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진짜 날 것의 인생이 시작되는 기분이 들었다.
입국 심사가 다가오자 나는 유심히 심사관의 관상까지 살피며 어디에 서야 할지 고민했다. 처음엔 단지 숫자의 의미 때문에 럭키 7번에 서려고 했는데, 공항 스태프의 지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8번 줄에 서게 되었다. 그러자 곧 7번 심사관 위로 소리 없이 붉은 경고등이 돌기 시작하더니 한국인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세컨더리 룸으로 안내되었다. 가 본 적 없지만 어마어마하게 무서운 곳이라는 것만 알고 있다. 한순간에 럭키 세븐에서 언럭키 세븐으로 강등되었지만 사실 내가 서 있는 줄도 만만치 않았다. 내 앞에 한국 어머님이 영어를 못해 10분째 심사관 앞에 서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기다림이 너무 길어지자 스태프가 다시 또 나를 불러 이번에는 13번으로 가라고 했는데, 자꾸 번호가 바뀌자 나는 속으로 ‘아, 저 사람이 지금 내 운명을 바꾸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옆 칸의 심사관이 멀리서 내게 오라고 손짓했고 내 운명은 다시 한번 바뀌게 되었다. 뉴욕으로 들어오는 과정은…, 솔직히 진짜 무서웠다. 미국인 유튜버인 올리버 쌤이 한국인 아내가 입국 거부될까 봐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는 영상이 내가 입국하는 같은 날짜에 올라왔는데 그건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한식당 사장님이 요즘 이삼십 대 여자 혼자 들어오는 경우 대부분은 어렵다며 내게 정말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최근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눈물의 재회일 줄만 알았던 우리의 두 번째 만남은 내 예상과는 달랐다. 우선 그가 지각을 했다. 작년과 달리 이번에는 아침에 도착하는 비행기였는데, 그래서인지 내 눈에 공항이 묘하게 달라 보였다. 우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옆에 바다가 보이는 것이 이상했다. 입국 심사장이 전에 비해 유독 작아 보이기도 했다. 게다가 출국장에 나갔는데도 그가 보이지 않자 삼박자가 모두 들어맞으면서 내가 잘못된 공항에 내린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이 모든 상황이 꿈처럼 아득해졌다. 비몽사몽인 상태와 더불어 입국 심사에서 탈탈 털리고 나오니 머리 회전이 멈춘 듯했다. 겨우 통화가 되고 나서야 그가 아침부터 침대를 세 번이나 조립했다 뜯기를 반복하는 바람에 지각하게 된 걸 알게 되었다. 내가 도착하기 전에 끝내고 싶었던 그가 너무 열중한 탓이었다. 하지만 뉴욕의 살인적인 물가를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만했다. 그는 내가 오면 돈이 두 배로 나갈 것을 대비해 이리저리 일을 늘려놓은 상태였다. 쉬는 날도 없이 일하던 그가 내가 오는 날짜에 맞춰 시간을 뺏고, 오늘에서야 겨우 침대를 설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다리의 힘이 풀려 캐리어 옆에 쪼그려 앉아 그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사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고자 영상으로 남기려고 했다. 하지만 그와의 첫 만남에 너무 긴장한 탓에 제대로 찍을 수가 없었는데, 오늘에야말로 제대로 기록하고자 나는 그가 내리는 에어 트레인 (공항과 인근 철도역을 연결하는 무인 전철) 앞에서 폰을 들고 그를 기다렸다. 곧이어 그가 미안함과 반가움이 섞인 얼굴로 한달음에 달려와 나를 안아줬다. 거의 1년 만이었는데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그 역시도 마치 어제 본 것처럼 익숙하다고 말했다. 그렇게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되었다.
뉴욕에 온 며칠간은 시차 적응할 새도 없이 집 청소와 가구를 사러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거실에는 완성되지 않은 식탁과 의자, 그리고 정리되지 않은 부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 필요한 것들을 사러 다니면서 그가 조금 힘들어했지만(그는 내게 짐 옮기는 일을 절대 시키지 않았다), 나는 우리가 0부터 시작한 이 나날과 손으로 직접 조립한 이 가구들이 먼 훗날 그리워질 날이 올 거라고 말했다. 그와 집을 쓸고 닦고, 와이파이 아이디와 비밀번호에 우리의 이름과 생일을 집어넣고, 나의 취향이 가득 담긴 민트색 침구와 러그로 방을 꾸미고, 그렇게 점점 우리다운 공간으로 변해가는 집을 보며 나는 이제서야 나의 진짜 날 것의 인생이 시작되는 기분이 들었다. 과거의 나는 스스로 틀을 만들어 그 안에 자신을 가둬놓으려고 할 때가 많았다. 어딘가에 소속되거나 폐관 수련 하듯 무언가를 갈고 닦고 준비하는 편이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마치 임재범 노래 ‘비상’의 가사처럼, 나도 이제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으레 평범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하지 않고 살았는데, 왜인지 이제는 그 평범한 것들이 나를 날 것의 세상으로 내던져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그에게로 온 이유는 거실에 놓을 소파의 색깔과 부엌에 둘 의자를 스스로 고르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세상만사에는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법칙이 있다. 어떤 새벽에는 서럽게, 아주 서럽게 아기처럼 엉엉 운 적이 있었는데, (미국에 와서 언제 처음으로 울지 궁금했었는데 그게 4일 차였다니) 혼자 자버릇하던 그가 자꾸 내 자리를 침범한다는 아주 사소한 이유였다. 나도 내가 이런 사소한 일로 그리 서럽게 울게 될지 몰랐다. 잠 곁에 자꾸 침대 중앙으로 밀고 들어오는 그로 인해 나는 다른 한쪽으로 굴러 떨어질 것 같았다. 그러자 갑자기 부산에 있는 나의 퀸사이즈 침대와 그 옆에서 편안하게 자던 반려견 양파의 얼굴이 떠올라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다. 단지 편하게 자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더 복합적인 마음이었을까. 그동안의 스트레스와 긴장, 아니면 어떤 그리움 혹은 안도감. 무엇이 나를 그토록 서럽게 울게 했는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자다 깬 그가 너무 놀라서 내게 왜 그러냐고 물었지만, 너 때문에 잠을 편하게 자지 못하겠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민망해져서 그냥 엉엉 울었다. (정말 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나의 뉴욕 생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