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중독자는 아닙니다.
얼마 전 추석 성묘에서 있었던 일이다.
모두들 웃었다. 아버님, 어머님, 형님과 아주버님, 작은아버님 내외와 사촌도련님까지. 성묘를 마치고 나면 음복을 한다. 전과 떡 등의 음식을 먹으며 조금 남아 있는 막걸리를 나누어 반 잔씩 마시고 있었다. 운전하는 사람 못 마시고, 작은 아버님은 원래 술을 드시지 않고. 그런데 왜 나에게는 권하지 않지? 운전도 안 하는데? 술을 마시는 분위기는 좋아하지만 술을 잘 먹지는 못한다. 하지만 달달한 막걸리 반 잔이야 어떤가?
"아주버님, 저는 왜 안 주세요?" (오해는 하지 말자. 웃으며 말했다.)
아주버님은 웃음으로 당황함을 숨기며 제수씨 술 잘 안 하잖아요? 했다. 성묘를 마치고 마시는 술은 고수들만 한다는 낮술이었기에 그럴 수 있다.
"아니요, 저 요즘 술 없이는 못 살아요." (한번 더 말한다. 정말 오해는 하지 말자. 모두들 빵 하고 터졌고, 조금 뿌듯했다.) 남편은 자신 때문이라고 말하며 웃었고 아버님과 어머님은 아주버님에게 왜 챙겨주지 않았냐고 하시며 큰소리로 웃으셨다. 아이들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막걸리를 두 잔 마셨다. 더 주신다는 걸 사양하며 앞으로 절대로 빼놓지 말라고 웃으며 말했다.
남편은 술을 사랑한다. 안주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지라 안주를 먹으려고 술을 먹는 것인지, 술을 먹기 위해 안주를 먹는 것인지가 헷갈릴 때도 있을 정도이다. 아내라는 사람은 소위 말하는 안주발을 세우는 사람이다. 안주를 먹기 위해 술을 마신다. 사실 그냥 음식을 먹는다고 말하는 편이 맞다. 술은 그냥 옆에 모양으로 두는 정도이다. 모임이 많았던 남편은 결혼을 하며 모임을 모두 줄였다. 그렇게 하라고 이야기했던 적은 없었는데 본인이 그러고 싶었다나 어쨌다나. 신혼 첫 집은 다양한 식당과 술집이 많아 저녁약속과 회식을 많이 하는 곳에서 멀지 않았다. 회식이나 모임을 그곳에서 하는 경우가 많았던 남편은 끝날 때가 다 되어가면 항상 메시지를 보내왔다.
"옷 입고 준비하고 있어."
"응, 벌써 다 입었어. "
"추우니까 따뜻하게 입고 나와." (12월에 결혼을 해서인지 겨울의 추억이 많다.)
10분 후 집 앞으로 나가면 남편이 두 팔을 벌리고 기다리고 있다. 달려가 안긴다. 술 냄새가 조금 나기는 하지만 그럭저럭 괜찮다. 회식도 일의 연장인데 싶어 애처롭고 사랑스럽다. 자고 일어난 얼굴도 예뻐 보이는 신혼 아니겠는가. 남편의 커다란 손을 맞잡고 나면 손은 더 커다란 외투 주머니 속으로 들어간다. 초겨울의 추운 바깥공기가 닿기도 전에 남편의 외투 주머니 속에서 따뜻하게 녹아내린다. 금방 돌아왔을 그 거리로 다시 함께 들어가 오뎅을 먹는다.(어묵이라고 하면 그 느낌이 살지 않는다.) 호호 불어가며 길가에 서서 먹는, 추운 겨울의 바깥 오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오뎅은 좀 불어 터진 날도 있고 먹기에 아주 딱 좋았던 날도 있고, 조금 더 익었으면 좋겠다 싶은 날도 있었지만 그런 것은 우리에게 문제 되지 않았다. 데이트를 마친 밤에, 더 이상 헤어지지 않아도 되었고, 눈 뜨자마자 안을 수 있었다. 이렇게 집 앞에서 만나 함께 야식을 먹고 산책을 하고 같은 집에 들어가서 잠들 수 있었다.
잠이 잘 오지 않는 날, 휴대전화를 붙들고 귀옆이 뜨거워질 때까지 통화를 하다가 잠들 필요가 없었다. 무서운 꿈을 꾸다 깨면 남편을 깨웠고, 남편은 잠이 덜 깬 목소리로도 괜찮다고 꿈이니까 안심하라고 말해주며 자기 품으로 끌어당겨 안아주었다. 작은 신혼집에서 우리는 더 많이 붙어 있었다. 집이 컸으면 어쩔 뻔했냐고. 서로 멀리멀리 떨어져 있었을 뻔했다고. 집이 작아 정말 다행이라고 웃었다. 작은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볼 때에도, 그보다 조금 큰 안방에서 주말에 뒹굴거릴 때도 우린 늘 붙어 있었다. 중앙난방이라 관리비는 많이 나오지만 따뜻하지는 않은 신기한 아파트였다. 지금도 가끔 그 아파트를 지나가면 우리의 신혼 시절이 생각나서 그립고 또 반갑다.
우리의 신혼집. 같이 출근하고, 또 퇴근해서는 함께 저녁을 만들었던 우리의 첫 집. 주말이면 손잡고 장을 보고 저녁마다 둘이서 파티를 했다. 스파게티를 만들고, 스테이크를 굽고, 오뎅탕을 끓이기도 하고 국수도 삶고 전도 부쳤다. 소꿉놀이를 하듯이 음식을 만들고 그릇에 담았다. 넷플릭스도 디즈니플러스도 없던 시절이었지만, 우리는 둘이서 뭐가 그렇게 즐거웠는지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고 놀았고, 먹었다. 신기한 건 그때 그렇게 맛있게 먹었던 음식들이 지금 만들면 그 맛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뭐가 부족한 건지. 그때는 뭘 먹어도 그렇게 맛있었는데 지금은 그 맛이 나지 않는다. 뭐가 좀 부족하다. 단맛도 아니고 짠맛도 아니고 매운맛도 아니다. 무엇을 먹어도 다 맛있었던 그때는 지금보다 혀가 더 젊어서 그랬던 것일까?
신혼을 즐기고 싶다던 그의 말처럼 우리는 신혼을 마음껏 즐겼는데도 가끔 그 시절이 생각나고 그립기도 하다. 물론 지금과 바꾸고 싶냐고 묻는다면 사랑하는 이든이가 없었던 시절로 돌아가는 것은 상상도 되지 않지만, 찬바람이 불면 그때의 우리의 모습들이 가끔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