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나를 무너뜨리고 다른 누군가를 떠받치고자 하는 마음이다
"평범하게 행복하게 살아라"
엄마의 바람대로, 나는 최근에 ‘결혼 하고 싶다’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실제 당장 결혼을 하고싶다기 보다는, 그런 마음이 짙게 눌려져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이 생각의 껍질을 조금만 더 벗겨내자면 ‘사랑하고 싶다’ 하는 마음이 내 안에 아주 어릴 때부터 묻혀있었을 것이다.
에리히 프롬은 그의 책 ‘사랑의 기술’ 에서 사랑이란 빠지거나 느끼는 것이 아닌. 마치 피아노 연주 기술을 익히는 것처럼, 능동적인 자세로 행하고 연마하는 기술이라고 말한다. 나는 뭔가 늘 사랑이 두려웠다. 너무너무 사랑받고 싶어서 였을 것이다. 애정결핍. 너무너무 사랑받고 싶어서 너무너무 두꺼운 벽을 평상시에 쌓고 살아왔다. 너무너무 사랑받고 싶은 상태에서는 타인을 제대로 사랑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사랑은 결국 초콜릿 같은 것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가나초콜릿을 먹고 있다가 친구가 유럽에 다녀와 사온 유럽산 초콜릿을 기다리는 그런 마음가짐. 혹은 마음 속에서 유럽산 초콜릿, 혹은 직접 수제로 만든 초콜릿 안에 말린 무화과가 설탕대신 들어간 초콜릿 마냥, 내 인생 최고의 초콜릿은 어떤 모습일지를 이리저리 상상하고 조각하곤 한다.
사랑에 대한 글을 쓰자니 마음이 간지럽다. 사실 사랑이란 내게 꽤 익숙한 주제다. 주제라는 말에서 느껴지듯, 나의 20대 초 ‘사랑’은 꽤 중요한 삶의 철학적 주제였다. 이 사람도 멋있고. 저 사람도 멋있고. 노는 거 잘하는 사람. 공부 잘하는 사람. 열심히 뭔가를 하는 사람. 친구를 잘 챙기는 사람. 사회문제를 고민하는 사람. 등등등등 이 사람도 저 사람도 그 사람도 다 인정해주는 게 사랑 같이 느껴졌다. ‘행복’을 인생의 주제로 하자니, 저 사람은 뭔가 행복하지 않아보이고, 저 사람은 뭔가 행복해보이고. 한 가지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필터는 그 어느 누구도 담을 수 있는 필터라는 게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사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는게 겁이 났다. 그래서 한동안 아주 오래 내 곁 가까이에 사람을 두지 않았다가, 그렇게 누군가를, 혹은 누군가들을 가까운 곁에 둘 때면 꼭 오랜 자책과 후회, 아쉬움으로 몸서리를 치곤 했다. 내 마음 속의 초콜릿 자리는 꼭 사람을 살려야 하는 것처럼, 꼭 완전하게 변화로 거듭나야 하는 것처럼, 그래서 앞으로 또 무엇이 나를 회오리 치듯 지나가버릴 지 항상 더듬이 바짝 서 있는 상태로 나를 살게 만들지 않았을까?
너무 사랑받고 싶어서다. 너무 애정결핍이라고 느껴서. 하지만 작년 쯤엔가. 내 마음의 초콜릿 자리가 사실은 비어져 있지 않았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아. 사실 내 마음 속에 빈자리가 있는 게 아니였고, 내 마음 속 빈 어떤 부분을 마치 내 마음이 있는 곳이라 생각했다 말하면 좋으려나? 아니면 어리석게도 사랑을 받는다는 것을 오롯이 나만의 방식으로만 판단하고 재단하여 그 외의 다른 사랑들에 대해 전혀 자각하지 못했다고 말하면 좋으려나? 나의 엄마는 그 날 마트 계산 일을 하며 하루 번 돈으로 아들을 불러 막회를 사줄만큼 나를 사랑했고. 나의 아빠는 2주마다 전주에 우리들을 보러오는 일들을 새고는 앞으로 자기가 죽기 전 나와 아빠가 볼 날이 400일이나 남았을까를 헤아릴만큼 나를 사랑했다. 그냥 내가 그걸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뿐.
그래도 나는 만족하지 않았다. 사랑의 자리 그 아래에 진정한 나를 위한 자리가 있지 않을까 하고 더 파고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지. 마치 내 인생이 1층 바닥에 도달한게 아닌 아직 2층 계단 정도 밖에 오지 않았다며. 더 파고들 깊이가 남았다고 또 나만의 상상을 만들어냈다. 사실 나를 떠받치는 온갖 사랑들을 내가 내 손으로 눈을 가린 채 모두 외면하고는, 더 무너질 준비만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또한 너무 사랑받고 싶어서였을까? 내가 원하는 진정한 초콜릿을 아무도 주지 않는 것 같다고 느껴서였을까? 그 마음만은 갸륵하다. 더 큰걸 바라는 마음이 말이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는 너무 사랑받고 싶어서 너무 많이 노력한 나의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이유가 혼자서는 절대 찾아낼 수 없는 서로의 아름다움을 발견해주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각기 다른 모습으로 아름답다. “
그래서 실은 이 말이 참 왜인지 내게 시리게 다가왔다. 어떤 누군가의 아름다움을 내가 발견해주려는 노력이 꼭 나를 무너뜨리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나에게 사랑이란 그런 것이었다. 나를 무너뜨리고 다른 누군가를 떠받치고자 하는 마음이다.
이것은 사랑이 아닌데.라고 말했다가 다시 지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혼자는 사라지고 서로만 남는구나. 어쩌면, 내가 사랑에 대해 느낀 그 마음이 사랑이기도 하겠다. 하지만 그 안에는 무너뜨릴 나라던가, 떠받칠 누군가라는게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사랑이라는 것이 내 마음을 채웠다가도, 가끔은 잠시 자리를 비우다가도. 그렇게 서로가 함께 서로일 수도 있겠다. 내가 사랑이라 느낀 그 모든게 정말 사랑일 수도 있겠다.
피아노를 친다고 모두 음악을 연주하는게 아니듯, 그 모든게 정말 사랑이라면 사랑을 정말 잘 해내야할 것 같다. 쉼표도 음악의 일부이듯, 사랑을 언제나 반기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도 있을 것이다.
사랑에 대해 오래도 주저리주저리 거렸다.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머리도 굴려보고 손도 굴려보고. 참 사랑을 하고 싶어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