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시내로 나가
처음으로 한 일은 단골 추로스 집에 들러 추로스를 먹었다.
이곳보다 더 맛있는 곳이 있다고 하지만 스페인에 도착해
이 장소에 가야만 안도감이 비소로 들었다.
여러 나라를 다니는 직업을 가지다 보니
특정 나라에 도착해 출근길에 하는 습관이자 의식 같은 게 있다.
좋아하는 곳을 단골가게로 만들어 주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자주 먹는 메뉴를 만드는 일이다.
이번에도 단골로 만들고 싶은 카페가 숙소 옆에 생겼다.
친절한 아저씨가 반겨주는 카페에서 아침을 먹고 기차를 타러 간다.
목적지는 바르셀로나 근교 해안도시인 시체스!
시체스는 10년 전 출장 때 자유시간이 나서 잠시 여행 겸 갔던 도시였다.
그때 시체스를 여행하면서 혼자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10년 뒤에는 남편이랑 올게'
나는 여전히 남편이 없이 시체스로 향했다.
정처 없이 걷다 보면 예쁜 해변이 나오고
아기자기한 골목이 반겨주는 자그마한 도시 시체스
기차역에 내려 구글맵을 보지 않고 발이 닿는 대로 걸었다.
예쁜 샵이 보이면 들어가 구경도 하고, 사람들이 많은 젤라토 집에서 젤라토도 먹는다.
계획 없이, 준비 없이 온 여행이 주는 행복감은 이런 거구나
늦여름의 바캉스를 즐기는 사람들이 해변에 가득했다.
바다가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가 깔라마리와 맥주를 시키고
이번 여행에서 읽으려고 산 김훈 작가의 허송세월 책을 펼친다.
뜨거운 햇살, 시원한 온도, 잔잔한 바람, 지중해의 바다냄새
모든 게 완벽하다.
'혀가 빠지게 일했던 세월도 돌이켜보면 헛되어 보이는데
햇볕을 쪼이면서 허송세월할 때 내 몸과 마음은 빛과 볕으로 가득 찬다.
나는 허송세월로 바쁘다.'
작가의 말에 격한 공감을 하며
책을 읽다 잠시 낮술에 취해 눈이 감긴다.
시체스에서 보내는 오늘 이 허송세월이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득 찬 시간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스페인 여행에서 무얼 했나요?라고 묻는다면
이 사진 한 장을 보여줘야겠다.
내 인생에 손꼽을 행복한 찰나의 순간이자
최고의 허송세월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