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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안 Jan 12. 2022

건강한 나를 찾아서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도망치고, 찾고;다정소감

“이 책 어땠어?”

“음……. 따뜻한데, 충고 같아. 잔소리 같은데 따뜻해. 엄마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

“응. 그런데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엄마 근데 이거 무슨 내용이라고 생각해? 도망치는 건 뭐에서 도망친다는 거고, 찾는 건 뭘 찾는 걸까?”

“응. 내가 힘든 사람, 나를 싫어하는 사람을 억지로 견디지 말고 그런 경우가 생기면 재빨리 도망치라는 거야. 그리고 나를 이해하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찾으라는 이야기지.”

“……. 그렇구나.”


침대를 폴짝폴짝.


요시타케 신스케의 ‘도망치고, 찾고’라는 그림책을 읽고 딸과 나눈 이야기이다. 아이는 그림책을 읽다가 그런 질문도 했다. “엄마, 나무가 걸어 다닐 수 있어?” “음 작가는 나무를 사람이라고 생각하라고 그린 것 아닐까? 저기 보면 나무는 옮겨 다니지 못하지만 우리는 옮겨 다닐 수 있다고 되어 있잖아.” 그런데 옮겨 다니면서 웃고 있는 나무를 보면 어떤지 같이 미소가 지어진다. 진짜로 나무도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나, 자기를 괴롭히는 다른 존재가 있다면 뿌리를 쑥~ 뽑아서 도망 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다. 


당장은 찾지 못할 수도 있어. 


하지만 만약 찾기를 그만둔다면,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될 거야.


그러니까 계속 찾자. 

그러니까 계속 움직이자. 


‘위험해!’라는 생각이 들면

바로 움직여.

‘좋아해!’라는 생각이 들어도

곧바로 움직이고


우리는 움직이기 위해 살아 있으니까. 


애 좀 봐.

이 아기도 계속 움직이는 연습을

하고 있잖아?


도망치고, 찾고, 움직이고 움직여서, 

부디 언젠가 네가

멋진 무언가를,

멋진 누군가를, 

찾을 수 있기를.

-도망치고, 찾고 중에서-


김민섭 작가의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와 김혼비 작가의 ‘다정소감’, 그리고 ‘도망치고, 찾고’는 서로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따뜻한 세상을 향한 연결고리를 만들어가는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는 표지의 사진이 모든 이야기를 알려준다. 공항과 넓은 활주로, 반짝이는 제목, 멀리 날아가는 희미한 듯 빛을 발하는 비행기, 그리고 하얀색의 연결고리들. 4개의 목차는 그동안의 에세이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전개된다. 대게의 에세이는 짧은 일상을 몇 개의 갈래로 묶는다. 이 책은 한 개의 갈래가 하나의 이야기이다. 1장은 헌혈로 만들어지는 연결고리를 2장은 김민섭 찾기와 비행기 티켓 그리고 그 안에서 만들어진 연결고리를 말한다. 3장은 작은 접촉사고 그 안에서 받은 모욕과 해결하는 과정에서 만난 연결고리를 마지막 장은 코로나 시대에 몰래 함께 뛰는 일상 달리기를 그린다. 


'다정이 남긴 작고 소중한 감정들'이라는 부제를 가진 김혼비 작가의 ‘다정소감’은 제목이 모든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곳곳에서 만난 작가의 다정한 인연들을 대놓고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안에서 그녀가 하는 소소한 주장들에는 무릎을 치게 된다.


수전 브라운밀러와 영지 선생님의 말은, 마음대로 누구를 때리라는 뜻이 아니다. 폭력을 옹호하고 선동하는 것도 아니다. 문명의 선을 지키며 살되, 저 선을 넘어버린 누군가가 폭력을 행사할 때, 공포와 억압에 가로막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지 말라는 뜻이다. p. 49


보통 나는 그 ‘나다움’의 상당 부분은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타고난 나, 만들어진 나, 만들어져가고 있는 나, 모두 다 나이다. ‘본캐’도 ‘부캐’도 다 나.p. 64


 아이의 말을 듣고 알았다. 근래에 세 권의 책을 읽으면서 따뜻한 조언들을 마음에 토닥토닥 쌓은 기분이 되었다는 것을. 그들은 나에게 ‘이렇게 살아야 잘 사는 거야. 이렇게 살아.’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냥 읽고 있는 동안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게 만든다. 나를 위한 무언가를 하고 싶게 만들고,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좋을 거라는 믿음을 만들어 준다. 


나는 몸치다. 시간대별로 다른 생님과 다인수로 하는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필라테스의 기본은 비슷하지만 선생님마다 가르치는 방법, 자세도 많이 다르다. 어떤 선생님은 시범을 보여주고, 회원이 운동을 하는 동안 말로 하나씩 설명을 해주면서 몸의 위치를 잡아준다. 못하는 나지만 하나도 부끄럽지 않게 고마운 마음이 들 정도로 열심히 도와주고, 이렇게 힘든 동작을 하게 해서 미안하다고도 하시며 그래도 잘했다고 칭찬해주신다. 그럴 때마다 거울로 못하는 나를 봤음에도 ‘나 잘했구나. 다음에 더 잘해야지’ 마음을 먹게 된다. 


반면 말로 설명하면서 자세를 상세히 가르쳐주는 선생님도 있다. 나는 지독한 몸치라 사실 시범을 봐도 제대로 된 자세가 나오지 않는데, 설명은 더 잘 못 알아듣는다. 긴장하면 오른쪽과 왼쪽도 헷갈린다. 그러니 여러 명인 데도 설명만 하는 선생님은 내 옆에 붙어서 자세히 위치를 잡아 주셨는데, 나는 무서운 어른에게 혼나는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 되고 말았다. 레슨을 하는 동안 고민했다. 이 선생님에 관한 의견을 사무실에 보낼 것인가, 선생님께 직접 말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도망칠 것인가. 세 권의 책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나다운 결정 했다. 도망치기로. 이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는 덮어두기로 했다. 사무실에 말하거나 직접 말해서 그녀에게 상처 주어 내가 상처받을 필요가 없겠더라.  나랑 만 맞지 않는 거지 다른 사람들은 또 잘 맞을 수 있으니까. 나처럼 안 맞아서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건강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나는 그냥 나랑 맞지 않는 사람에게서 도망쳐서, 나랑 잘 맞는 사람을 찾기로 했다. 결정을 내리고 나자 레슨 내내 들쭉날쭉하던 마음이 금세 마음이 편안해졌다.


쉽게 포기한다고, 변화한다고 네가 잘못된 것이 아니고, 잘못되지도 않을 거라고 말해주는 글들이 나에게 용기를 준다. 다른 사람과의 연결고리에 관한 이야기가 내가 움직이기 전에 타인의 상처나 상황을 생각하게 만든다. 책에 등장하는 따스한 조언을 읽는 동안 나는 조금 건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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