이다.


오늘 나는 사직서를 냈다.

그리고 회식 자리에서는,

내 아팠던 과거를 또다시

무용담처럼 이야기 했다.


이제는, 그렇게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나의 삶 그 자체를 기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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