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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안 Aug 18. 2021

번뜩이진 않지만 반짝은 한 걸로

작은 연못(김민기 글;정진호 그림)

'글 김민기'의 김민기는 아침이슬을 작사 작곡한 바로 그분이다. 작은 연못은 양희은 가수의 2집에 수록된 '작은 연못'이라는 노랫말을 모티브로 정진호 작가가 만든 그림책이다. 그림책에 나오는 글은 노래 가사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노래를 들으며 순서대로 읽어가 나면 그 감동이 두배가 된다. 글을 읽으며 그림을 볼 때는 서사가 보이는데, 음악을 들으며 그림을 보고 있으면 감성이 보인다. 다시 세 번째로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기 위해 그림책을 본다. 또 새로운 것이 보인다. 글의 내용에 따라 변하는 색감이라던가, 이야기의 중간에 들어간 표제 지라던가, 그림의 질감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1972년 이 노래가 세상에 나왔을 때, 이 노래는 금지곡이 되었다고 한다. 금지곡에서 풀리고는 교과서에 동요로 소개되어 실리기도 했다고 한다. 제목만 보고는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책을 읽으며 노래를 들으니 멜로디가 제법 익숙하다. 그림책만 보면 귀엽고 원색적인 그림에 매료되어 그림책이 들여주는 이야기가 그리 무겁지 않다. 그러나, 어두운 멜로디와 약간은 떨리는 듯 읊조리는 듯 부르는 김민기의 노랫소리가 어우러진 상태에서 책을 보면 그림책의 메시지 또한 강렬해지고 어두워진다.


https://youtu.be/W0LpbShfjrA

김민기의 작은 연못

당시 이 노래가 발표되었던 1970년대는 박정희의 군사독재 정권 치하수많은 노래들이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금지곡'의 오명을 뒤집어쓰던 한국 가요계의 암흑기였는데, 이 노래 역시 바로 저 1절의 가사 때문에 금지곡으로 지정되었다. 정부가 이 가사에 어떤 꼬투리를 잡았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여기 쓰인 가설 외에도 여러 가지 의견이 존재하지만, 김민기가 확실히 밝힌 것은 없기 때문에 어떤 뜻이 숨어있는지는 알 수 없다.  

     작은 연못은 '한민족', 붕어 두 마리는 각각 '남한'과 '북한'을 상징한다. 남한으로 상징되는 붕어가 북한으로 상징되는 붕어를 죽여서 물이 썩어 들고, 결국 둘 다 공멸하게 된다. 즉 1970년대 군사독재 정부의 극단적인 반공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작은 연못은 '한국(남한)', 붕어 두 마리는 각각 '박정희'와 '김대중'을 상징한다. 박정희가 정적인 김대중을 몰아내기 위해 그를 암살하려 한 사건 등을 비꼬아 박정희를 비판하고 있다.

     작은 연못은 '박정희 정부', 붕어 두 마리는 각각 '김종필'과 '이후락'을 상징한다. 그 둘의 권력 암투를 비꼬고 있다.  

 나무위키 작은연못 가사해석 중에서


https://youtu.be/gB7Y_cAALHM

양희은의 작은 연못

양희은이 부른 작은연못을 듣고 있으면 노래에 이야기가 제대로 입혀진 느낌이 든다. 김민기는 읊조리듯 부르지만 양희은의 노래는 스토리를 만들어 낸다. 양희은 가수의 맑고 힘찬 목소리가 슬픈 결말에도 희망을 부여하는 기분이 든다. 2019년 이적이 부른 '작은 연못'은 비장하다. 두 마리의 물고기가 싸우다가 연못의 물이 썩어 들어가는 부분부터 더 이상 아무것도 살지 않게 되는 깊은 산의 작은 연못은 어쩐지 슬픈 끝을 예감하게 한다.


https://youtu.be/tgo4Yhc1vXE

이적의 작은 연못


정진호 그림책 작가는 어떤 가수의  '작은 연못'을 들으며 이 작품을 구상했을까 생각해본다. 나는 처음에 김민기가 부른 노래를 들었는데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이대로 안된다. 환경오염을 이대로 두었다가는 아무도 살지 않는 작은 연못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 양희은의 노래를 듣는데 노랫말이 끝나고 이어지는 두장의 그림이 보였다. 작은 연못의 작은 희망 같은 것이 거기에 있었다.


