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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러플 Oct 28. 2020

흔적 따위 필요 없어

하루한편의 쉬운 시쓰기 #221


흔적 따위 필요 없어

황현민





상처라고 할까 흔적이라고 할까

아픈 목과 어깨의 통증을 참아가면서 꽤 오랜 시간 누워있었다. 부러진 앞니의 신경치료가 끝났다. 원장님은 옆자리로 이동하시고 검은 옷의 간호사가 와서 유혹한다. 이를 깎지 않고 지금 상태에서 감쪽같이 덧씌울 수 있다며 다음 치료를 권한다. 부러진 앞니로 그냥 살려고 했었는데 나도 모르게 그러자고 했다.


가격은 비보험 20만 원이고요 담주 30분 정도 걸릴 거예요 담주 뵐게요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내 나에게 물었다


왜 굳이 가면을 씌우려는 거니?

영광의 상처는 아니지만 그때 그 순간을 기억해야지 그 흔적 남겨둬야지. 부러진 앞니를 볼 때마다 너의 안전에 늘 주의할 테니까


왜 굳이 상처를 감추려니 거니?

가짜를 덧씌워서 흔적을 지울 필요가 없잖아. 그 상처가 흉이 되진 않을 거야. 씹는데 아무런 문제없고 자세히 보아야 보일 뿐이잖아. 부러진 이빨을 알아차릴 정도라면 그런 사람이 있다면 네게 관심이 많다는 걸 테고 말야. 무엇보다 이 흔적 볼 때마다 너는 정신을 번쩍 차릴 테니까


어떻게 할까? 취소할까?

그래, 그냥 있는 그대로 살아야지. 까짓 거 뭐, 혀끝으로 부러진 흔적 만질 때마다 나는 크게 각성할 테야


그런데 각성하는데 꼭 흔적이 필요한 걸까?


군 휴가 나온 큰 아들과 저녁 식사를 하는데

"아빠, 이빨 꼭 하세요. 표 많이 나요."  

티 안 날 줄 알았는데 많이 나는가 보다. 아들 말 들어야지, 그래, 알았어


치아 골절도 골절에 포함되고 실비도 청구할 수 있으니까 다 치료받고 귀찮더라도 꼭 보험 청구해. 아내의 문자를 받았다. 그러고 보니 여기저기 청구할 곳이 많네. 위로금이라도 받아낼까?


아무튼, 각성이고 뭐고 나에겐 다 귀찮은 일일 뿐이라구










(C) 23/10/2020. Hwang Hyun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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