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습관, 시의 습성, 이 또한 매 순간 바꿔야 한다는 것!!
습성에 대하여
내가 쓰는 시들이 암울한 것은 다 내 습관 때문이다. 그러한 나의 습성들이 내 시를 우울하게 만든다.
나의 방구석이 우울하다. 방구석은 우울한 나를 탓한다. 나는 내 번뇌를 탓한다.
습관을 바꾸기란 어렵다. 습성을 바꾸기란 더 어렵다.
그래도 바꿔야 한다. 좋은 시를 짓기 위해서 나는 그 수준(정도)에 맞는 습성을 가져야 한다. 시인은 그래서 더 힘든 삶을 살아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냥저냥 다 버리라고!? 비우라고!?
일체유심조, 하면 된다고!?
이거 어쩌다 한 번쯤은 다 된다. 늘 습성처럼 배어있진 못하니까 문제다. 각박한 현실에서는 더 안된다.
그래도 나는 습관을 바꾸고 바꿔야 한다. 더 좋은 습관으로 계속 나를 바꿔 나가야 한다. 자신을 쉽게 바꾸기 위해서 사람들은 늘 새로운 것을 찾아 순례를(여행을) 떠나려 하는 걸까? 유명 작가 하루키는 아내와 세계 여행을 다니면서 글을 썼다고 한다. (지금도 그럴까?)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만남은 기존의 습성들로부터 쉽게 탈출할 수 있게 해준다. 새로운 환경은 새로운 무언가를 습성화시켜준다. 그렇다면 내가 갖고자 하는 습성을 상상하고 그러한 습성을 가진 환경이나 존재들을 만나러 가면 되지 않을까? 그것이 바로 순례(여행)가 아니겠는가?
내가 진정 우러르고 존경하는 존재가 있다면 그 존재는 내게 새로운 것 아니겠는가? 지금 당장 그 존재를 찾아 떠나거나 그 존재를 만나면 되지 않겠는가? 나의 습성이 좋지 않다고 느낀다면 아무리 버리고 버리려 해도 안된다면, 지금 이 반지하 방구석을 버리고 깊은 산속 옹달샘 솟는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하지 않겠는가? 버텨고 견뎌내는 게 삶이라고 하는데... 버티고 견딜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순례(여행)를 떠날 수 없다거나 무언가 좋은 대상이 없다거나 모든 것이 귀찮다거나 한다면... 버티고 견뎌야 한다면 이왕지사 즐겁게 버티고 즐겨야 하지 않을까? 그냥저냥 웃으면서 지금 이 습성을 즐기면서 버티고 견뎌내어야 하지 않을까? 이 또한 더 좋은 습성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이런 걸 포기라고 해야 할까? 이 또한 초월이라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소설이라도 읽고 유익한 드라마라도 보면서 시간을 소일이나 하고 있는 나는 바람직한가? 산에 가고 싶지만 방구석에 스스로 갇혀서 좀체 움직이지 않는 나는, 몸과 마음이 제 멋대로 인 나는, 11월이면 늘 북극곰처럼 동면에 들려고 하는 나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는 나는,...
그래서 나는 이 더러운 나의 습성을 바꿔야만 하는 것일진대, 더 좋은 습성으로 나를 바꿔나가야만 할 텐데... 무엇보다 더 좋은 습성으로 나의 시를 지을 때 나의 시는 더 좋은 시가 될 것이 분명하니까
시의 습관, 시의 습성,
이 또한 매 순간 바꿔야만 한다는 것!
내가 바뀌어야 내 시도 바뀐다는 것!!
내가 좋아야 내 시도 좋다는 것!!
아, 엄청난 욕심이구나... 궁시렁... 궁시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