어두운 회색의 도시 풍경 속에 등장한 파랗고 초록의 작은 연못은 사실 마트에 있는 커다란 어항이라는 설정은 독자에게 반전을 준다. 마트 어항에서 헤엄치고 있던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뜰채에 건져져, 작은 어항에 담기고, 다시 카트에 담긴다. 그리고 회색의 거리를 지나간다. '깊은 산'은 마트의 지붕이 되고, '오솔길'은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이다. '작은 연못'은 이제 없고 커다란 강에 다리가 놓이고, 강 옆으로는 회색 건물들이 연기를 뿜어낸다. 물고기를 실은 자동차는 그 사이를 달린다. 그리고 마지막 아무것도 살지 않게 된 연못이라는 노랫말에는 높이 높이 쌓인 쓰레기 더미가 그려져 있다. 마치 이곳이 예전에는 작은 연못이었다는 듯이.


그런데 물고기를 싣고 있는 빨간 자동차는 회색의 건물과  너무 거대한 강과, 산을 이룬 쓰레기를 등지고 어딘가로 가고 있다. 멀리 초록 산이 보인다. 이제 글이 멈춘다. 그리고 차가 멈춰 선다. 멈춰 선 차에서 내린 아이는 물고기를 작은 연못에 풀어준다. 퐁 들어간 빨간 물고기 한 마리가 작은 연못에 있는 걸 보면서, 여전히 마트에 있는 물고기와 작은 연못을 가기 위해 지나온 길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노랫말에 어떤 해석이 덧 입혀지느냐에 따라 이렇게나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1970년대에 이 노래는 남북 갈등, 권력암투를 나타내었다고 해석되었다. 아이들에게 동요로 들려준 이유는 가볍게 보자면 서로 싸우지 말고 잘 지내라는 이야기도 될 수 있겠다. 그리고 정진호 작가처럼 환경오염을 주제로도 해석할 수 있다.  같은 노래지만 김민기처럼 읊조리듯, 양희은처럼 생동감 있게, 이적처럼 비장하게, 여기엔 올리지 않았지만 울라라 세션처럼 신나게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다양하게 해석을 해도 어느 곳에서도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이 노래가 그만큼 잘 만들어져서 이지 않을까.


그림책도 노래만큼이나 잘 만들어졌다. 작은 연못, 물고기가 등장할 때만 해도 어린이를 위한 가사말이 충실한 뻔한 그림책이라고 생각했지만 뒤로 가면서 확장되는 작가만의 해석이 멋진 책이다. 내가 이 노래로 다른 이야기를 만든다면 뭘 만들까 아무리 떠올려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역시 그림책이, 다양한 해석으로 부른 가수노래들이 훌륭하다. 그러다 창체 수업에 보너스 트랙으로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반짝 떠오른다. 명화를 보고, 마음에 드는 그림을 고르고, 내 왜 골랐는지 생각해보고, 그 그림과 어울리는 노래를 찾아서 작성하는 활동을 학생들과 하고 있다. 내면의 나도 만나고 다양한 방향으로 이야기의 가지를 뻗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껴보도록 하려는 의도를  쪼끔 담아서 하고 있다. 이번에는 그림과 어리는 노래를 찾는 학생들의 활동이 마무리되어간다 싶으면 짜잔 하고 '작은 연못'을 틀고 그림책을 보여주어야겠다. 학생들의 생각이 조금 더 넓어지길 바라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낼 정도로 번뜩이진 않지만, 이 정도면 꽤 만족스러운 새로운 연결이라 자부하며 스스로를 기특하다 칭찬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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