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은 서지 않고
하루한편의 쉬운 시쓰기 #330
작심은 서지 않고
황현민
전주로 내려온 까닭은 지리산이 더 가깝기 때문이야
통일이 되었더라면
무조건 북쪽으로 조금조금 이동하여 백두산 근처에 자리 잡고 생활했을 터야 압록강 너머 만주와 요동 벌판까지 두루두루 걸어 다녔을 거야
좁고 제한된 이 땅에서 다시 북쪽으로 가야 한다면 북한산이 있는 서울이 끝이겠지_ (설악산? 강원은 늘 열외니까)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리산과 먼 곳에서_ 1년 이상 좋은 프로젝트가 있다며 방 빼고 어서 올라오란다
최근 이곳에 왔는데_ 이제 겨우 홧병을 다스리고 얼음도 녹아서 슬슬 남녘의 높은 산들을 다녀볼까 하고 있는데_ 신선이나 되어볼까 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데_
너무나 좋은 기회가 분명한데_ 아직 결정을 못하고 이러고 있는 거야
방을 미리 빼는 것도 일이고 이삿짐 싸고 날으는 것도 일이고 서울에 좋은 방 구하는 것은 더욱더 큰 일이고_ 좁다란 방구석에서 잠을 자고 사무실에 출퇴근을 하고 요기조기 북한산이나 다니면서 서울 거리나 구경하면서 미술관과 도서관과 가끔 광화문 서점이나 기웃거리면서_ 뭐, 맛난 것들 많이 사 먹고 만들어 먹으면서
친구들, 지인들, 가끔 볼까? 보면 뭐 좋을까? 다를까? 지난 서울생활 동안 대유행으로 만나지도 못했는데_ 연락조차 하지 않았는데_
이젠 친구들 친구 같지 않고 지인들 지인 같지 않은 세상이 아니던가_ 본다고 좋을 거 없을 것 같은데_ 다 부질없겠지, 그저 일이나 하고 밥이나 잘 먹고 잘 자고 잘 걸어 다니면서 살아가는 것뿐_
지리산이 가깝다는 것은_
서울이나 전주나 일상의 차이가 없지만_ 지리산이 가깝냐 머냐는 큰 차이라서_ 이것이 나를 크게 위로하는데_ 이것은 너무나 중요해서_
광주와 서울 두 프로젝트 중 선택하라면 당연히 광주를 선택할 터_ 남녘에는 프로젝트가 거의 없어 산이나 내내 다니면서 생활할 수도 없고 당장 서울로 올라갈 작심은 서지 않으니_ 이거야 원, 전화를 받지 말았어야 했나_ 뭐, 인터뷰 봐야 결정 날 일이겠지만_ 여전히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고 이러고저러고 자빠졌는데_
작금의 마음은 서울에 있지 않은 거야
서둘러 서울로 돌아갈 거라면 지리산 가까운 남쪽으로 내려오지는 않았겠지
서울로 가야 할 때가 또 오겠지 올거야
그때는 미리 올라가서 찬찬히 방 구하고 터 잡아놓고 그렇게 프로젝트에 투입해야지
불광동, 북한산 바로 아래, 주차 가능하고 한적한 동네로 말이야 두고두고 살아도 좋을 만한 곳으로_
지리산에서 더 멀어진다는 것은 역시 위로가 되지 않아
금주까지 답변을 줘야 하는데_ 왜 자꾸 불편하고 불안한 거야?
물욕이 생기려는 거야? 이런 내가 어리석은 거야?
위로 따위,
나이 걱정, 돈벌이,...
여전히 작심은 서지 않고_
(C) 2023. 02. 10. Hwang Hyunmin.
#프로젝트
#서울
#전주
#지리산
#생활
#작심
#기회는또올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