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잠이 덜 깨거나 졸린 상태에서 내가 아닌 꿈을 꾸는 자아(가짜)의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내 가방, 내 방들을 떠올린다. 멀쩡한 나 진짜 자신도 헷갈릴 정도로 말이다.
꿈속에서는 내 방이 여러 개다. 지역이 다른 최소 2개 이상이었다.
좀 전엔 나의 또 다른 방의 냉장고에 꽉 찬 음식들을 떠올리며 음식이 떨어진 지금 있는 방을 떠나 잠시 그 방에서 생활하기로 다짐했다. 다른 방의 음식의 유통기한을 걱정했던 것이다.
한 편의 방이 불편하면 다른 편의 방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편의 방이 있어서 그 방을 그냥 놔둘 순 없어서 그 방을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떠오른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생각들이 아주 가끔 데자뷰처럼 일어난다. 잠과 관련 있다. 잠깐 잠들었다 일어나서는 그 사실 여부를 체크해야만 했다.
아마도 꿈을 통해서 평행우주 속 다른 나의 방을 인식한 것일까? 푸핫하 아닐 게다. 내가 그 정도로 신통 도통하지는 못했으니까
아무튼 난 꿈을 가짜로 정의한 지 오래다. 세상이 거짓투성이인데 꿈도 당연히 가짜라는 논리다. 물론, 자각몽과 예지몽은 진짜다. 그것은 고요한 꿈이다. 천진무구할 때 꿈 없이 푹 자다가 고요한 꿈을 꿀 때가 있었다. (몇 년 만에 꿈에 만난 사람을 길 가다가 그날 진짜 만났다. 자고 일어나면 해답을 얻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가끔 이런 식의 진짜 꿈도 있었다. 나이 들곤 없었던 것 같다. 지금도 꿈속에서 시를 짓곤 한다만은) 그 정도는 구분할 줄 안다. 방금 전 또 다른 방에 대한 것은 가짜였다. 그래 가짜에 세뇌당하는 것이 이런 경우가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생각의 흐름도 이참에 정리해보자.
진짜를 살아야 한다는 것, 세상은 가짜 투성이고 떠오르는 생각들도 가짜 투성이다. 고로 가짜를 버리고 진짜를 선택해야 한다. 아니, 버린다가 오류다. 버린다, 멀리한다, 이런 사고를 해선 안된다. 이왕이면 선택해야 한다, 도 선택한다, 로 고쳐 생각하자. 처음부터 마음을 닫는 꼴이 되어버린다. 스스로 가짜에 당한 꼴이 되고 만다. 좋든 싫든 모든 마음을 열어야 마음을 비울 수 있어서 고요를 행할 수 있다. 닫힌 마음으로는 진짜를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자, 어떻게 생각해야 진짜로 나아갈 수 있겠는가? 그저 가짜는 쥐뿔에 자동 소멸되는 것들이니 신경 끄고 그저 진짜를 선택하면 그뿐이다. 그래, 선택으로도 아직 진짜는 진짜가 아니다. 진짜가 영글어야 한다. 이제는 진짜에 몰입해야 한다. 몰입 후에는 진짜를 완성해야 한다. 그럴 때 진짜가 진짜 진짜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의 흐름은 괜한 번뇌 따위가 가짜란 것을 입증한다. 근심 걱정 따위가 아주 쉽게 가짜가 돼버려서 자동 소멸한다. 근심 걱정 따위로 시간 낭비하지 말고 내가 지금 어떤 진짜를 선택할지를 고민하고 진짜에 어떻게 몰입하고 완성할지를 고민하고 고민하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 가짜는 자동 소멸되도록 놔두고 진짜를 우선 선택 하는 것이 진짜의 시작점이다. 가짜가 아닌 진짜를 우선 선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뭐, 이 또한 생각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해야 비로소 내 것이 진짜 될 것이다. 괜한 가짜에 쓸데없이 생각하거나 시간 낭비하지 말란 말이다. 그것이 바로 뇌의 세뇌 작용이니까 늘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나의 뇌는 가짜 투성이다. 나의 뇌의 진짜 주인이 되기 위해선 내가 나의 뇌를 다스려야 한다. 절대 나의 뇌에게 끌려다녀선 안된다. 그것이 세뇌다. 정신차리란 말이 곧 나의 뇌(가짜)의 노예가 되지 말란 말과 같겠다. 정신차렷다,를 다른 말로 각성했다, 고 말할 수 있겠다.
별 생각의 생각을 다 적어보았다.
아, 자아와 자신 중 어떤 게 진짜냐고 묻는다면 나는 당연히 자아가 아닌 자신을 선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