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을 알던 두 사람이었기에 힘든 일을 겪으며 같이 버텨온 두 사람이었기에 서로가 잘 마무리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그렇게 '우리 사이가 어떤 사인데'라고 했으면 결과도 서로가 만족하고 3인칭 시점에서도 타당해야 하지 않은가.
그러나 달랐다. 이상했다. 납득이 가지 않았다.
남편의 사업 분립 과정은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동업해보지 않은 나도 사업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의 상식에서도 잘 못 되었었다. 그런데 내 남편은 잘 정리하고 왔다고 나에게 결과를 알려주었다.
화가 났다. 남편과 동업하는 형과 서로 얼굴 붉히고 싶지 않았지만 상식에서 말이 안 되었기에 화를 냈다. 남편에게 미안했지만 바보같이 당신이 믿던 사람한테 당한 일을 알라고 화를 냈다. 무엇이 잘 못 되었는지조차 몰라하는 표정에 더 화가 나서 큰 소리로 화를 냈다.
차근히 회사 재고 상황과 여러 가지 자산 상황들을 보며 무엇이 잘 못 되었는지를 설명해주었다. 설명을 다 들은 남편은 잘 못 되었음을 알고 상황을 다시 수습했다.
그렇게 정리해온 결과도 내게는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더 이상 조정할 수 없는 결과였기에 그냥 잊기로 했다.
사실 결혼을 하고 내가 뒤늦게 두 사람일에 관여한 것이라, 또 먼 타국에서 세 사람이 다 잘 될 수 있게 서로 사업을 도와 성공하고 싶었었다. 그래도 우리는 둘이 되었지만 혼자인 그분이 버려지는 것 같은 기분도 상황도 아니게 동업하는 그분이 먼저 새로운 사업과 지금의 동업을 병행하며 자리를 잡으면 우리도 지금의 일과 앞으로 할 사업을 시작해 어느 정도 안정되면 두 사람의 동업을 접는 게 좋겠다고 멕시코로 오기 전 남편과 의논했었다.
그러나 남편의 동업인은 다른 생각을 가졌었나 보다. 이제 남편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 자리를 잡을 차례였는데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나와야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조금의 남편 몫과 회사 빚까지. 빚을 갚으라고 준 돈인지 그동안 수고한 결과의 몫인지... 결과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
누군가 동업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말리겠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헛 된 말이 아니었다. 나도 누군가 동업한다면 살면서 앞으로 안 봐도 되는 사람이 아니면 하지 말라고 말할 것 같다.
마흔여섯에 남편은 다시 한번 사업의 쓴 맛을 보았다.
남편의 상황을 예측한듯한 날씨. 할라파여행을 다녀오는 길에.
우린 아무것도 없다. 다시 시작해야 했다.
나는 새로운 곳에서 나의 사업을 다시 일으켜야 했고 남편은 새롭게 시작해야 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일이 요즘 세상에도 가능한 일일까?
막막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감사하게 우리에게는 믿음이 있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요즘 같이 잘 못된 종교의 믿음과 기독교라도 모순적인 모습이 많은 세상에서 다행히 우리 주위에는 그렇지 않은 믿음을 가진 크리스천들이 많았다. 그분들의 기도와 우리의 기도로 우리는 새롭게 시작했다.
사업에 대한 지혜와 예산들을 그리고 장사가 잘 되기를 매일 기도하며 새롭게 시작했다.
남편이 맡은 카페테리아가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내가 같이 움직였다. (우리의 사업은 동업이 아닌 실무와 전체적인 경영은 내가 맡고 대외적으로는 부티크는 나, 카페테리아는 남편이 담당했다. )
그러나 장소가 많은 것을 제약했기에 둘이 사업을 맞춰나가는 시작이니 상가를 얻어 온전히 세상에 오픈되기 전까지 완벽한 호흡을 맞추는 시간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하기로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