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효도가 꽤 훌륭한 개념이라는 생각을 한다
무슨 글을 써야할 지 모르겠다. 그만큼 마음이 혼란하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건지 모르겠다. 이 기분은 아마, 2미터 정도 되는 서로 다른 건물 옥상 사이에서 앞에 있는 건물 옥상으로 뛰어넘기 전의 기분과 비슷한 것 같다.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잘해나가는 과정은 그만큼 두렵고 힘들다. 하루하루가 부족하게 느껴진다. 나는 이 기분이 두려워 계속 마음 자리를 찾아 피해갔다.
내 마음 자리가 뭐지. 아빠가 가끔 남해에 집을 짓고 살고 싶단 말을 하면, 나는 정말로 그 집을 내가 지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게 비록 내 책임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그 마음에 책임진다고 생각하고 내가 무슨 노력이라도 해야할 것 같은 생각. 그래서 난 지금 그 마음에 내 마음 자리를 뒀다. 이 마음을 외면하지 말고 한 번 직면해보자. 이 마음을 직면할 때면 나는 불안하고 두렵고 , 예전에는 억울했는데 지금은 억울하진 않다. 그게 다른 누구를 위함이 아닌 내 마음을 위하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제대로 사람구실, 자식구실 하겠다는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요즘은 효도가 꽤 훌륭한 개념이라는 생각을 한다. 외국의 심리학 책을 보면 결국 치유의 핵심은 부모와의 마음 속 화해다. 유교사상에서는 그 부모와의 화해를 현실 속에서 강제한다고 본다면, 적어도 가장 중요한게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여기저기 헤매는 심리적 갈등은 겪지 않을테니까. 그래서 난 요즘 효도를 하고싶다는 생각을 종종한다. 효도를 하겠다는 생각만 해도 무거움이 장난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서서히 그 무게를 내가 한 번 지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그러기에는 난 너무 약하다. 하루하루 그 사실을 깨닫는다. 무엇보다 마음의 시기를 결정하는데 너무 미숙하다. 난 지금 그 효도의 마음이 3개월 안에 달성되어야 하는 것처럼 살고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느끼지 말기로 했는데, 마치 3개월안에 내 사람구실 여부가 결정되는 것처럼 조급한 마음을 갖고 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매일매일 에이아이로 영어공부하는 유투브 영상을 올리지만. 하루하루 하다보면 나아지겠지 하고 가볍게 가볍게 하려다가도, 그래도 제대로 된, 정말 잘 만든 영상들을 더 성의를 다해서 올려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온다. 뭐가 맞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유투브 영상을 어떻게 만들지를 걱정하고 있는건 내가 내 마음의 시기를 3개월 후에 두고 있기 때문. 1년 후로 바라본다거나, 더 이후로 바라본다면 나는 더 자신감 있고 여유있는 자세로 내 일을 해나갈 수 있을텐데.
생각을 한 번 기록으로 정리하고 싶지만, 또 생각만 정리하고 끝나버릴까 무섭다. 생각이 정리된다고 그 근본이 되는 감정이 정리되지 않는다는 건 잘 아니까. 하지만 가끔은, 가끔은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쌓이고 쌓여 어떤 감정적 근본을 마주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걸 직시하다보면, 어떻게 생각해야하는지 방향이 보여 신나 웃기도 한다. 그 잠깐의 웃음은 그러나 그 다음 날, 혹은 그 다다음날에 사라져버려 다시 똑같은 두려움과 조급함에 휩쌓이기 쉽다. 그 주기가 조금만 더 길어진다면 좋을텐데. 한 일주일 정도는 그 웃음이 계속될 순 없는걸까?
나는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했었다. 나는 괜찮은데 왜 자꾸 걱정하는지 짜증이 났다. 정말로 괜찮다면 짜증나진 않았을텐데. 요즘 나는 존재에 거는 기대가 꽤 크다. 화나는 일이 생겼다고 화가 나는 것, 조금 존중받지 않았다고 상처입는 것은 인간 존재 역량의 큰 가능성을 무시하는 일이라는 마음을 품고 있다. 때로는 싫은 건 싫다고, 다른 사람의 생각과 내 생각이 다르다고 그걸 바로 표현해버리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무식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인간의 꼴이 정당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닌데, 온갖 군상으로 모여진 별꼴의 인간들을 주위에 두고도 자유로운 것이야 말로 진정한 자유지. 화나고 짜증나고 무섭더라도 그걸 딛고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한 번쯤 이루는 것이야 말로 삶을 마주하는 태도 아닌가 하는 나로써는 꽤 무겁지만 한 번 견뎌보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다.
그래도 멀리보자는 생각을 해야겠다. 나는 지금 새로운 자유와 행복을 위한 현재의 내 시각이 틀렸다고 포기하고 싶진 않으니까. 몸 키우는 것도 1년, 2년 잡고 하는데. 삶을 키워내는 걸 무슨 3개월에 한다고 이따위 마음가짐으로 살고 있는 것인지. 이따위 마음가짐. 3개월 안에 다 해낼 것처럼 구는 마음가짐. 생각을 기록으로 정리했다가 생긴 웃음이 순식간에 사라져도 뭐 어때. 오늘 한 게 좀 잘못되어도 뭐 어때. 오늘 하고 내일 하고 그렇게 계속 쌓여 3개월 동안 모인 것이 좀 실패해도 뭐 어때. 가능성을 실현하는게 중요한거지.
아빠에 대한 사랑아닌가? 요즘 이런 생각을 한다. 난 이제 아빠의 꼴을 있는 그대로 봐줄 수 있는 것 같으니까. 신기하다. 아빠와 반대되는 모습을 지향한 끝에 지쳐 나가 떨어지니 아빠의 꼴을 봐줄 수 있다는게. 친구에게 말하고 싶다. 네가 그 사람을 욕하는 것을 내가 이해해주려고 하다보니 이제 그 사람도 내가 이해가 되더라. 그러다보니까 이제는 네가 그 사람을 욕하는 게 더 잘 이해가 되더라. 중요한 건 원하는 마음이야. 중요한 건 사랑이야. 그것만 잘 간직해. 그걸 까먹어버리면 중간에 흐릿하게 걸려버리는 것들로 마음이 따른 데 가버리게 될테니까. 하지만 사랑은, 때로는 그냥 놓아버려도 괜찮은거야. 그게 다르다면 다른 점이지. 옛날에 내가 믿는 사랑은 삶 그 자체가 되어 놓아버릴 수 없는 핏덩이같은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사랑은 그보다는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어떤 것이야. 저어기로 넘어가는 용기를 주는 그 무언가가 바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어. 그걸 흐릿하게 만드는 사랑이 아닌 것들을 부디 잘 분별하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