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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릴리 Oct 04. 2024

스페인이라서 다행이야

익숙한 일터를 여행하기

49만원 짜리 땡처리 항공권으로 시작된 이번 바르셀로나 여행의 일정은 7박 9일이었다.  

사실 땡처리 항공권은 여행사나 항공사가 울며 겨자 먹기로 원가로 판매하는 티켓이라

승객에게는 로또 항공권이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엄청난 손해이다.


내가 산 항공권도 모 여행사에서 모객이 충족이 되지 않아 원가 판매한 티켓으로

인, 아웃이 바르셀로나였고 일정도 7박 9일로 해당 여행사의 일정과 동일했다.


출발 3일 전 구한 티켓이라 여행 동선이나 숙소 일정도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바르셀로나는 내가 가는 기간에 국제 세미나 시즌이라 숙소비가 한껏 올라있었고,

혼자 가는 여행이라 너무 오른 숙소비가 부담되어서 고민 끝에 호스텔을 예약했다.


유럽여행 동행 카페에서 우연히 대화하다가 만난 A는

알고 보니 같은 비행기에다, 내가 고민하던 호스텔까지 같이 예약한 친구였다.

바르셀로나 공항에 내려 A와 함께 공항버스를 타고 호스텔로 향했다.


날씨는 맑았고, 몸에 닿는 바람과 온도가 너무나 완벽했다.

공항버스에서 보는 시내의 풍경은 익숙한데 또 한편으로 낯설었다.


사실 항상 그동안 출장으로 유럽에 입국해서 첫 일정을 하러 가는 길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수십 명의 손님들이 낯선 공항에서부터 나를 믿고 의지하고 있다는 부담감과

나의 모든 행동을 주시하고 있다는 걸 알기에 마음이 편해본 적이 없다.


바르셀로나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버스에서는

늘 손님들에게 여행 시 주의할 점이나 안내사항을 녹음 기계처럼 읊어내야 했다.


나는 스페인을 수십 번을 여행 다녔지만

생애 첫 출국 때 스페인을 여행했을 뿐,

그 외엔 매번 일하러만 왔던 고된 일터였다.


나와 함께 하는 손님들에게는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여행지이지만

나에게는 밥벌이를 하는 일터, 생존을 위해 버티고 참아내야 하는 곳이다.


유럽 여행을 일로 하면서 지겹도록 다녔던, 지독히도 싫어하는 장소가

경찰서, 대사관, 응급실 3종 세트인데

그토록 싫은 3종 세트를 자주 다녔던 나라가 스페인이었다.


'백 번째 만에 온 스페인은 일이 아니니

그 모든 것들에서 부디 자유로워질 것, 나만을 위한 여행을 할 것!'


혼자 이런저런 생각과 마음을 품고서,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다.

체크인을 했는데 8인실 남녀혼성 도미토리에 4번 침대에 배정이 되었다.


이 나이에 도미토리에서 다시 자게 되다니

마치 18년 전 첫 여행 때가 생각나서 혼자 웃음이 났다.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스페인이 참 좋다.


이번에 스페인이 나를 잠시 불러준 것 같다.

너 아홉수라서 좀 힘들어 보이니까, 잠시 쉬어가라고.


난데없이 뜬 땡처리 항공권의 목적지가 스페인이라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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