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틀 내내 누워 몸을 추슬렀다. 내 몸은 잠을 푹 자면 잘 낫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는 공기 좋은 산속에 들어가 숨 쉬는 거다. 북한산을 가고 싶었지만 집에서 푹 쉬기로 했다. 앞으로 주중에도 자주 다닐 수 있을 테니까... 이러한 치유는 나만 그렇지 않으리라. 모두가 그러할진대 대부분 하지 않거나 할 수 없기 때문이리라.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에 여유가 없어서 그런 것이리라. 이 땅에서 부자가 아닌 이상 먹고살기 바빠서 여유란 것이 없다. 여유는 자유의 시작에 해당한다. 여유가 없다면 결코를 자유를 시작할 수 없다. 시작이 반이라는데 자유의 반은 곧 여유다. 여유만 있다면 절반의 자유를 획득한 셈인데 이조차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은 아닐까 싶다.
최근 너무 많은 스트레스로 심신이 많이 망가졌다. 정신마저 나가버리고 욱해서는 가납사니뚝벌씨가 되곤 한다. 지나고 나면 후회막심뿐이다. 전생 탓일까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친 탓일까 아니면 이 땅 토종의 피가 흐르기 때문일까 나는 왜 이런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걸까 나는 왜 자꾸 등푸른 절반마저 잃어버리는 걸까
자유의 절반은 여유다. 여유를 늘 가지고 살아야 자유의 시작이다. 자유롭게 살고자 한다면 늘 여유로워야 한다. 여유가 모든 삶의 바탕일진대 이것을 왜 잊고 살았을까? 사랑도 여유가 있어야 하고 돈도 여유가 있어야 벌 수 있고 사람들도 여유가 있어야 그 관계가 유지된다. 여유가 없다면 사랑도 돈도 사람들도 없는 것과 같다. 더 나아가서 여유가 있건 없건 사람은 결국 혼자라는 것도 한몫한다. 혼자라는 것은 진짜 나일 때 가치가 있다. 여유가 있건 없건 진짜 나일 때 자유가 주어진다. 나의 절반을 늘 잃지 않아야 한다. 그럴 때 자유를 시작할 수 있으리라. 나의 절반도 내 삶의 여유가 있을 때 가능하다. 여유라는 것이 곧 자유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여유는 먹고살아야 하는 것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지만 기본적인 의식주만 해결한다면야 누구나 여유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할 텐데... 나는 왜 여유 없이 살아왔을까? (쉽게 설명하자면 이런 거다. 나에겐 3개월을 먹고 살 먹거리가 충분히 있는데 나는 그 3개월 동안 여유 없이 살았다. 오히려 불안해하며 살았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지금 당장 지구가 사라진다 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명언도 있는데... 왜 나는 여유롭지 못하고 늘 불안해했던 걸까?
여유, 여유가 곧 자유의 절반이다. 시작이 반이듯이 여유롭기만 한다면 누구나 자유로울 수 있으리라. 이러한 여유는 고요와 사촌이다. 고요할 수만 있다면야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자유로울 수 있다. 그만큼 여유는 소중하고 늘 간직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유, 여유는 밖에서 오지 않는다. 내 안에서 생겨나야 한다. 마음이 여유로워야 하는데.. 여유로운 마음이 곧 나의 순수한 영혼에서 나온다. 여유란 곧 영혼과 직결된다. 고로 자유란 영혼이라 할 수 있다. 여유는 영혼이다. 자유는 영혼이다. 고요는 영혼이다.
ㅇㅇ는 영혼이다. 영혼은 ㅇㅇ이다. (ㅇㅇ은 모두 좋은 거다)
왜 자꾸 까먹는 걸까? 나의 영혼, 나의 고요, 나의 자유, 나의 여유, 진짜,...
출근만 하면 왜 이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걸까?
이 땅의 모오든 시스템들이 사람들의 '여유'를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만들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 땅의 시스템들은 거꾸로인 듯싶다. 오히려 사람들이 여유를 가지지 못하도록 설계되고 구축되는 듯싶다.
이런 세상에서 사람들은 점점 영혼을 잃어가고 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낭만을 모르듯이) '영혼'에 대해서 대부분 까먹은 듯싶다. '영혼', 이 단어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까먹고 살고 있다. 영혼을 잃어버리는 순간 사람은 사람이 아닌 좀비가 되어버린다. 진짜를 잃어버리고 껍데기만 남아서 살아도 삶이 아니겠다. 결국 진짜가 아닌 가짜를 살아가는 셈인 게다. 이미 그런 세상이 시작되었다. 비대면 세상, 메가버스, 백신 천국, 기타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