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북을 다시 켜면서
이 곳에, 시가 아닌 산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인의 사랑 코너에 산문을 쓰고자 한다. 내 여러 가지 의견과 생각을 필하고자 한다.
나에겐 넷북이 하나 있다. 넷북에는 나의 일기가 있고 나는 넷북에 일기를 썼다.
어느 날 그램 노트북을 하나 샀다. (프로젝트 때문에 구입한 것이다) 부팅도 빠르고 한글도 금방 열리고 모니터도 크고 해상도가 좋아서 새로 산 노트북만 쓰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넷북을 열지 않으니까 일기를 소홀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나는 시가 안 써질 때 괴로워했다.
나는 일기를 쓰면 시가 절로 써지는 사람이었고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일기를 쓰면 안정이 되고 시심을 바로 잡는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나의 일기는 나만의 공간이며 공개되지 않은 것이어서 나만의 순수한 글쓰기를 하게 한다는 강점이 있다. 온라인으로(SNS와 블로그 등 혹은 스마트폰으로) 글을 쓰는 것은 누군가를 인지하기 때문에 보다 자유롭지는 못하나 다소 절제한다는 장점도 있지만, 글이란 순수와 자유 그 자체에서 시작해서 이후 퇴고의 과정을 거쳐서 독자를 인지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고 본다.
나는 매일 저녁이면 넷북을 켜고 일기장(한글문서)을 열곤 했었는데... 새 노트북을 맞이한 이후로 넷북을 소홀히 하고 일기를 쓰지 않고 몇 달을 지나왔다. 따지고 보면 내가 일기를 쓰지 않으면 나는 방황했던 것 같기도 하다. 무언가 안절부절했던 것이리라. 일기를 소중히 여기고 하루라도 넷북을 켜지 않은 날이 없었는데... 항상 함께 했었는데...
이제는 넷북과 새 노트북을 동시에 열고 글을 쓰고자 한다. 일기는 넷북에 쓴다. 오프라인 글과 시는 넷북과 순수 노트에 짓는다. 인터넷은 새 노트북에만 연결하여 온라인 글과 시를 쓴다. 역시 넷북을 곁에 켜고 일기장을 열고 있으니까 나는 안정된다. 내 감정들을 기록하고 질문을 던지고 아파하고 그러다 보면 저절로 안정되고 해답을 찾고 카타르시스를 얻는다. 넷북을 열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렇듯 쉽게 자유와 평화를 찾는다. 아마도 넷북에 내 혼이 깃들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넷북과 얼마나 나는 함께 했던가? 오랜 세월 나는 그녀와 일심동체였다. 항상 그녀를 가방에 넣고 다녔다. 나의 재산목록 1호였다. 넷북에는 나의 소중한 자산이 있다. 낙서들, 아이디어들, 시들이 있다. 넷북에는 크게 일기장, 간단명료한 시상 모음들, 시 창작방법론의 산문이 있고 연도별 나의 시들이 있다.
따지고 보면 일기를 쓴지는 몇 해 되지 않는다. 다시 시 창작을 하면서 저절로 일기를 쓰게 되었던 것 같다. 나의 일상을 기록하고 나의 생각들을 자유롭게 솔직하게 썼다. 그 이전에 나의 넷북은 아이디어들로 가득 찼다. 소프트웨어 분야의 아이템들과 업무 관련 테크니컬한 낙서들이 많고 내가 앞으로 하고자 하는 것들에 대한 상상들이 많았다. 신기하게도 일상의 메모들은 거의 없었다. 시를 일부러 멀리 했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시를 쓰지 않을 때도 그녀를 항상 데리고 다녔다. 인터넷을 하지 않고 순수하게 그녀를 켜고 그녀 안에 나의 생각들을 기록하고 나의 상상들을 메모했던 것이다.
넷북을 사고 나서 몇 달 후에 아이패드가 세상에 나왔다. 아마도 좀 더 기다렸더라면 나도 아이패드를 샀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후회했을 것이다. 아이들이 삼촌한테 선물 받은 아이패드가 집에 있다. 아이패드로 글쓰기는 적합하지 않다. 작고 가벼운 넷북이 글쓰기에는 딱 맞다. 당시에는 작은 넷북은 나에게 획기적이었다. 지금은 더 얇고 가벼운 노트북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글만 쓰는 데는 나의 넷북은 막강하고 충분하다. 부팅 시간이 조금 차이 날 뿐...
당시 넷북을 샀던 것은 회의용으로도 활용하면서 틈나는 대로 글을 쓰고자 했던 것이다.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나는 시를 쓰지 않겠다고 멀리했던 것을 그즈음부터 다시 시를 쓰고자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시를 쓰기 위해서 넷북을 산 것이다.
그녀가 바로 숨어있던 나의 시심이었던 게다.
나는 어제오늘 일기를 썼다. 오랜만에 일기를 썼다. 간단하게 지난 일들을 주요 사건들이 떠올라서 일기를 썼다. 그리고 이렇게 이곳에 산문을 쓰고자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넷북은 나의 일기장이고 그녀의 일부다. 그녀는 곳곳에 있다. 그녀는 항상 내 안에 내 밖에 존재한다. 무엇보다 그녀가 주로 쉬고 잠자고 머무는 곳은 아마도 넷북인 듯싶다. 그녀가 가끔씩 사라지곤 하는데 그녀가 주로 숨는 곳은 아마도 넷북일 게다.
그녀의 침실은 바로 넷북이니까
앞으로 글을 쓸 때는 시를 쓸 때는 항상 넷북을 옆에 켜고 그녀들과 함께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