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탑

영광은 트라우마였다

by 김상혁

-난 우리 학교가 너무 싫었다. 상위 1%가 평범함이 되는 그 우월감도 싫었고.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현란한 말놀림으로 평범함을 짓누르는 그 정의로움도 싫었다.-


영광은 트라우마였다. 반수를 하고 수능을 보기 전 날 나는 처음 수능을 볼 때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8시에는 눕기 시작해 시험 직전 새벽 3시가 넘어서 잠드는 그 전 수능의 오류를 저지르지 않으려 했고. ‘양 한마리’라는 수면 유도 음료도 먹었다. 잠은 오지 않았다. 잠을 자야하는데 잠이 오지 않자, 어떻게든 잠을 자고 싶어 나는 온갖 환각까지도 동원했던 것 같다. 나는 이불과 내 몸 사이의 여백의 너비를 머리 속으로 적분하여 그 넓이 값을 구해야 잠에 들 것 같은 지경이었다. 이불과 내 몸 사이의 여백은 침침한 노란 색으로 채워졌다. 끙끙대는 나. 그걸 알고 있는 엄마의 큰 한-숨소리. 그렇게 밤은 지나 새벽 다섯시 반이 되었나. 잠을 잤는지 안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잠을 자지 않기로 내 스스로 선택했나. 만약 그 때 성공적으로 잠들었다면. 성공적으로 시험을 치렀다면. 그래서 바라고 바라던 서울대에 갔다면. 나는 영원히 영광인지 트라우마인지도 모를 아찔한 절벽을 삶이라 생각하고 계속 머물렀을지도 모르겠다.


많은 게 숨막혔다. 좋아하는 글을 쓰는 동아리를 하면서도 더 글을 잘 쓰는 다른 누군가와 자신을 비교하며 자신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말소리. 강의실의 침묵과 비례하는 성적. 가장 자유로워보이는 사람들조차 언젠가 확 높은 현실기준에 꺾여버릴 것 같은 순간적인 요란함도. 그들은 학교에서 학원에서 자신들이 평가받듯이, 새로운 대학교에서 마주한 여러 사람들을 가차없이 평가했다. 올바름도, 차별도, 평등도, 소외도 혹은 심지어 생명까지도, 그들의 자기학대, 타인학대에 동원되었다. 내가 보기엔 다 똑같은 이들이었다. 나도. 그들도.


왜 나를 평가하는 이를 ‘빌어먹었다’말하는 것이 도피가 되는 걸까? 그토록 계속 평가하고 싶은것일까? 그토록 평가받고싶은 것일까? 아마 다들 똑같이 느끼고 있을 불편감을 서로가 서로에게 약해보이지 않기 위해 숨기고 있었을 것이다. 강자와 약자가 있다. 비판하는 이들도, 자기 삶을 관철했다는 이들도 결국 강자가 되고자 할 따름이다. 주변 이들의 선망, 올바른 자신을 유지할만한 적당히 높은 지위가 없다면 그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다 알고 있으면서 마치 모른다는 듯 자신과 타인을 구분짓는 모습에 진절머리가 났다.


그들의 공감은 특이하다. 약해서 죽어가는 이들을 온갖 말과 행동으로 위로해주고 공감해준다고 하지만. 아니. 공감해야한다고 말하고 생각하면서 그들의 공감은 또 그들의 방식대로 완벽하다. 그 표현도 완벽하고. 대처방법도 완벽하고. 삐져 나갈 구석이 없다. 꼭 공격할 곳이 도저히 안보이는 성벽의 요새같다. 아름답고 선망받고 적절한 자기들의 삶은 어떻게든 지켜야하겠으니 약한 이들은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곁에 있을 방법으로 또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느라 막상 곁에서 완고하게 선망을 추구하는 자신들 사이에 숨이 막혀 다 같이 죽어간단 생각은 정작 하지 못하는 듯 하다.


그들이 자신에게 할 수 있는 그 위로는 정말 나쁘게 말하면 간악한데, “그건 그냥 그 사람 자격지심이지 뭐”. 그렇게 말하기엔 자신들의 삶이 정말 불안한 토대 위에 올려 놓여져 있다는 걸 정말 모르나? 특별한 기준 위에 세워진 삶 말고 평범한 기준 위에 세워진 삶을 견딜 줄도 모르면서 하는 저런 식의 자기 위로는 자기 기만일 따름이다.


내가 지친 건 그 일방성이다. 그들은 자기를 향해 가하는 편협한 잣대로 타인에게, 자신에게 하는 조언은 받아들여도. 편협하지 않은, 평범하고 더 넓은 잣대로 타인이 자신에게 하는 조언을 받아들일 줄은 모른다. 함께하다 마음이 아파져 털어져 나온 이에게 아름답고 적절한 위로는 해줄 지 모르겠으나, 아픈 이들의 진심에는 온통 무심하다. 무심하다기보단 무심한 척, 강인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너와 달리 나는 견딜 수 있다는 척’. “아무나 견디기 힘든 건데 이걸 하고 있는 내가 참 대단하다”정도의 말도 못하는 그 현실무시에 지친다.



난 지금 그들을 후려치고 있다. 이정도로 후려쳐야만 그들이 나와 계속 함께 도모한 아주 편협한 우월함이 마치 삶의 보편적 기준인 것처럼 여기는 자기기만에서 떨어져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때로 그들을 후려치지 못해서 자신을 죽여버리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후려쳐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그들을 위해 후려쳐주고 있다. 더는 그만 자기자신을 학대하는 것을 다 견딜 수 있는 척 하는 것을 멈추라고.



2023.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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