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놀란 이야기
제주도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인 하루는 좁은 길에서 펼쳐졌습니다. 3월의 푸르름이 너무 예뻤기에 편의점까지는 아니라도 조금 더 걷기로 했죠. 그러자 꽃길이 나왔어요.
천천히 걷다 보니 가슴이 막 뛰더라고요. 봄날의 두근거림이었는지 기분이 좋아져서 총총거리며 걸음이 빨라졌어요. 그러자니 뛰고 싶어지는 거 있죠.
30분쯤 걸었지만 사람 그림자도 없던 길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다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묵은 마음이 흩어지듯 너무도 가볍게 느껴지던 감동은 뜻밖이었고, 그게 여행의 맛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때 갑자기 등 뒤가 오싹해서 멈추어 섰습니다.
바로 뒤에 큰 개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 개가 저를 앞지를 수도 있었을 텐데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던 걸까요? 다시 생각하면 그게 더 무섭기도 합니다만 어쨌거나 개는 저를 향해서 짖어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동네 개들이 전부 엄청난 소리로 짖어댔어요.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개를 향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개도 더 크게 짖었고, 저는 거기에 지지 않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누군가 그걸 듣고 나타나지 않을까 했지만. 매우 짧은 순간, 속이 뻥 뚫리는 걸 느꼈습니다. 지금껏 속으로 삼켜오던 그 무엇이 터져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주변에서는 계속 개들이 짖는 소리가 울려오고 있었지만 제 앞에 있던 개가 짖던 것을 멈추고 저를 보고만 있었습니다. 심장은 터질 것처럼 뛰고 있었고, 개가 달려들면 막을 게 아무것도 없이 저는 맨손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천천히 몸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더 천천히 걷기 시작했습니다. 오던 길을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아 숙소 반대 방향으로 계속 내려가야 했습니다. 모든 신경을 등 뒤로 향했고, 개가 따라오지 않는다는 건 알 수 있었지만 돌아볼 엄두가 나지 않아서 계속 앞만 보고 걸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길이 끝나는 곳까지 걸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죠. 여기는 정말로 다른 길이 없었거든요.
그렇게 좁은 길이 끝나고 큰 길이 나올 때까지 계속 걸었습니다. 마침내 편의점에 도착했을 때까지 여전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습니다.
지도에는 보이지도 않는 도착지점에서 출발점까지 아래로 난 좁은 길 어디를 다녀왔습니다. 지도에 나오지는 않더라도 직선으로 내려가는 편이 더 빠를 거라고 생각했었죠.
그날 이후 며칠 동안은 도로 위에서 만나는 안전 고깔에도 소스라치게 놀라고는 했습니다. 마치 개가 앉아 있는 것 같아서, 시설물이 다 개로 보이더라는.
개 놀란 이야기
어쩌면 저보다 개가 더 놀란 것 같기도 해요. 그 길에서 터져나간 비명이 저를 꿈에서 깨어나게 했으니까요.
개를 만난 공포의 순간에 내지른 비명이 가져다준 '환희'의 정체가 무엇일까 궁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늘 좁은 길에서 만나는 것들은 기대 이상의 발견을 가능하게 합니다. 웅덩이에서 트렁크를 들어 올릴 수 있는 체력과,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나무에 매달려서 느낀 껍질 감촉, 그리고 예상치 못한 공포심에서 속이 뻥 뚫리는 체험.
(여기까지 쓰다가 외사촌 언니의 부고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좁은 길을 다녀왔습니다. 저의 좁은 길이 부끄러운 밤, 그 길에 놓인 가여운 사람들을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