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덧 중입니다만
"여보, 나 오뎅 먹고 싶어. "(어묵이라고 하면 그 느낌이 살지 않는다.)
"응? 지금 만들어 줄까?"
"아니, 그거 말고 휴게소에서 파는 오뎅 있잖아, 딱 그 오뎅이 먹고 싶어."
어느 겨울, 일요일밤이었고 남편과 나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화면에서 오뎅이 나왔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갑자기, 오뎅이 먹고 싶었다. 남편이 만들어주는 오뎅은 아주 맛있다. 사실 추운 겨울에 호호 불어먹는 오뎅이 맛이 없기는 힘들지만 남편의 오뎅은 특히나 더 맛이 좋다.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냥 남편이 만들어준다고 말하자 내입에서는 "아니, 그거 말고."라는 말이 나왔다. 잠을 자기에도 충분한 늦은 시간이었다. 그냥 자고 싶지가 않았던 건지 남편을 고생시키고 싶었던 건지 배부른 임신부는 남편에게 갑자기 1시간 거리의 휴게소에서 파는 오뎅이 먹고 싶다고 했다. 힘들었던 입덧시기를 지났고 몸과 마음이 모두 평안한 시기였다. 모든 음식들이 하나같이 다 맛있었고 더 못 먹어 아쉬웠다. 갑자기 오뎅이 먹고 싶다고 말했고 남편은 재미있게 보던 방송을 멈추고 언제나처럼 금방이라도 만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오해하지 말자. 자상한 스타일은 아니다. 아마 본인도 오뎅을 먹고 싶었던 것 같다.) 배부른 아내가 바라는 것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휴게소에서 파는 그 오뎅이 먹고 싶다고 말하자 남편은 잠시 머뭇거리며 꼭 그게 먹고 싶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대답했다. 지금은 너무 늦었으니 내일 가는 건 어떻겠냐고 다시 물어왔다.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잠시 후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무렇지 않게 괜찮다고 말해놓고 1분도 안 되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배불뚝이를 본 남편은 몹시 당황했다.
"에? 지금 우는 거야?"
"몰라,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
"오뎅 먹으러 가자. 그렇게 먹고 싶었어?"
"아니야, 먹으러 안 갈 거야.. 뭐 때문인지 나도 모르겠는데 그냥 눈물이 나."
빨리 일어나라고. 옷 입고 오뎅 먹으러 가자고. 조금의 실랑이를 하고는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옷을 입었다. 차를 타고 휴게소로 가는데 기분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변태인가. 임신부 변태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차를 타고 가며 점점 도시를 빠져나가는 기분도, 느껴지는 차가운 겨울의 공기도 상쾌하고 좋았다. 좀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잊혀질 정도였다.
"그 오뎅이 그렇게 먹고 싶었으면 말을 하지. 왜 괜찮다고 해?".
"아니야, 그 오뎅이 너무 먹고 싶었다기보다는 자기가 바로 가자고 안 한 게 서운했나 봐."
"... 그거 때문에 그랬구나. 사실 내일 아침에 출근도 해야 되고 좀 피곤하긴 했어. 그래도 자기가 먹고 싶다고 해서 만들어준다고 했는데 그것도 싫다고 하니까 나도 좀 섭섭했어. 내 입장은 하나도 이해 안 해주는 것 같아서."
그랬다. 사실 남편도 일하고 집에 돌아와 배부른 아내를 위해 청소를 하고 음식도 하며 바쁘고 힘든 나날들을 보내는데 나는 고맙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 더 바랬던 것 같다. 갑자기 가슴속에서 팽팽하던 끈이 탁 하고 끊어지며 눈물이 났다.
"그래 나도 (엉엉) 이해해. 엄청 서운했던 것도 아니고 (엉엉) 자기 마음 이해는 됐는데(엉엉) 그냥(엉엉) 눈물이(엉엉) 났어. 호르몬이(엉엉) 이상한가 봐. 자꾸 눈물이 나.(엉엉엉-통곡 중)
남편은 어쩔 줄 몰라했고 호르몬이 이상하다는 임신부는 엉엉 울었다. 남편한테 미안했고 고마웠고 또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지만 엉엉 울고 있는 내가 가엽기도 또 웃기기도 했다. 손을 잡아주던 남편은 정차할 곳을 찾아 잠시 차를 정차해 두고, 운전석에서 조수석을 향해 상체를 쭈욱 뺀 한껏 엉거주춤한 자세로 꼭 안아주었다. 울고 나니 기분이 상쾌해졌다. 그 호르몬은 울고 나면 정상으로 돌아오나 보다. 눈물의 포옹을 끝내고 우리는 이 사건의 발단이자 우리의 목적지인 오뎅휴게소로 향했다. 한겨울의 바깥오뎅은 역시나 말해 뭐 해. 울고 나서 먹는 오뎅은 더 맛있다고 왜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은 거야. 이제부터 슬플 때면 오뎅이다. 콧물을 훌쩍이며 오뎅을 먹고 후후 불며 오뎅국물을 마셨다. 남편의 커다란 손을 잡고, 남편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었다. 뜨거운 핫쵸코도 마셨다. 남편은 두 손으로 내 양볼을 잡고는 "으이그~"라고 했고 나는 "뭐! 뭐!" 하며 발끝을 세우고 웃었다. 겨울바람은 차가웠고 휴게소는 사람이 없어 조용하고 어두웠다. 어두운 조명 속에서 우리는 드라마 속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서로를 바라보았고 검지손가락 한마디만큼 서로를 더 이해했다.
