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 속에서 내가 가진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잊어버린 셈이다
그와 처음으로 태국 음식을 먹은 날이었다. 전날 밤, 이자카야에서 서로 티격태격 다투고(나는 싸움이라 불렀고, 그는 토론이라 했다) 다음 날 화해하려고 마주 앉은 자리였다. 어둡고 시끄러운 이자카야에서의 대화는 어느 순간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마음이 다쳤다. 무엇이 단초였는지는 지금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우리 둘 다 하루 종일 걸어서 피곤했고, 주고받는 말들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하지만 우리는 매번 금세 관계를 회복했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럴 거라 믿었다. 전날과 달리 태국 식당은 통유리로 쏟아지는 햇빛 덕분에 따뜻했다. 친절한 태국인 직원이 정성스럽게 음식을 차려낼 때마다 우리의 마음도 조금씩 누그러지는 듯했다. 서로 다툰 이유를 알 수 없으니 화해도 알 수 없는 사이에 진행되었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사랑싸움인가 보다 하고 그냥 그렇게 넘어갔다. 그러다 며칠이 지난 어느 오후, 집에서 설거지하던 중 문득 한 아이디어가 내 머릿속을 스쳤다. 우리의 좋은 관계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 해야 할 몇 가지 일들에 관한 아이디어 말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정답을 모르는 게 아니다. 다만 자주 잊고 살 뿐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칭찬받는 걸 좋아한다. 인간뿐이랴, 고래까지 춤추게 하는 것이 칭찬이다. 그런데 그와 함께하는 시간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나는 어느 순간 자연스레 ‘노력’을 멈추고 있었다. 익숙함 속에서 내가 가진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잊어버린 셈이다. 사실 그는 너무나도 잘하고 있었다. 굳이 수치로 표현하자면 90%의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나는 100%의 완벽함을 기대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자주 나에게 고생 많았다며 등을 토닥여주고, 똑똑하다거나 착하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어떤 힘이 되는 말을 해주었는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가 싸웠던, 아니 토론했던 이유가 칭찬의 문제는 아니었지만, 그 밑에 깔린 근본적 원인을 생각해 보면 칭찬이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칭찬의 다른 말은 ‘인정’이기 때문이다. 상대의 존재와 노력을 발견하고,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 그러니까 그에게 매일 칭찬 한 가지씩만 해도 우리의 관계에 큰 변화가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지금도 좋지만, 지금보다 더 좋아질 수도 있으리라는 기대가 생겼다. 무엇이든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붙이길 좋아하는 나는, 그에게 비밀로 한 채 혼자 ‘1일 1칭찬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그에게 ‘아무도 당신처럼 하지 못할 거라며, 정말 대단하다’라고 칭찬했다. 매번 이렇게 한바탕 큰 사건이 지날 때마다 꼭 완벽하게 좋은 시간이 찾아오곤 한다. 글을 쓰며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쩌면 함께 어려움을 뛰어넘으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곧 추수감사절이기도 하고, 우리가 처음 대면으로 만난 지 1주년이 된 날이라 그가 고급 스시집을 예약했다. 꽤 비싸기는 했지만 아무렴 좋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무슨 맛이길래 사람들이 큰돈을 지불하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이를 식경험이라고 한다면 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았다. 가끔은 극 효율주의자가 되어 한 가지 일에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싶어 하는데, 단순히 먹고자 하는 게 아니라 좋은 음식 경험이 쌓이면서 언젠가 미래에 도움이 되길 바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특별한 날에 그의 선택에 조금이라도 반대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맛있는 음식과 즐거운 대화를 이어갔다. 식사 도중에 그가 내 말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묻기도 했는데, 그가 내가 느낀 바 그대로 대답해 줄 때의 쾌감은 짜릿했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 장소로 이동하면서 비 오는 거리를 조금 걸었다. 시원한 밤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왔다가 빠져나갔다. “비 오니까 뉴욕이 더 뉴욕 같아.” 점점 익숙해지던 도시가 어느 순간에는 이토록 새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다음으로 도착한 장소는 Brandy Library라는 곳이었다. 25살 이상만 들어갈 수 있는 위스키 바였는데, 어마어마한 양의 술병이 벽면에 빼곡히 전시되어 있었다. 마치 서재에 꽂힌 책처럼 말이다. 직원이 가져다준 메뉴판은 마치 노래방 책자처럼, 술 이름이 알파벳 순서대로 끝없이 나열되어 있었다. 왜 이름에 도서관이 들어가는지 절로 납득이 가는 순간이었다. 그와 가볍게 와인과 위스키 한 잔을 마시며 우리는 미래에 관해 얘기했다. 나에게는 삶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계획을 세우지 말라더니, 이제는 본인 입으로 술술 계획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앞으로 우리가 가족이 된다고 생각하니 아마 그도 변하는 것이겠지. 그의 이런 변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는 일 또한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는 내가 있어 든든하다고 말했다. 한동안 칭찬의 말을 잊고 살았지만, 나의 존재만으로 그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는 사실에 조금 안도했다. 아무도 없는 이곳 뉴욕에서, 확실히 우리는 서로의 언덕이 되어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그날 밤, 그와 함께 비 오는 뉴욕 거리를 걸으며 나는 알았다. 이 도시만큼이나 우리의 이야기도 끊임없이 변하고 새롭게 이어지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