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사랑의 마음을 그대로 둘 생각을 하지 않는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2년동안 심리상담을 받았다. 여느 때처럼 상담을 하던 어느 날, 희끄무리한 눈물이 복받쳐 올라왔다. “너를 사랑해”라 말만 했던 화려한 이들의 거짓말에 화가 났고. “너를 사랑해”라 말하지 않아도 항상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던 엄마의 인생이 나를 덮쳤다.
2004년,
사랑. 옥도는 시급 4000원을 받고 마트 계산대 직원으로 일한다. 한창 젊은 나이인 서른 넷, 이혼하고 자기인생을 살기로 결심했으나 현실은 녹록치 못하다.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집에 혼자 있는 아들을 옷가게 앞으로 부른다. 만 이천원, 만 구천원, 갈색 티셔츠, 청바지. 하루의 반절에 해당하는 돈으로 옷을 산다. 또 하루는 삼만원, 하루에 해당하는 돈으로 막회를 먹으러 간다. 이야기는 많이 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해봤자 미안함의 크기가 다 사라지기 전까지는, 미안하다는 말이 사라지지 않고 눈물처럼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삶을 최선을 다해 살고 있음에도 미안함의 무게마저 짊어져야 한다니. 그보다 진실한 사랑은 세상에 있을 수 없다.
사랑. 그 나이 대 어린 애들은 음악학원에 보내줘야 한다던데. 생일에 요즘 애들이 이런걸 좋아하더라. 아이가 중학교 가기 전에 영어나 수학은 학원에서 좀 챙겨줘야해. 세상은 옥도에게 진실한 사랑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 아이의 감정을 잘 돌봐줘야하고요. 아이가 집에 혼자 있으면 안되고요. 어린 시절 추억도 많이 쌓아줘야하고요. 제주도 여행쯤 가봐야하고요. 뉴질랜드 호주 해외로 가족끼리 여행가면 좋고요. 교육에는 시기가 참 중요해서요, 그 시기별로 기회를 충분히 제공해야합니다.
세상은 사랑의 마음을 그대로 둘 생각을 하지 않는다. 사랑의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진실하게 마음을 전달할 용기를 잃게 만든다.
2023년,
상담 도중에 나의 엄마 이야기를 하면서. 희끄무리하게 카페인 두 잔을 먹은 것 같은 느낌이 또 얼굴에 올라왔다. 슬픔, 아니 울음을 꾹 참고자 저항하는 느낌이다. 여기서 체면을 생각한다면 이 느낌의 불편감을 생각하고 이 느낌을 없애버리고 싶어하겠지만. 여기서 나의 진실을 생각한다면 이 느낌이 주는 흥분감에 더 내 말과 몸을 맡겨버릴 것이다. 분노. 화를 더 낸다. 거짓을 진실처럼 꾸미는 이들에게.
잘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
난 잘 알지도 못했다. 내가 얼마나 깊은 사랑을 받고 자랐는지에 대해서. 늘 부족하다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사랑을 어떻게 측량할 수 있을까? 내가 진짜 사랑을 받았는지 가짜 사랑을 받았는지 어떻게 측량할 수 있지? 그것을 물질이라고 볼 수도 있고. 그것을 정서적 케어라고 볼 수도 있고, 다양한 경험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사랑하는 사람이 그 삶에서 최선을 다했으며, 그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더 사랑하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함을 간직하고 있다면, 그것은 진짜 사랑이었다고 생각한다. 미안함이 사랑의 필수조건은 아니지만, 그 사람의 사랑이라는 마음의 크기가 온전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꽤 좋은 증표인건 맞다.
그런데 난 잘 알지도 못했다. 내게 말하는 미안함이 사실인 것 마냥 나는 살아왔다. 내게 말하는 미안함이 사실인 것 마냥 나는 내가 받은 사랑을 원망했다. 내게 말하는 미안함이 사실인 것 마냥 나는 부족한 존재라고 느끼며 살았다. ‘내게 말하는 미안함’ 그 속에 사랑이 언제나 현재한다는 사실은 미처 알지 못한 것이다.
분노와 화는 슬픔으로 서서히 바뀐다. 억울함. 왜 미처 그 사실을 알지 못했던걸까. 내게 사랑이 부족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나쁜 놈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받은 사랑이 얼만큼인지를 마음대로 평가하고, 나의 부족함을 자신들이 채워준다고 현혹한 나쁜 놈들. 그 나쁜 놈은 바로 나였다. 억울했다. 울면서 억울했다. 화려한 선물이 내 사랑을 더 채워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겉으로만 더 세련되고 친절한 나에 대한 대우가 진실한 마음보다 더 나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지금까지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앞으로 있을지 모를 기회가 더 우선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억울했다. 이미 최선을 다한 그 사랑을 평생 폄하하고 살았던 내가 무척 한심하다고 느껴졌다.
천지개벽하는 일이다. 부족한 것이었던게 온전한 것으로 변하는 일은 말이다. 기존에 내가 믿던 가짜는 분노로 무너졌고. 늘 현재했던 진짜는 울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부족함을 의식하여 다리를 두었던 의존적인 관계들은 이제 서서히 힘을 잃고, 온전함을 보고자 함께 노력했던 관계들은 더 굳건해진다. ‘인생은 결국 함께’라는 종착점을 향해, 혼자라는 출발점에서 시작했던 여정은 막이 내리고. ‘인생은 결국 혼자’라는 종착점을 향해, 함께라는 출발점에서 시작하는 여정이 막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