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 씨는 개명을 했다. ‘순하고 예의 바르다’는 뜻의 순례에서 순례자에서 따온 순례로. 나머지 인생을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라는 마음으로 살고 싶어서. p. 13
지구별을 여행하는 마음으로 사는 순례씨가 주인으로 있는 순례주택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야기는 김혜진의 '불과 나의 자서전'의 주제와 관통하는 부분이 있다. 부동산 그리고 그 안에서 서로 나누어지는 지점에 서 있는 '나'가 불을 지르고, 그 불마저도 개인의 화 정도로 치부되면서 끝나버리는 '불과 나의 자서전'은 성인이 그려낸 것이라면 '순례 주택'은 중학생의 눈으로 부동산을 보고 있다. 같은 거북동에 살지만 순례주택이 있는 주택가와 '거북 주공아파트'가 재개발되어 '원더 그랜디움'으로 만들어진 아파트 단지는 다른 세상이다.
오수림은 원더그랜디움에서 태어났지만, 순례주택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다시 원더 그랜디움으로 돌아왔다. 중학생이 된 오수림의 집이 순례주택은 아니었다. 원더 그랜디움에 살아야 했으나 우울증에 걸린 엄마가 언니 오미림과 오수림을 시댁과 친정에 잠시 맡기면서 오수림은 엄마의 친정아버지가 거주하고 있는 순례주택에 맡겨진 것이다. 오수림의 외할아버지는 순례씨와 연인관계였고, 순례씨와 함께 오수림을 키웠다.
엄마가 아무리 철이 없어도 나는 인격적으로 대해야 했다. 나는 내 인생의 순례자니까. 관광객이 아니라. p. 233
순례씨는 순하고 예의바르게 살라고 지어준 이름을, 돌 순(巡), 예절 예(禮)로 바꾼 사람이다. 오수림은 지구를 예의바르게 돌고 어딘가로 돌아가겠다는 마음을 가진 순례씨의 마음을 그대로 닮아있다. 그래서 오수림은 불과 나의 자서전의 '나'와는 다른 삶을 산다. 어딘가 주변을 맴돌기만 하면서 고통스러워하던 인물이 '나'라면 오수림은 답답한 이 상황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행동으로 하나씩 옮긴다. 때로는 좌절하기도 하지만 멈추지 않는다. 오수림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살아온 어른이 옆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수림과 순례씨의 행동에 모두 동의할수는 없었다. 지나치게 정직하고, 올곧게 살아가는 것,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착한 거짓말이 현실에서도 올바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에게는 이해 가능한 범위인가? 그래서 '불과 나의 자서전' 쪽이 더 마음이 가지만 현실에서는 순례씨와 오수림 같은 사람이 많았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통통 튀는 대사와 시종일관 블랙스러운 코믹이 번갈아 나와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데다, 내용은 우리나라 부동산의 문제를 보여주어 가볍지 않다.
'우리 가족 외에 다른 사람들은 다 이상해'로 세상을 보던 오수림의 부모가 마지막에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그 장면에서 오수림은 '타인이 아닌 서로를 공격할 수 있는 엄마 아빠가. 우리집의 낯선 불화가, 십육 년을 헤매다 찾은 줄자 끄트머리처럼, 나는 눈물 나게 반가웠다.'라고 말한다. 나는 이 말이 계속 목 끝에 걸려있었다. 보통 수많은 슬픈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되지 않나? 가난해진 집, 화목했던 가족이 차차로 서로를 할퀴고, 아이들이 망가진다. 그런데 작가는 마지막을 불화를 반가워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다.
처음에는 결말이 잘못된 것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오수림의 부모는 '정상가족' 즉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어떤 것에 매몰되어 있던 사람이다. 그 범주안에 들어있지 않으면 선을 그어 나와 다른 사람으로 규정지어 버린 것이다. 책을 읽는 나도 아니라고는 하지만 늘 정상의 어떤 것과 아닌 것을 나누고 있었지 않았을까? 그래서 불화라는 말을 듣자 거부감이 들었던 것이다. 부부가 싸운다고 해서, 부모가 양육하지 않는다고, 한 칸짜리 방에서 온 가족이 모여 산다고,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다고, 떡집을 한다고 했을 때 그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물음표를 던져주는 결말이지 않았을까라는 뒤늦은 깨달음이 왔다.
우연히 내가 그런 책을 읽은 것인지, 최근 사람들의 생각이 그쪽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 부동산의 경계, 서로 다른 삶의 사는 사람 사이의 경계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있는 책들이 계속 보인다. 학생라면 이 책을 읽고 '이상한 정상가족'을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어른이라면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나 '불과 나의 자서전'을 함께 연결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순례주택'은. 그리고 순례라는 말이 좋아지게 하는 책이다. 다 떠나서 지구에서의 삶을 순례하는 마음으로 모두가 산다면 세상은 조금 더 포근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