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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호

결핍은 불편함이 아니다

by 김규리

뉴욕에 온 지 어느덧 한 달이 되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마치 종합병원이 된 듯했던 몸도 하나둘 아픈 곳이 낫기 시작했다. 이곳에서도 나만의 루틴이 생겼고, 조금씩 안정감이 찾아왔다. 소호를 걷다 우연히 들어간 카페가 마음에 쏙 들기도 하고, 간판만 보고 들어간 식당에서 깜짝 놀랄 만큼 맛있는 식사를 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지만, 그 역시도 꽤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요 며칠 ‘행복하다’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단순히 여행자의 설렘 때문은 아니었다. 불쑥불쑥 마음이 충만해지는 순간이 찾아와 한동안 스스로 그 이유를 물었다. 그가 출근한 낮에는 대부분 혼자다 보니 나 자신과 대화할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던 어느 오후, 설거지를 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그건 내가 기대를 내려놓았기 때문이라는 걸. 화려한 뉴욕에서 찾은 행복의 이유를 ‘낮아진 삶의 기대치’라고 말하면 모순처럼 들리겠지만, 진심이다.


마음을 비우는 일은 물리적으로 비우는 일과 다르지 않다. 내가 기대감을 내려놓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새집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서 본의 아니게 미니멀리즘 라이프스타일을 따르게 되면서였다. 다행히 그는 물건을 잘 사지 않는 사람이고, 나 역시도 그렇다. 그래서 처음 이 집에 들어왔을 때처럼 여전히 거실은 텅 비어 있지만, 오히려 그게 마음에 든다. 며칠 전에는 다 먹은 과자 상자의 칸막이가 유난히 튼튼해 보이길래 버리지 않고 그의 양말을 넣어 정리했다. 중국의 추석 과자인 월병이 네 개 들어 있던 상자였는데, 한 칸에 양말 두 켤레씩 넣으니 딱 맞았다. 그 김에 몇 벌이 없는 그의 티셔츠와 바지도 차곡차곡 개어 박스에 넣었는데, 이토록 뿌듯할 줄이야. 나의 속옷도 여행용 압축 파우치에 넣어두고 쓰지만, 방 안에 서랍장이 없다는 사실이 무척 홀가분했다. 집에 물건이 없으니 정리할 시간 대신 내 할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원래부터 이렇게 살던 사람은 아니었다. 과거의 나는 반대로 가지지 못한 것에만 시선을 두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것이 어느 정도 꿈을 이루는 데 필요한 감정이지만, 이게 욕심인지 아닌지 균형을 유지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하지만 당시 미성숙했던 나는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 매일 괴로워했다. 그렇게 내 인생에도 우울한 계절이 있었다. 삶이 완전히 무기력해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분명 생애 가장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나를 짓누르는 우울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갖 매체에서 방법을 찾아보며 막힌 숨통을 조금이나마 틔워보려 애썼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어디서 배운 것도 아닌데 자연스레 하루에 하나씩 버리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방 안에 필요 없다고 느껴지는 물건을 찾아내 버리고 비우는 일을 30일간 반복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게 효과가 있었다. 물건을 하나씩 버리면서 내 안의 안 좋은 기억과 감정까지 모두 함께 비워내는 듯한, 일종의 명상 같은 과정이었다. 그때 나는 물건을 적게 가질수록 오히려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러면서 이미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이 모든 것들이 연결되는지 알 수 없지만, 하나의 물꼬가 트이자, 모든 긍정적인 것들이 내 삶으로 밀려들어 왔다.


뉴욕의 텅 빈 집에서 오랫동안 잊고 있던 감정이 다시금 생생히 되살아났다. 이 낯선 나라에 내 몸 하나 누일 침대가 있고, 밥을 지을 밥솥이 있고, 건강한 정신이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하고 행복하게 느껴졌다. 없으면 없는 대로, 이미 가진 것의 범위 안에서 어떻게든 활용하고 채워나가자 마음까지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런 식으로 내 살림을 하나씩 꾸려나가는 일 역시 즐거웠다. 어쩌면 나는 오랫동안 나만의 살림을 꿈꿔왔는지도 모르겠다. 내 가위, 내 밥솥, 내 침대 옆 협탁, 내 옷걸이, 내 책상. 모두 내가 직접 고르고 선택한, 나에게 꼭 필요한 것들. 그 모든 물건이 하나같이 소중하고 귀엽게 느껴졌다. 또한 나를 둘러싼 낯선 환경이 나를 자유롭게 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의 생활은 남들이 내게 하던 ‘기대’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이니까. 혹여 내가 궁상스러워 보이지는 않는지 눈치 볼 필요도 없이, 내가 옳다고 여기면 과자 상자에 양말을 하나씩 포개어 정리하면 그만이었다. 내게 익숙한 사람들과 사회로부터 떨어져 나와 보니, 나도 꽤 눈치 보며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며칠 전 H 마트에서 가습기를 사고 돌아온 날 밤, 일기에 가습기를 산 게 이렇게까지 행복한 일이냐고 적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쉽게 찾을 수 있던 생활에서, 이제는 필요한 게 생기면 며칠에 걸려서 가질 수 있는 생활로 바뀌었지만 힘들지 않았다. 기다린 만큼 손에 넣는 기쁨이 두 배로 커졌기 때문이다. 결핍은 불편함이 아니었다. 결핍은 사소한 것에도 감사함을 느끼게 해주는 좋은 경험이었다. 그날 처음으로 가습기를 켜두고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목구멍이 훨씬 부드러웠다. 더 이상 안약을 넣을 필요도 없었다. 같은 날 소호 거리를 걷다가 그가 고가의 옷을 사주겠다며 매장에 들어섰는데, 나는 끝내 아무것도 고르지 않았다. 내게 꼭 필요한 것은 단지 2만 원짜리 가습기였다. 덕분에 다가오는 뉴욕의 건조한 겨울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그가 내게 가장 좋은 것을 주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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