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잡아먹어줘

아주 이상한 생각인데, 꽤 진실한 생각같다.

by 김상혁


가스라이팅, 나르시시스트. 나는 그들에게 잡아먹힐까봐 잔뜩 움츠리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갓 시작한 달리기를 하던 때였다. 그들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만큼 나약해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내가 그들을 잡아먹어 버릴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



아주 이상한 생각인데, 꽤 진실한 생각같다.


인간은 너무 많은 사람과 영혼을 잡아먹다보면, 필연적으로 그 상태를 버티지 못하는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자기의 영역을 벗어나 존재의 ‘양식’이 지나치게 확장된 상태라고 표현하면 정확할까? 선한 일을 많이 해 수많은 외부 사람들에게 ‘내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라 불린다던지. 혹은 엄청난 기업가가 되어 수많은 노동력을 착취해 거대한 부를 축적했다던지. 그래서 자기 이름이 아니라 자기의 지위, 주변 사람들로부터의 평판으로 자기 자신이 불려지게 되고. 인간 본성의 어떤 어둠도 표현하지 못하는 예법에 갇혀 본질적 존재가 아닌 겉으로 엄청나게 불어난 껍데기만 되어버렸을 때. 그건 그 사람이 소위 말해 좋은 사람이건 나쁜 사람이건, 자기를 부풀리기 위해 수많은 사람의 영혼을 잡아먹은 결과다.


이러한 껍데기적 삶의 양식이 ‘진실’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나약함과 왜소함이 보지 않고 듣지 않아도 느껴질 정도다. 말과 행동은 같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내뱉어버린 말을 의식해서 다시 바꾸기 바쁘다. 흔히 이런 사람은 주변 사람을 가스라이팅 한다던가, 혹은 자기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주변 사람들에게 죄책감과 수치심을 심어주는 경우가 많다. 한 편으로는 이런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오히려 퍼주거나, 주변 사람들의 영혼에 상처를 입혀놓고 빵 부스러기 던져주듯 맛있는 것, 좋은 것, 화려한 것을 선물로 주곤 한다.


이런 사람의 모습을 나 또한 갖고 싶을 때. 나 또한 되고 싶을 때. 종종 나는 이런 사람들에게 잡아먹힌다. 사실은 왜소하고 나약한 그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도 하고. 혹은 감각으로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감각을 차단하고 의식으로 더 거대한 생각과 이미지를 만들어 합리화시켜버린다. 그 거대한 생각과 이미지는 나 또한 추구하는 바 이기 때문이다. 내 눈이 거짓으로부터 현혹되길 적극적으로 원한다면, 거짓된 그들의 이미지에 깜빡 속아넘어버리기 일쑤다.


결과적으로, 그런 사람들에게 잡아먹혀버린 사람들.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가득해져버린 인간. 거대한 생각과 이미지에 사로잡혀 나 자신에게 존재하는 어둠은 모두 무시하고, 저 멀리 있는 빛만을 그저 쳐다봐야만 할 때. 나는 내가 , 혹은 그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정신적 감옥에 갇히고 만다. 인간은 본래 자유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종속된다는 것. 혹은 내가 만들어놓은 어떤 규칙과 질서에 종속된다는 것은, 내가 단 한걸음도 나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한 편, 그러한 정신적 감옥은 때때로 우리가 자발적인 의지로 만들어낸 것일 수 있다. 더 큰 목적이 있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무엇인지 내가 아직 알진 못할지라도. 아마도 타인의 영혼을 무심코 상하게 만들거나, 잡아먹는 이들은 결코 보지 못하는 삶의 고통을 우리는 보다 더 선명하게 직시하고 있는걸지도 모른다. 그걸 직시하다보면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그 어느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게 되는 걸지도. 혹은 감옥에 갖혀있는 동안 쌓인 분노, 쌓여버린 공격성이 감옥을 벗어나 자유롭게 돌아다니다가 자칫 폭발해버릴까 두려워 자기의 존재를 더욱 가볍게 해나가는 시간을 벌기 위함일 수 있다. 따라서 비로소 그 정신적인 감옥에서 벗어나는 어떤 존재는 아마도 마침내 자신이 직시한 현실 속에서도 유유자적 움직일 수 있는 어떤 유일한 길을 찾았는지도 모른다. 가만히 감옥에 갇혀 있었던 까닭에, 길을 찾은 것이다.


그 감옥에 나와서 원래 내가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던 그 거대해 보이고 이해하지 못할 존재들을 다시 만났을 때. 아까 이야기 한 것처럼 그들이 사실은 왜소하고 나약하다는 것이 눈으로 보지 않아도, 귀로 듣지 않아도 느껴진다. 또 차라리 그 왜소함과 나약함을 항상 내적으로는 자각하며 외부로는 늘 자신을 증식하며 산다는 것 자체가. 그들이 가진 최고의 용기인 것은 아니었을까. 잠잠히 생각한다. 혹은 과거의 나 역시 그들이 주는 것들을 먹어 그들에게 잡아먹혀버린 것처럼. 어쩌면 그들의 본질은 사실 누군가 자기 자신의 거대한 ‘양식’을 잡아먹어 버리길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내가 그들에게 잡아먹히고 잡아먹지 못한 것은 그 때 나는 알지 못했던 나의 왜소함과 나약함 때문이었다.어쩌면, 그들은 진심으로 자기보다 더 강한 누군가가 자신이 수많은 영혼을 잡아먹어 부풀려버린 자신의 ‘양식’을 끝까지 먹어치워주었으면. 그래서 자신이 실로 알고 있는 나약하고 왜소한 몸을 이끌어 자유롭게 이 세상을 살아가길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 그들은 자신이 잡아먹은 영혼들더러 ‘왜 이리도 쉽게 내게 잡아먹히냐며’ 속으로 지루해하거나, 하소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래서 그들은 나의 영적 성장을 위해 가장 필요하고, 맛있게 먹어 치워버렸을 수도 있었을 ‘양식’이었을지도.


분명히, 자기 자신을 잡아먹어달라는 존재는 있는 것 같다. 외부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처럼 말했지만. 나의 내면에도 누군가 나를 잡아먹어주길 갈망하는 면이 존재한다. 마치 주위 모든 것을 다 잡아 먹어 삼켜버릴 것같은 태세를 취하고 있지만. 사실은 간절하게 잡아먹혀 자신이 사라지길 원하는.


어떤 사람은 잡아먹어봤자 먹어본 적도 없는 사슴고기처럼 찔겨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않는 한편, 어떤 사람은 냄새와 그 모양만으로도 야들야들한 돼지고기 수육처럼 유혹을 이기기 쉽지 않다. 그러나 사슴은 가볍게 세상을 돌아다니며 만나는 존재들에게 행운을 안겨다 주고, 돼지는 우리에 갇혀 불행만을 기다린다.



아니, 사실 돼지와 사슴은 하나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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