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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러플 Aug 22. 2016

백지

하루한편의 쉬운 시쓰기 #34


백지

황현민




나는 지금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모니터의 하얀 종이를 바라보며

검은 키보드 위에 두 손을 올려 놓는다


시인이라면

백지 위에서 시작해야 한다

머리로 쓰는 것은 시가 아니어서

내 영혼 위에 두 손을 올려놓고 기다린


백지는 그 자체가 시여서

기다리다 보면 어느덧 생겨나는 것

시를 짓는다는 것은

백지 위에서 한 자 한 자 싹을 틔우는 

기다리고 기다려야 한 생각없이


급하게 백지를 펼치며

받아적어야만 시가 아니다

백지 위에서 백지의 온몸으로

불가사의한 활자들을 끌어올려야 한다

백지 속에는 수많은 우주가 숨쉬고 있으니까


열 손가락,

노래하자!

온 우주를 춤추게 하라!


나는 지금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지금 나는 신비스러워야 한다













2016. 8. 21 방금 전 아주 잠깐 비가 내렸다가 말았다


가끔 술이 취했을 때

무작정 시가 쓰고 싶어서 무작정 핸드폰을 열 때가 있다

그때는 정말 머리가 아니라

내 손가락이 제멋대로 시를 써내려 간다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게 신비스럽게 시를 써내려 가곤 했다 그렇게 시 한 편이 탄생하곤 했다

그럴 때가 종종 있는데... 정말 시인이라면 머리가 아닌 백지 위에 아무런 생각 없이 시를 지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고 오늘도 나는 생각한다.


오늘은 부자연스럽다. 신비스럽게 시를 짓고 싶은데...


하루한편의 쉬운 시쓰기,

점점 구속인가? 아니면 힘찬전진인가? 더 큰 자유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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