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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의 경험

You make me better

by 김규리

연애를 많이 해봐야 사람 보는 눈이 생긴다. 결혼은 선택이지만 연애는 필수다. 많이 놀아 본 사람이 시집도 잘 간다.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그를 만나기 전, 남자 친구가 있냐는 질문에 아니라고 대답하면 사람들은 ‘아니 어쩌다가 얼굴’이 되고는 했다. 아니, 어쩌다가 젊은 처자가 연애를 안 하고 있단 말인가. 어릴 때부터 듣던 질문과 반응에 나는 늘 의문이 들었다. 연애를 많이 하는 것이 나에게 이득인 걸까. 상대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볼 수 있는 눈은 다수의 연애 경험을 통해서만 가질 수 있는 걸까.


쉼 없이 연애해 온 선배가 있다. 그가 나에게 연애를 많이 한 것에 대해 후회한다고 고백했을 때, 사실 나는 조금 기뻤다. 처음으로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을 만난 것이다. 그는 연애도 적당히 해야 한다고 믿었다. 너무 많이 하다 보면 머릿속에 추억이 가득 쌓인다고 말이다. 스쳐 지나간 수많은 연인과의 시간이 한데 모여 뒤죽박죽 엉켜있는 것이다. 연애의 종착지인 결혼의 종소리를 함께 울리지 못한 연인들과의 기억이다. 그는 비교할 대상이 너무 많아 괴롭다고 말했다. 전에 사귄 사람은 이렇지 않았는데. 그전에 사귀던 사람은 이런 부분이 참 좋았는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지금의 연인과 과거의 연인들을 비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결국은 내가 이런 사람을 만나려고 그 사람과 헤어졌나 하는 후회마저 생긴다고 했다. 가 본 곳을 또 가고, 먹어본 것을 또 먹는다. 새로운 장소나 새로운 음식은 사라지고, 시간은 초조하게 흘러간다. 그렇다고 연애를 적게 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말은 아니다. 모두가 다른 경험을 하고, 설령 똑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각자 다른 의미를 얻는다. 중요한 것은 횟수가 아니라, 나에게 맞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어떤 선배는 내게 크게 한 번 데는 경험을 해보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그래야 좋은 사람을 알아볼 안목이 생긴다고 했는데, 전적으로 동감하는 말이다. 나에게도 한때 폭풍우와 같은 시기가 있었고, 모든 걸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도 반드시 무언가가 남는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슬픈 기억의 한 덩어리로만 취급하고 두 번 다시 열고 싶지 않았던 상자도, 시간이 지나며 그 안에서도 기뻤던 일을 찾을 수 있을 만큼 마음이 회복되었다. 하나의 사건에도 좋고 싫은 기억이 한데 모여 모호한 감정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명확히 정의 내리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은 채 있는 그대로 안고 가야 한다. 나는 세상을 슬픔과 기쁨으로 정확히 나눌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조금 더 성숙한 사람이 되었다. 어느 유명한 역술가가 ‘성숙한 두 사람이 만난다면 굳이 서로의 궁합을 볼 필요도 없다’라고 했던 말을 참 좋아한다. 혹여 운명이 우리를 갈라놓으려 하더라도, 내가 성숙하고 좋은 사람이라면 그와 헤어지지 않을 거라는 부적 같은 문장이기 때문이다. 그를 만나기 전에는 단순히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를 만난 후에는 그와 같은 좋은 사람을 놓치고 싶지 않기에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그는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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