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와, 위대한 문명
고대부터 존재했던 기와를 그동안 근대로 착각하며 살았다
기와, 위대한 문명
황현민
우연히 1800년대 우리나라 풍경이 담긴 사진을 보았는데, 하얀 고무신에 도포를 입은 사람들과 그 배경으로 기와집과 나무 솟대가 있었는데, 초가집도 아닌 기와집이 있는 1950~60년대 시골 동네 같아 보였다.
오랜 흑백사진 속 기와집이 내내 신기했다. 1800년대 조선후기 마을의 초가집이 아닌 그 기와집에서 나는 무언가 의미심장한 역사적 사실을 알아차렸다.
사실, 초가집이 아닌 기와집을 떠올릴 때마다 기와집은 (고대나 중세가 아닌) 근대 건축술이라고 늘 착각했던 게다. 큰 착각을 하며 살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이렇게 메모를 남긴다.
기와는 도자기처럼 흙을 구워서 쉽게 만들 수 있었다. 따라서 토기를 만든 시기에 기와를 충분히 만들 수 있었으며 튼튼한 목조 건물을 만들면서 동시에 기와로 지붕을 만들기 시작했었던 게다. 즉, 기와집은 고대시대부터 존재했던 것이었다. 동북아시아 지역은 나무가 많이 자라서 흙과 나무로 집을 많이 지었고 흙을 구워서 벽돌과 기와를 만들었다. (서양의 콘크리트 건출술도 고대부터 있었다고 한다. 흙을 굽지 않고 흙이 돌처럼 굳어지는 석회암 지대에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기술이다.) 튼튼한 나무를 기둥 삼아서 튼튼한 기와를 얹을 수 있었으리라. 그렇게 독특하고 웅장하고 아름다운 지붕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지붕 차원에서 비교해 본다면 한국의 기와가 가장 아름답지 않을까 쉽다. 뭐, 중국과 일본도 기와집이 있으니 포함시키자. 이러한 위대한 예술적 감각의 지붕을 최초로 누가 만들었을까? 흙으로 기와를 만들 생각도 위대하지만, 그 모양의 수려함까지 정말 위대하지 않은가? 러시아의 둥그런 지붕보다도 더 뛰어나지 않은가? (내가 건축 전문가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목조 건물의 경우 고도의 조립 기술을 기반으로 하였다고 한다. 나무 쇄기와 암수 조립술처럼 지붕까지 그 기술을 적용시켜서 집 하나를 만들었다. 서양의 콘크리트 기술과 완전히 상반되는 위대한 건축술이 아닐까 쉽다.
기와는 목조 건축이 있었기에 탄생했을 것은 분명하다. 그러한 기와가 고대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웅장하고 아름답게 발전했던 것이리라.
그러고 보니, 영화 속 궁궐을 보면 지붕이 다 기와였네. 아, 그렇네. 중국이나 일본이나 기와가 있었다. 고대시대부터 궁궐이나 부잣집들은 기와집이었다. 사찰도 그러했다. 단지 가난한 백성들만 초가집이었다. 초가집 만들 정도면 기와집을 만들어도 되었을 듯싶지만, 기와를 얹으려면 그 무게를 지탱할 기초공사와 나무 기둥을 세우는데 비용이 많이 들었을 게다. 그래서 가난한 백성들은 초가집을 짓고 살았으리라. 우리나라는 황토가 많이 나서 흙으로 직접 벽을 만들고 흙으로 기와와 벽돌을 만들어 집을 지었다. 볏단이나 나무로 지붕을 얹기도 했다. 그런데 볏짚으로 지붕을 얹은 초가집은 장마철에 비가 새지 않았을까? 볏짚 지붕에도 숨겨진 고급 비법이 있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고대시대부터 고유의 기와집이 존재했었다는 것이 새삼 신비롭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이집트의 피라미드처럼 우리나라의 기와집 또한 정말 신비롭지 않은가? 그 당시 어떻게 이러한 집을 지었을까? 신기하지 않은가? 작금의 시대에도 아파트보다 한옥집이 훨씬 아름답고 사람이 살기 좋고 훨씬 건강한 집이 아니던가? 아니, 전 세계적으로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집이 한옥집이 아니던가? 너무나 흔해서 너무나 당연한 듯 여겨서 그동안 한옥 기와집의 신비로움을 인지하지 못했었다.
