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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러플 Sep 01. 2018

아이러니

하루한편의 쉬운 시쓰기 #125


아이러니

황현민





너를 그동안 시레기로 들었다. 너를 아무리 검색을 해도 시레기는 먹는 나물 뿐이었고 쓰레기도 개레기도 아닌 시레기는 고유한 우리말이었다. 1층 주차장에서 담배를 태우면서 나의 한심은 멈추질 않고 카메라를 먼저 찾았다. 네 속의 파아란 날개를 발견하고는 손에 든 스마트폰을 잊고 카메라를 들고 다시 나왔드랬다. 고담시를 닮은 너의 하늘, 어둡고 둔탁한 철조망 사이로 박쥐의 등푸른 날개가 둥글둥글 돌고 있었지. 시레기가 시레기가 아니었듯이 나는 내가 아닐 것만 같아서 카메라를 켜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너를 담았드랬다. 너의 하늘을 있는 그대로 담진 못했지만 지금 이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야 겠다. 실외기가 시레기가 아니면 어떠랴, 나는 너를 여전히 시레기라 부를 테고 네 속의 날개를 이상의 것이라고 우긴다. 내가 내가 아니었듯이 박쥐가 박쥐가 아닐 수도 있으렷다. 문자가 없었더라면 거짓말은 없고 속이거나 속는 일도 없었을 테지만, 너는 내게 시레기로 쓰여질 것이고 앞으로도 시레기로 들을 것이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 그래서 시인을 시를 짓고 화가는 그림을 그리고 음악가는 작곡을 하고 사진가는 사진을 찍는 것이다. 내가 시를 짓고자 한다면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 참 아이러니하다. 한편, 문자로 시를 짓는다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일까도 생각한다. 어찌보면 문자로 시를 짓는 일은 참으로 한심한 일일지도 모를 일이다. 언어가 없이 순수한 소리로만 노래하고 춤추던 옛 시인들을 문득 그리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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