임신 초기, 입덧이 심했다. 일어나지도 못하고 링겔만 맞으며 누워있었다까지는 아니었지만 24시간 내내 더부룩한 속을 안고 살았다. 하루종일 체한 것 같은 그 불편하고 거북한 느낌은 먹는 게 삶의 아주 큰 기쁨인 사람을 정말 힘들게 했다. 먹고 싶은 음식을 힘들게 찾아 먹고 나면 안 좋은 속을 부여잡고 눕거나, 조금이라도 내려가길 바라며 걷거나, 이 모든 것들이 통하지 않으면 토했다. 최대한 덜 토하고 싶은 마음에 걷기도 하고 누워있기만도 했다. 속을 비워내면 먹고 싶은 게 생기고, 먹고 나면 욕실 앞에 앉아있거나 누워있었다. 원래 좋아하던 음식들을 냄새도 맡기 싫어졌다. 물론 가장 힘든 사람은 나였겠지만 남편 역시 아주 힘든 시간을 보냈다. 힘들어하는 아내를 옆에서 보는 것도, 어떻게 해주어야 할지 몰라 '입덧에 좋은 음식'들을 여기저기에서 듣고 찾아 나에게 대령했다. 힘없이 누워있는 아내를 살피며 최대한 냄새가 나지 않는 음식들로 저녁을 차려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김치찌개가 먹고 싶었다. 김치냄새는 맡기 싫은데 김치찌개는 먹고 싶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퇴근을 한 남편에게 말했다.
"자기야, 나 김치찌개가 갑자기 너무 먹고 싶어."
"김치냄새 못 맡잖아? 괜찮아?"
"아니, 김치냄새는 못 맡겠는데 김치찌개는 먹고 싶어."
"... 음... 좋아! 방법 생각났어. 자기가 좋아하는 맛있는 김치찌개 만들어줄게!"
남편은 근처 마트에서 장을 봐왔고 김치통과 재료들을 들고 베란다로 나갔다. 더위를 많이 타는 남편은, 버너에 불을 켜고 땀을 뻘뻘 흘리며(하필 여름이었다) 밖에서 김치찌개를 끓였다. 신경이 쓰여 괜찮냐며 나가보려는 나에게 김치 냄새나니 문을 열지 말라고 하던 남편이었다. 그렇게 땀과 한여름의 열기로 끓인 김치찌개는 남편의 땀으로 간이 맞추어졌는지 정말 너무 맛있었고 밥 한 그릇을 모두 비워냈다. 거기에 더해 토하지도 않았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입덧은 사랑만으로 괜찮아지지는 않았다.
지금도 그때의 김치찌개 맛을 잊지 못한다. 남편이 술을 먹고 늦게 들어와 다음날까지 골골거릴 때, 그날의 김치찌개를 떠올리며 식사준비를 한다. 메뉴는 해장하기 좋은 얼큰한 김치찌개와 그 반대의 돈가스이다. 김치찌개에 '사랑'을 담고 돈가스에 '술 좀 작작 먹어'를 담는다. 우리의 매일이 베란다에서 끓이는 김치찌개 같지는 않지만, 돈가스도 김치찌개도 그리고 술 좀 작작 먹어도 결국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다. 그 마음의 온도가 내려갈 때는, 다시 그 작고 아담했던 집 1층 베란다를 떠올린다. 김치냄새가 안으로 들어갈까 걱정하며 꼭꼭 닫은 베란다 창문을, 한여름 뻘뻘 흘리던 땀을, 잘 먹는 나를 보며 흐뭇하게 웃던 그의 얼굴을.
오늘 저녁 메뉴는 김치찌개와 돈가스로 해야겠다. 아들은 "엄마, 또까스(또 돈까스의 줄임말)야?"라고 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