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순간까지 내가 지켜낸 두 가지
퇴사는 그저 떠나는 일만이 아니다.
나는 마지막까지 ‘계속 있을 사람’처럼 일했고, 나답게 마무리했다.
나답게 떠난다는 말은 그저 ‘깔끔하게, 조용히’ 떠난다는 뜻이 아니다.
나에게 ‘나답게’란, 나의 두 가지, 강렬한 성향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지고는 못 사는 나
나는 원래 지고는 못 사는 사람이다.
딜링룸에서 일하면서도,
특히 비딩 할 때 끊임없이 딜러들을 푸쉬하고 압박했던 기억이 많다.
그때의 나는 실적보다 승부욕이 더 앞섰고, 가장 좋은 조건을 끌어내기 위해서라면 미안하다는 말보다 “한 번만 더 가격 다시보자.‘ 라는 말이 더 익숙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정말 고맙고, 또 미안한 마음이 크다. 비딩 때마다 부담을 견뎌준 딜러분들, 그 모든 압박을 받아주면서도 끝까지 거래를 이어준 분들이 있었기에 나는 나아갈 수 있었다.
할 말은 하고 산다.
나는 또, 하고 싶은 말은 결국 하고 마는 사람이다.
돌려 말하지 못하고, 애매하게 흐리는 걸 못 견디고, 정리되지 않은 채 덮는 걸 싫어한다.
누군가가 억울하게 궁지에 몰리는 것도 그냥 보고있지 못했다.
그래서 때로는 조직에서 '불편한 사람'이 되기도 했고,
침묵이 미덕인 문화 안에서 ‘부담스러운 사람’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말을 꺼내지 않으면 내가 부서지는 기분이 들었다.
정말 참을 수 없는 순간에 나는 결국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말을 남겼다.
이 두 가지는 내가 고치지 못한 결점일지도 모르지만,
동시에 나를 지탱해 준 에너지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지고는 못 살고, 할 말은 하고 사는 사람’으로 떠날 때도 그렇게 떠나고 싶었다.
마지막순간까지 열심히
나는 끝까지 가열차게 일했다. 이미 퇴사를 결심한 날도, 퇴사를 공식화 한 날도
나는 느슨해지지 않았다.
고객들에게는 ‘전혀 떠날 것 같지 않은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퇴직인사 마저도 힘든 상황, 내가 자초한 것이었다.
“진짜요? ”,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시는데, 진짜 떠나신다고요?”
몇몇 고객은 심지어 조금은 황당해했고, 조금은 배신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나의 마음, 나의 태도를 이해해 주신 분들에게 너무 감사한 마음이다.
나는 마지막까지, 내가 맺은 관계에 부끄럽지 않으려고 애썼다.
조직 안에서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매일 아침 책상 앞에 앉으면 힘이 났다.
그 힘의 원천은 하나였다. 지난 10년간, 내가 지치지 않고 일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조직의 인정도, 제도적 보상도 아닌 ‘고객의 신뢰와 업무 몰입’였다.
그들이 내 성과를 실감했고, 내 말에 귀 기울였고, 내 대응에 신뢰를 보내주었기에 나는 나 자신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였는지, 나는 퇴사를 앞두고 있으면서도 고객 앞에서는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오래 함께할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끝까지 관계를 지켰다.
이직을 앞두고 있었지만, 담당 거래처에는 향후 같이 만들어갈 일들을 계획하고, 다음 분기 전망을 꼼꼼히 정리해 주었고, 작은 요청도 빠짐없이 응답했다.
어쩌면 나는 이 조직에는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걸 느끼면서도, 고객에게는 끝까지 책임지고 싶은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퇴사를 앞두고 있었지만, 나는 업무의 마무리보다 ‘관계의 신뢰’를 더 먼저 생각했고,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 여전히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그건 내 안에 남은 직업윤리였고, 어쩌면 마지막까지 ‘나답게 떠나기’ 위한 방식이기도 했다.
조직과의 관계는 끝나더라도, 내가 맺었던 사람들과의 신뢰는 가능하면 끝나지 않게 하고 싶었다.
나는 퇴사자였지만, 동시에 끝까지 일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기록은 퇴사를 위한 것이었고, 진심은 ‘남아 있는 내 역할’을 위한 것이었다.
마지막 인사도, 나답게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사실 퇴사 인사는 이 말 하나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일했고, 누구와 일했고, 어떤 마음으로 떠나는지를 나답게, 끝까지 정리하고 싶었다.
내 마지막 인사는, 누구를 향한 사과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짧은 고백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남기는 하나의 인정이었다.
비딩 때마다 부담을 주었지만 미안했다는 말, 초기에 아이처럼 챙김 받았던 시절의 감사, 지나간 자리들에 대한 애정, 그리고 이제는 나아가겠다는 결심.
나는 잘 쓰려고 했다. 유쾌하면서도 따뜻하게, 감정을 과하지 않게 담으면서도 진심이 빠져 보이지 않게.
정리하면서 알게 됐다. ‘나답게 떠난다’는 건, 떠나기 전 마지막 인사까지 내 손으로 잘 마무리하는 거라는 걸.
그래서 나는 누가 읽든 안 읽든, 누가 기억하든 안 하든, 진심을 담았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나는 끝까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예의 있게, 감정 없이, 하지만 분명하게 남긴 사람이 되었다는 걸.
퇴사는 기록이다. 기록은 말보다 오래 남는다.
나는 퇴사를 말하지 않았지만, 퇴사를 ‘정리’했다.
그게 나다운 마지막 인사였고, 내가 조직에 남기는 진짜 인사였고, ‘나답게 떠난다’는 말의 진짜 의미이기도 했다.
나는 끝까지 일했고, 끝까지 내가 함께할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건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그게 내가 일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퇴사는 나의 마지막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일마저, 나답게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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