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의 시집을 처음 만나서 읽었던 그 시절처럼 한동안 설레었고
최근 나오는 시들에 대하여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시 읽는 재미를 좀체 느끼지 못하던 중,
그러던 중에,
민왕기 시인의 첫 시집,『아늑』이 나왔다. 한 편 한 편 재미지고 감동이 흐른다.
무엇보다 요즘 젊은 시인들에게서 느낄 수 없는 달달함이 넘쳐 흐른다. 그것은 민왕기 시인의 순수하고 소박한 삶에서 나온다. 그만큼 어린 아이처럼 너무나 맑고 착하기에 이렇게 애틋하고 간절한 시들이 생겨난 것이리라. 순수하고 소박하지 않은 시인이 어디 있으랴마는 시인들 중에서도 더 많이 순수하고 소박하다고 해야 할 것만 같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집을 읽고
역시, 하면서 감동을 받고 몇 일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다. 모처럼 맛보는 시 읽는 즐거움을 한동안 느꼈던 터다. 하지만, 이내 나를 돌아보게 되고 나의 시는 멘붕을 겪게 되었다. 내 시가 형편없어 보이기까지 했다. 물론 나만의 장점이 있다지만 나도 누구못지 않게 순수하고 착하고 그러하지만, 나에게는 나에게는 그 달달함이 부족하다. 무엇보다 내 삶이 그렇기에 나의 시는 많은 생각과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도 첫 시집을 위해 시집을 엮고자 노력 중이었는데... 나의 시는 한참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좋은 시들을 세상에 내놓아야지, 그래야지,
그래야 하는데...
그러면서 50여편을 정리하고는 더 이상 퇴고하지 않기로 마음 먹는다. 이젠 다 잊고 보다 좋은 시를 쓰기 위해 다시 시다운 시를 더 나은 시를 정말 좋은 시를 써나가고자 다짐한다.
좋은 시가 많아야 일반 사람들이 시를 찾고 시를 즐기고 시를 좋아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어떤 시를 써야 하는가? 물론 시인은 자신의 시를 쓰면 된다. 맞다. 더불어서 시인은 좋은 시를 찾아서 세상에 많이 알려야 한다. 자기 시가 아니라 세상에 좋은 시가 나오면 누구보다 앞장 서서 좋은 시들을 일반인들에게 알려야 한다. 그런데... 그런데... 정작 시인들이 게으르다. 자기 시 쓰기도 바쁘고 먹고 살기도 바쁘고 어떻게 알려야 할 지도 모른다.
나의 경우는 블로그나 SNS에 알린다.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에게 툭하면 이야기 한다. 서점에 가면 직접 사서 지인들에게 선물을 한다. 『아늑』은 선물하기에도 좋은 시집이다. 누구나 읽으면 이해할 수 있고 감동받을 수 있는 좋은 시이기에 선물하기가 가능하다. 나도 이 점은 배워야 한다. 아니, 모든 시인들이 배워야 한다. 좋은 시란 시를 읽는 이에게 눈물을 선물하는 시라고 나는 항상 생각했다. 이 보다도 앞서 누구에게나 선물할 수 있는 시집이어야 좋은 시가 아닐까, 그러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백석 시인을 좋아한다. 구수한 사투리로 고즈넉하고 애틋한 백석의 시는 그래서 사랑받지 않을 수 없다.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 백석이다. 일반 독자들도 당연 백석을 좋아할 것이다. 나도 백석의 시집을 만나서 한동안 그의 시를 읽으며 행복했던 적이 떠오른다. 민왕기 시인의 시집은 백석의 시집을 처음 만나서 읽었던 그 시절처럼 한동안 설레었고 나에게 그러한 즐거움을 주었다. 이러할진대 내가 어찌 이런 말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좋은 시집을 알아야 독자들이 좋은 시를 읽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렇게 좋은 시집을 소개한다. 시를 좋아하는 분이시라면 분명 한동안 저처럼 즐겁고 행복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하신다면 그 분들도 한동안 애틋하고 달달함에 푹 빠져서 행복해 하실 것입니다.
아~, 나는 민왕기 시인의 첫 시집, 『아늑』에 푹 빠졌다가 많이 아팠다가 (나의 시를 돌아보다가) 결국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된 것이다. 이별보다는 그리움, 사랑보다는 애틋, 희망보다는 간절, ... 이렇게 낮으면서도 높고 외로우면서도 다정스럽고 아프면서도 사랑스럽고 가난하면서도 고즈넉하고 슬프면서도 애틋하고 간절한 그러한 일상적이면서도 낯설움이... 구체적이면서 새로운 팩트가... 시라는 지혜로움이... 나에게 왔고 나도 배웠다. 나의 삶도 나의 시도 보다 새로와지길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낯설지 않으면서도 늘 낯설고 새롭지 않으면서도 늘 새롭고 달달하지 않으면서도 늘 달달한 늘 참되고 지혜로운 늘 아름다운 그러한 좋은 삶을 살고 그러한 좋은 시를 쓰고자 다짐하는 것이다.
애틋
민왕기
이름을 불러주면 글썽이는 뼈입니다
교복바지 위로 살짝 드러난 저 아름다운 뼈를 나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 소년이 한 소녀를 만나는 일은 복숭아뼈를 드러내고 아련해지는 일이었습니다
그 집 나무 아래를 오래 서성이던 저녁들이 모이고
나와 그가 감춰뒀던 앳된 뼈도 거기 작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복숭아뼈 여덞 개가 키득거려 노을도 출렁거리고 있었을겁니다
의자에 발목을 부딪치면 찡하게 아팠던 것이 그 때문인지 모릅니다
몸을 둥글게 말아 오랜만에 복숭아 뼈를 만져보면
소년이 소년인 줄, 소녀가 소녀인 줄 모르던 시간이 아직 남아있을 겁니다
손에서 가장 먼 뼈, 가장 작고 예뻤던 뼈가 복숭아뼈라는 걸, 글썽이다 보면 알게 될 겁니다
나는 오늘 그 뼈가 애틋이었다고 속삭여보았습니다.
아늑
민왕기
쫒겨온 곳은 아늑했지, 폭설 쏟아지던 밤
캄캄해서 더 절실했던 우리가
어린 아이 이마 짚으며 살던 해안 단칸방
코앞까지 밀려온 파도에 겁먹은 당신과
이불을 뒤집어쓰고 속삭이던,
함께 있어 좋았던 그런 쓸쓸한 아늑
아늑이 당신의 늑골 어느 안쪽일 거란 생각에
이름 모를 따뜻한 나라가
아늑인 것 같고, 혹은 아득이라는 곳에서
더 멀고 깊은 곳이 아늑일 것 같은데
갑골에도 지도에도 없는 아늑이라는 지명이
꼭 있을 것 같아
도망 온 사람들 모두가
아늑에 산다는, 그런 말이 있어도 좋을 것 같았던
당신의 갈비뼈 사이로 폭폭 폭설이 내리고
눈이 쌓일수록 털실로 아늑을 짜
아이에게 입히던
그런 내말이 전부였던 시절
당신과 내가 고요히 누워 서로의 곁을 만져보면
간간한, 간간한 온기로
사람의 속 같던 밤 물결칠 것 같았지
포구의 삭은 그물들을 만지고 돌아와 곤히 눕던 그 밤
한쪽 눈으로 흘린 눈물이
다른 쪽 눈에 잔잔히 고이던 참 따스했던 단칸방
아늑에서는 모두 따뜻한 꿈을 꾸고
우리가 서로의 아늑이 되어 아픈 줄 몰랐지
아니 아플 수 없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