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 있는 시인은 지금 누구일까? 어디에 살고 어떤 시를 짓고 계실까?
시인의(문인의) 품격에 대하여
최진석 철학자의 글을 읽고서, 품격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의 말을 요약하자면, 덕은 품격에서 나온다고 한다. 품격이란 다소 불편을 감소해서라도 옳은 것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시인을 우러르고 존경해 왔다. 그래서 시인처럼 살고 싶었고 시인이 되고 싶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시인들을 우러르고 존경했다. 이제는 아니다. 시인도 시인 나름이라서가 아니라 시인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인간이 다 똑같지 뭐, 이런 것도 아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알고 왔던 시인들은 남달랐다. 그야말로 덕이 넘치고 품격이 있었다고 믿었다.
난 참으로 순진했다. 마흔 중반이 넘도록 여전히 순진했다. 이제는 너무나 품격이 떨어지는 문단을 알게 되었고 품격이 없는 시인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품격이 있다는 것도 아니다. 나도 품격이 없다.
과연 품격이 있는 시인은 누구일까?
품격이란 것도 (덕이란 것도) 한 개인의 영역이 아니라 사회적 영역과 함께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 전반을 무시하고 순전한 개인적 습성에 의한 시를 짓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개인의 상상력은 무궁무진하니까 물론 가능하겠지만, 그것을 작품으로 표현한다고 해도 보편성이란 것이 표출되기 마련이다. 그러한 보편성이 무엇을 지향하느냐에 따라서 사회적 영역까지 광범위하게 관여할 수 있고 그저 일상에만 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왕이면 전체를 지향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시란 주관이 아니라 보편을 노래하는 것이니까. 그러한 보편적 일상과 사회를 모두 담아낼 때 좋은 작품이 되지 않을까?
품격이 바닥에 떨어진 세상이다.
시인들도 (문인들도) 품격이 바닥에 떨어졌기 때문에 독자들이 떠난 것은 떠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린아이들도 시인이라면 아직도 우러르고 존경의 대상으로 여긴다. 시(동시)라는 것을 아이들은 무척 훌륭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들도 점점 커가면서 자본주의에 대한 눈을 뜰 때쯤 시인에 대한 존경심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돈 없는 진상으로만 바라볼 수도 있을지 모른다. 돈이 많거나 돈을 잘 버는 시인이라 해도 아마도 시인이 돈도 잘 벌어, 오히려 시인이 저래도 되나, 그럴지도 모를 일이다.
품격,
도대체 이 품격이란 무엇이고 시인의 품격이란 또 무엇일까?
시인의 품격이 왜 사라진 것일까? 시인에게서 풍겨 나오던 등푸른 아우라들은 죄다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그것은 분명 나의 (개인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점점 현실이 치열할수록 거친 세상과 부대낄수록 모든 것은 착각으로 변해버리는 것 같다. 아무리 올바르고 좋은 것들이라 할지라도 현실 앞에서는 무너져 버리는 것만 같다. 그래서 품격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져 버린 것은 아닐까?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지킬 것은 지키고 늘 새롭게 보다 더 새롭게 나아가는 것이 품격 있는 시인이 아닐까? 다소 불편하고 다소 불이익이 오더라도 감내하면서 나아가는 것이 품격이라고 하니까
과연 품격 있는 시인은 지금 누구일까? 어디에 살고 어떤 시를 짓고 계실까?
당장 미당문학상을 폐지하자고 나서는 저명한 시인들이 있다면 나는 그 시인들을 우러르고 존경할 수 있겠다. 그들의 입장이 아니라서 혹은 내가 무지해서 그들의 사정을 잘 모르겠지만 무엇이 올바른 것이란 것쯤은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품격 있는 시인들이 분명 많을 것이다.
문단의 권력(?)을 최소화하는 노력을 하는 시인들이 있다면 나는 그 시인들을 우러르고 존경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좋은 시를 선별하여 출판하고 좋은 시를 좋다고 평하고 나쁜 시를 나쁘다고 평하는 그런 시인들이 있다면 나는 이전처럼 시인들을 우러르고 존경할 수 있겠다. 저명한 시인만 좇지 말고 어딘가 숨어있는 좋은 시를 짓는 시인을 발굴하는데 앞장서는 출판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 땅의 모든 시인들에게 골고루 청탁을 하고 이 땅의 모든 시인들의 시를 골고루 독자들에게 분배해 주는 문예지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독자들에게 정말 품격 있는 시인의 시다운 시를 많이 읽게 해줬으면 좋겠다.
나아가 시인의 최저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원고료나 인세에 대한 최저단가를 높여나갔으면 좋겠다. 협회에서 추진하면 성사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말해본다. 그렇게 작은 노력을 해나간다면 창작 기금이나 정부 지원금도 점점 많아지고 더 높아지지 않을까? 다른 분야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금액들에 대해서 무언가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노력을 하는 시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런 시인들이 있다면 정말 우러르고 존경할 수 있겠다.
더 나아가서 이런 생각도 해본다.
한 가지만 고집한다면 그것은 시인이 아니겠다. 오늘의 습관이 작금의 제도가 내일도 미래도 지속된다면 시인이 시가 아니겠다.
시인이라면 습관마저 늘 새로워져야 하지 않을까? 쉽게 예를 들어, 암울한 시만을 쓰는 시인이 있다면 그 시인의 습관에 의한 것은 혹 아닐까? 그것을 개성이라고 말해선 안되지 않을까? 그런 시인에게 다음 시집에선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시를 기대해 보는 간절함을 누구나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시인이라면 자신의 개성과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고 개성과 스타일을 계속 바꿔나가야 하지 않을까? 오늘 아픈 시를 썼다면 내일은 사랑 시를 쓸 수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품격에 대한 글을 읽고 오랜만에 궁시렁거려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