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산티아고 순례 중에 -1-
내일 또 걷는다. Fromista 지방까지 총 24.7km. 벌써 스페인에 온지도 2주가 다 되었다. 이제 스페인 음식도 익숙하다. 바에가서 이 타파스 저 타파스 먹고 싶은 마음도 잘 들지 않고. 한국에서는 칠천원 팔천원 할 스페인 생맥주도 이제 물처럼 익숙하고. 사실 그래도 맥주는 맛있는듯. 그러고보니 내일이면 걷는 날로는 총 10일째다. 사실 걷는 건 매일 똑같다. 매일 똑같이 오늘 걸을 길이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기분으로. 어제가 그러하듯 오늘도 그러할 것이란 기분으로 시작하지만. 하지만 미묘하게 그 차이가 있는 것은 어제가 어제일 뿐이고. 오늘도 오늘일 뿐이라는 단순함인 것 같다. 어제가 그 어저께의 어제. 오늘이 내일의 오늘 이렇게 연속적 개념이라기 보다는. 하루하루가 단순하게 반복되지만 어제는 어제. 오늘은 오늘. 내일은 내일이라는 고유한 이름을 갖고 있다. 여튼 오늘 걷고나면 내일도 비슷하겠지 하는 미묘한 피곤함으로 쉬고 잠에 들고. 아침에 딱 바깥을 나서면. 그렇게 새로운 오늘이 펼쳐진다.
그래서 글을 쓰고 있는 ‘어제’인 지금 밤에 나는 ‘내일’도 비슷한 하루가 흘러가겠구나 하고 짐작한다. 이런 생각은 꼬리를 물기 쉽다. 그럼 나 왜 걷고 있지? 아 이 길 앞으로도 참 재미 없겠다. 지금까지 나 돈 얼마 썼지? 나의 행복을 평가하기 시작한다. 나 지금 이 길에서 행복한가? 충분히? 더 좋은 곳에 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어딜 여행하는 거도 좋을텐데. 5년 전, 이 길에 처음 왔을 때는 이 휘청임을 내가 잘 감당하지 못했다. 이 길을 걷느니 차라리 다른 더 멋진 곳을 여행하고 싶다가도. 이 길을 걷느라 써버린 돈이 아까워 빨리 한국에나 가야지 싶다가도. 그래도 걷기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한다는 마음으로 모든 번뇌를 이기고 끝까지 걸었다. 아무것도 남는 건 없었다. 그 때의 하루하루는 연속된 전체의 하루가 되어서, 어제가 오늘같고 오늘이 내일 같았다. 그렇게 시간은 경직되어 하나의 강한 뭉텅이가 되어버렸다.
이번은 그렇지 않다. 지금도 내가 내일 이 길이 또 똑같겠구나 생각하는건 자기 전에 피곤해서라는 감각을 갖는다. 아니면 금방 전에 굳이 먹지 않아도 될 저녁으로 먹은 생선 양념구이가 생각보다 맛있지 않아서 ‘아 괜히 먹었다’ 는 마음이 들어서기도 하다. 글쎄, 약간 외국인 무리 무리 들이 겨울철에 여는 한 알베르게에 밀집하는 집단적인 분위기가 좀 피곤하기도 하다. 그러고보니 이 순례길에서 먹고 자고 쉴 때는 사생활이란게 없구나. 그래서 받는 스트레스도 크겠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영어실력도 부족하고, 동양인에, 처음부터 같이 다니는 무리도 없으니. 약간은 아웃사이더가 된 느낌으로 무리로부터 달아나듯 걷는 기분도 있다.
그래서 나름의 반란을 도모했는데. 어차피 두 번째 순례길. 300km 정도 남는 지점인 레온에 도착하면 포르투로 도망가자. 포르투에서 산티아고로 향하는 260km 포르투갈 길이 있다. 그 길을 걸으면서 새로운 포르투갈 음식도 먹고, 유명하지 않은 길이니 고독도 제대로 즐기고. 해안길도 걸으면서 바다나 실컷보자. 이 득실거리는 무리생활은 산티아고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더 심해질거다. 순례길이 사람만나는 재미도 있다지만. 본래 순례란 고독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던가.
나는 언젠가부터는 고독을 쫓았고. 언젠가부터는 고독을 피했다. 고독을 피하면서는 나는 내가 혼자임이 두려워서라고 생각했다. 혼자 있을 때는 불안해서 뭔갈 자꾸 계속 해야할 것 같고. 그나마 친구랑 같이 있으면 좀 편히 쉬기도 하고, 즐겁게 놀기도 하니. 아 나는 매일 혼자이고 싶어하면서 실은 혼자인걸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구나 생각하고 나를 계속 사람들 사이에 끼워넣으려 하거나, 끼워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순례길에서도 항상 마주치는 딜레마다. 이 사람과 부엔까미노 인사만 할 것인가. 잠깐 말을 붙일 것인가. 대개 부엔까미노 인사만 하고 지나가고. 다른 사람들도 그런 편이다. 친해진다면 대개 서서히 같은 알베르게에서 식사하고 같이 다니기도 하며 친해진다.
그러나 나는 문득, 포르투갈 길에 가서 혼자 고독을 즐기며 걸을 나를 상상하며 즐거워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 속에서 더 눈치보지 않고 글도 쓰고 사진도 찍을 나를 상상한다. 산티아고에 도착하면서 계속 애매하게 만나고 지나친 사람들과 눈인사를 주고받거나 인사를 할 필요 없이, 온전히 혼자만의 발걸음으로 그 길을 다 마치는 나의 모습이 기대 되었다. 그게 다 이 사람들에게서 도망가는거라고. 나는 또 함께하지 못하고 혼자인 길로 빠지는거라고 나를 탓할 뻔했지만. 혹은 또 혼자라는 외로움으로 나를 집어넣는다고 나 자신을 안쓰럽게 생각할 뻔 했지만. 문득,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사실 정말 원하는구나.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혼자 있을 때마다 항상 다시 그 고독을 아무에게나 침범 당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었다.
이번 산티아고 순례길의 나름의 목표는 나를 닮은 길을 걷는 것이다. 이 길을 걷는 수많은 외국인을 닮은 길도 아니고. 과거의 나를 닮은 길을 걷는 것도 아니고. 현재, 오늘, 어제, 내일의 나를 닮은 길을 걷는 것. 길의 시작점과 끝지점이 한 순간에 스페인의 레온에서 포르투갈의 포르토로 바뀌더라도, 그것이 유연하게 언제나 하나의 길일 수 있도록. 그것이 언제나 새로운 어느 날의 길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밤 9시 50분, 지금은 좀 피곤하다. 그만 쓰고 자야겠다. 내일은 길을 걷다가 노트북을 펴고 글방에 참여해야지.
_2023년 11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