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결심

용서를 계획하고 있다. 내가 약간 무리를 해서라도.

by 김상혁
이미 다 끝나버린 관계를 나 혼자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용서를 계획하고 있다. 내가 약간 무리를 해서라도, 어떤 결심을 해서 무언가 실천을 하려한다. 왜냐면 그렇게 해야 결정적인 어떤 순간이 왔을 때 화해와 용서가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이미 용서와 화해의 마음을 갖고 있다. 단지 그 마음이 서로 붙들어 맞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곧장 실천과 결심으로 옮겨 마음을 더 앞으로 전진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혹은 존재하지 않는 용서와 화해의 마음을 억지로라도 끄집어내려 하는 것이다.


문득 결론을 알고 있다. 슬프게 울고 있는 나의 모습이다. 무리를 하다가 다 지쳐 떨어져서라도, 무리를 하다가 우연히도, 반갑게도 나의 마음에 부응해 내가 계속 신경쓰지 않으려 애썼던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 나는 슬프게 울고 있을 것이다. 아마 그렇게 슬피 울고 난 후, 모든 결심과 계획은 끝이 날 것이다. 모든 게 해소되고 나면, 난 더 이상 그렇게 똑같이 무리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보이지 않는데도 마음을 내 기다림을 감수하고자 한 마음과, 보였을 때를 대비해 가만히 기다리고자 한 마음은 서로 만나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여러 관계들에서 그런 서로 비대칭적인 마음이 차라리 서로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혼자 정처없이 마음을 내며 혼자 합리화를 했던 것 같다.


열심히 미래를 만들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내 옆에 내가 바랐던 마음들이 없음을 나는 확실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내가 미래를 만들어내 그들이 다시 한 번 들어올 자리를 내가 만들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한다. 무한히 반복되는 자책의 굴레를 만들어낸다. 반드시 그렇게 미래를 만들고 나면 나는 지금의 나를 아끼지 못해 어떤 실수를 할 것이다. 바로 그 순간 미래는 또 다시 미래로 흘러들어갈 것이다. 나는 다시 미래를 만들고 싶어할 것이다. 미래는 반복될 것이다. 반복되어왔던 미래가 나로 하여금 미래를 만들도록 하고, 바로 그 상태가 영영 현재는 없음이라는 의미를 나는 깨닫지 못한다.


지금 곁에 없는 다른 이를 위해 결심을 내는 어떤 순간을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결심까지 내야하는 나의 현재 상태에 눈이 멀어버리기 때문이다. 영영 감동을 뒤로 미뤄버리는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결심의 끝이 어딘지 잘 모르면서도 결심을 하는 까닭은, 그렇게라도 울고 싶어서 같다.



…잠을 푹 자고 난 뒤 다음날 아침


꿈 속에서, 브라질 축구선수 네이마르가 첼시로 이적했다. 네이마르는 기쁨에 눈물을 흘렸다. 돈을 많이 주는 사우디리그가 아닌 빅 리그에서도 여전히 자신을 받아준다는 사실에 대한 감격이었을까.


꿈 속에서, 친구가 네팔에 갔다. 나도 네팔에 따라갔다. 내가 도착한 곳은 해발 2500미터 쯤 되는 어느 마을. 친구는 나를 데리고 동네를 구경시켜주다 인류학 연구를 위해 먼저 떠났다. 나는 내 마음 습관대로, 그 친구가 가는 곳으로 따라가려다가 마지막 순간에 결심을 하고는 그 마을에 남았다. 아니 어떤 선택을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디선가 새로운 누군가를 만났다. 우린 둘 다 히말라야에 가고싶어했다. 히말라야에 같이 가기로 약속했다. 만난지 얼마 안된 사람도 이렇게 친밀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잠에서 깼다. 한 3일동안 잠을 잘 못 잤다. 희뿌연 날들이 계속 되었다. 나를 가리는 게 눈물인지, 졸음인지 모르는 날들. 마음이 촛불이라면, 후 후 불기만해도 휘청 휘청 흔들리는 마음의 상태. 무의식 구석구석을 뒤지며 몸 쉴 곳을 찾고, 훑는다. 7시간 넘게 자고 아침에 일어나니. 오늘은 선명하다. 지나간 꿈도 선명하고, 희뿌연 눈 앞의 것도 사라졌다. 미래를 만드는 것과는 다른 방금 막 디딜 수 있는 발걸음의 생생함이 기대된다. 밖으로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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