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경력자에서, 다시 적응하는 한 사람으로
나는 증권사에서 10년을 일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시장 전문가로 성장했고, 업계에 평판도 쌓였다.
그런 내가 새롭게 옮겨간 곳에서는 이미
“10년차 전문계약직이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누구의 손도 빌리지 않고,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바로 성과를 보여줄 사람이라는 기대.
나는 그 기대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도 분명히 있었다.
10년 동안 매일같이 여의도로 향하던 발걸음
그날 아침, 처음으로 다른 길로 향했다.
혹시라도 지각할까 봐 새벽부터 지하철 시간표를 시뮬레이션했고,
무더운 한여름, 땀을 뻘뻘 흘리며 지하철 출구 계단을 올라가던 그 순간이 아직도 선명하다.
도착하자마자 느꼈다.
이건 생각보다 훨씬 낯선 하루겠구나.
신입사원에게는 그저 긴장되고 새로운 공간일 수 있다.
하지만 나 같은 경력사원에게는
그 낯섦을 ‘배움’이라 말하지 않고,
‘불편함‘ 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모든 게 새로웠다.
업무 시스템, 분위기, 프로세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것이 났설었다.
웬만한 건 스스로 해결하자,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도움을 청해야 하는 나 자신이 더 낯설었다.
가장 낯설었던 건,
사람들의 신기해 하는 눈빛과 질문들.
“증권사에서는 어떤 일 하셨어요?”
겉으론 웃고 있었지만,
눈빛마저 질문하고 있었다.
“전문계약직은 처음이에요.”
경력직은 ‘즉시 전력감’이라는 말은 맞지만,
그들도 알고 있다.
시스템과 업무를 알려주는 일도 만만치 않다는 걸.
점심시간.
새로운 팀원에 대한 배려
그 당시에는 고맙고 다정한 환대처럼 느껴졌다.
누가 새로 온 사람과 점심을 먹을지,
이미 정해져 있었고, 마치 ‘신입 맞이 순번제’ 같았다.
그때는 몰랐다.
나는 그저 감사했고,
어색하지 않게 하루를 넘길 수 있음에 안도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배려는 관계가 아니라 역할이었다.
(직장생활에서의 만남은 대부분 그렇기도하다)
일종의 ‘업무 분장’처럼 정리된 누군가의 친절.
그건 누군가가 의무적으로 감당해야 했던
'환대의 순서'였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들도 어색했을 것이다.
낯선 사람과 밥을 먹는 일이
사이좋음의 표현이라기보다,
‘부담의 분담’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으니까.
그 친절이 따뜻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지금 나는 안다. 그
배려는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 역시,
고객과의 점심시간이 더 편해졌다.
그날의 낯선 표정은 틀린 게 아니었다.
나는 잘 해내기 위해 온 사람이기도 했지만,
다시 배워야 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들에게 불편감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사소한 일마저 스스로 처리하려고 애썼고,
한 번 물은 건 반드시 적어두었다.
다시 묻지 않아도 되도록.
그렇게 생긴 건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아니라,
‘귀찮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이었다.
그날의 나는,
준비된 경력자가 아니라 다시 적응하는 중인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표정이, 새로운 시작의 첫 기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