오늘 한옥 기와집의 신비로움을 알아차렸다. 고대시대부터 존재했던 기와집을 알아차렸다. 결국 기와집으로만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 보아도 과거와 현재가 별반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었다. 고층 빌딩 기술을 빼고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단층 건물의 경우에 한해서 비교한다면 한옥 기와집이 훨씬 훌륭하다는 점은 명백하다. 예나 지금이나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는 점이다. 기와의 기원이 기원전 3천여 년 전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오히려 현대 기술이 거꾸로 가고 있다는 반증이 확실하다.
우리나라 상고대 역사가 소실되었듯이 기와집들까지 모두 다 사라졌다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와집이 왜 한순간에 사라졌던 것일까? 초가집을 없애고 기와집을 만들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초가집을 없애면서 왜 기와집까지 다 없앴을까? 그 까닭은 무얼까? 아니, 기와 만드는데 비용이 많이 들었을까? 하기야 스레트가 만들기 쉽고 비용도 저렴했겠지, 아무리 그대로 그렇지, 기와를 얹을 생각을 안 하고 왜 스레트 지붕을 만들었을까? 자본주의가 확연히 드러나는 시점이다. 해마다 교체해야 하는 초가지붕 대신에 값싼 스레트 지붕이 비용적으로 유리했다. 그렇게 초가집들이 스레트집으로 바뀌었고, 기와집들은 (부자 집들은) 서양 콘크리트 건축물로 대체되었다. 아름다운 한옥을 없애고 뚝딱 집을 지을 수 있는 콘크리트 건축술을 선택한 것이다. 비용은 절감시키고 수익을 최대화했던 게다.
그렇게 저렇게, 초가집 대신 스레트집이 만들어지고 기와집 대신 옥상집이 만들어졌던 게다. 단층 집의 미적 수준은 지붕이 절반을 좌우하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스레트로 지붕을 얹고 부자들은 기와를 버리고 철근 콘크리트 평평한 지붕을 얹었다. 여기서부터 위대한 전통 한옥 건축술이 사라진 게다. 고유의 거주 문화가 소멸되었고 민족 정서와 생활관이 사라진 게다. 아름다운 한옥 건물 대신에 미적으로도 생활적으로도 매우 뒤떨어지는 콘크리트 양옥을 짓고 살 생각을 왜 했을까? 한옥보다 양옥이 더 아름다웠을까? 테라스가 있고 옥상이 있는 양옥에 매료되었을까? 너무나 어이없다는 생각을 아니할 수가 없다. 그 당시 건축가들의 안목이나 능력이 너무나 형편없었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도 분명 역사적 사실이 있었던 게다.
기와,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유산 중 으뜸이 아닐까 싶다. 가장 오래되었고 가장 위대한 건축술이 분명하다. 이집트 피라미드와 거의 동급으로 여겨도 될 만큼의 그 정도로 가치가 드높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서양 문명이 곧 동양의 위대한 문명을 대다수 파괴한 꼴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동서양의 외세에 의해서 고유의 우리 문명과 문화예술을 많이 상실했다. 주거지 문화까지 상실한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나라다. 사대주의, 식민사관, 동북동정 등 역사왜곡뿐만 아니라 일상생활까지 모든 것이 왜곡되었던 게다. 일부러 기와를 얹은 아름다운 우리 고유의 전통 가옥을 소멸시켰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보다 저렴한 콘크리트 건출술의 도입은 부차적인 것이었을 게다.
그동안 나는 왜 기와집을 근대 건물로 착각했던 걸까?
무엇보다 고대시대부터 존재했던 기와집을 당연히 알고 있었으면서 왜 착각하며 살았던 걸까? 1891년도 사진 속 기와집을 보면서 1950~60년대 풍경을 떠올렸다. 이렇게 우리나라가 발전된 것은 최근 반세기만이라는 것을, 그 이전의 고대와 중세와 근대까지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는 것을 생각했다. 다시 말해서, 고대로부터 우리나라 고유의 거주 문화는 매우 위대했다는 점이다. 나아가 고대로부터 우리 고유 문명은 그 수준이 매우 높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고대시대부터 기와집을 짓고 살았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기와집을 짓고 살았던 문명이라면 정말 위대한 문명이 아니었겠는가? 나는 이런 생각을 오늘 여기 메모한다.
물론, 지금도 기와집이 남아있는 곳이 있다. 수려한 전통 한옥 기와는 아니지만 달동네 같은 아주 오래된 미개발 지역에 잔재한다. 최근에는 일부러 기와를 얹은 고급 한옥집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부유한 동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또한 (무늬만 한옥이라) 전통 한옥이라 보기는 어렵다고 한다.
(C) 2024. 5. 2. HWANG HYUN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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