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가 하드보드지로 만들어진 아주 큰 책이다. 33*27 대형 책의 표지는 파란색이다. 그곳에 수영복 같은 것을 입은 세 사람이 보인다. 그들의 무릎 주변으로 물결이 이는 듯 보인다. 이곳은 물 속인가 보다. 아래에 '여름 안에서'라는 간결한 제목이 보인다. 책을 펼치면 바다라는 것을 보다 확실히 알 수 있다. 책의 뒤표지와 앞표지는 연결되어 있다. 앞표지가 바다라면 뒤표지는 모래사장에서 해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바다를 즐기는 아이와 아이를 보호하는 어른이 걸어가는 그 어디쯤에 '바닷가의 하루, 동 틀 녘부터 어스름까지...'라고 적혀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수많은 갈매기가 열어준다. 하늘을 가득 덮은 갈매기를 지나면 '잊지 마세요'가 나온다. 바닷가에 놀러 갈 때 우리가 잊지 말고 가져가야 할 것들이 빼곡히 그려져 있다. 우리의 몸과 함께. 그리고 이제 표지에 등장했던 제목의 배경색이었던 쨍한 노란색을 바탕으로 여름의 바다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있는 속표지가 등장한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해변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만 표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사람들이 물놀이를 하기 전 새벽 5시는 어부들의 시간이다. 해도 다 뜨지 않아 등대가 바다를 비추는 시간에 어부들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 바다로 나선다. 아침 8시 물고기를 가득 잡고, 9시에 돌아온 어부들은 바닷가에서 물고기를 판다. 그리고 11시 어부들의 시간이 끝나면 피서객들의 시간이 시작된다. 바다가 충분히 데워진 12시는 식사시간, 그렇게 피서객들의 시간은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8시까지 이어지고, 해가 완전히 사라지는 시간은 무려 오후 아홉 시 삼십 분이다. 그 시간까지 바다는 정신없는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해가 지고 난 뒤의 시간은 올빼미족들의 시간으로 표현된다. 밤새 모닥불을 피우는 사람, 바다에 나가 비밀결혼식을 올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 사이로 도둑도 보인다. 올빼미족들의 시간까지 끝나고 나면 이제 잠시 바다는 자신의 시간을 가진다. 달과 별, 등대, 내일을 위한 어부들의 배만이 조용히 바다의 곁에 있을 뿐이다.
화려한 색감과, 독특한 일러스트, 곳곳에 즐거운 상상력을 배치한 작가는 칠레에서 태어난 솔 운두라가라는 사람이다. 그는 칠레에서 태어나 현재는 칠레와 독일을 오가며 일러스트 작업을 하고 있다고 되어 있다. 바닷가의 일상이 사실과 환상이 절묘하게 배합되어 재미를 주어 나는 작가가 얼마나 많은 시간 바다를 관찰하였는지 궁금했었다. 어지간히 시간을 보내지 않고는 이런 작품을 완성하기 힘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그림책은 독일의 추운 겨울에 남미의 뜨거운 여름 가족들과 수영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작업했다고 되어 있다. 순간 고개가 끄덕여진다. 있을 법한 다양한 사건과 시간의 배치 사이에 상상의 세계가 공존하는 그림책이 완성될 수 있었던 이유 말이다. 많은 시간 가족과 여름의 바다를 즐긴 그 기억들이 그에게 얼마나 쨍하고 즐겁고 아름답게 남아 있었는지 그림책 한 권으로 알 수 있다. 그림책을 보고 또 보다. 아직 불빛이 꺼지지 않은 등대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과, 팔다 남아 던져진 물고기를 먹고 있는 개들, 한낮의 뜨거운 태양 속에서 잠수, 해가 지기 시작한 시간 달라진 바람의 선선함, 깜깜한 밤 시간 모래사장에 피워진 모닥불 같은 것들을 나도 만나고 싶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 안에 풍덩 들어가고 싶어 진다. 물속에 팔과 다리만 내어놓고 돌고래를 만나고 싶어 진다. 그러려면 칠레에 가야 할 것 같다. 작가의 기억에 빼곡히 들어찬 칠레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