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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안 Apr 04. 2022

도시의 등대

불편한 편의점(김호연:나무 옆 의자:2021)

지난해 끊임없이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불편한 편의점'은 일단 제목 자체가 엄청난 끌림을 만들어낸다. 표지는 또 어떻고. 무척이나 익숙한 편의점 간판과 편의점 조끼를 입고 앞마당을 쓸고 있는 사람의 뒷모습. 그리고 편의점 앞에 하나쯤 있을 법한 파라솔과 플라스틱 의자가 보인다. 익숙하고 편안한 제목과 표지를 왜 이때껏 생각하지 못했지 할 정도로 한국 현대사회의 정서에 딱 맞다.


책의 내용도 딱 그만큼 친숙하다. 2019년~2022년을 살아낸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무겁지 않게 풀어낸다. 무겁지 않을 뿐 아니라 조금은 가볍고, 즐겁다. 불편한 지점을 가볍게 공중으로 날림으로써 독자를 편안하게 한다. 세상의 많은 잔소리가 이 정도의 가벼움과 관심이라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퇴직 후 죽은 남편의 재산으로 동네에 작은 편의점을 차린 할머니 사장님. 그리고 그 편의점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아침에는 할머니 사장님의 교회 동생, 점심은 똘똘한 공무원 준비생, 밤에는 명퇴당한 한 집안의 가장이 편의점을 담당하고 있다. 사장님은 교직에서 정년퇴직을 해서 혼자 먹고살 수는 있지만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없으면 안 되는 세 사람의 월급만 나온다면 편의점을 계속 유지하며 그들의 생계를 유지해 주고 싶은 작은 소망을 가지고 계신다.


어느 날 KTX를 타고 지방으로 내려가던 중 돈이며 신용카드, OPT까지 든 파우치를 잃어버려 놀란 사장님에게 공중전화로 전화가 걸려온다. 파우치를 주었다면서. 이렇게 해서 사장님은 노숙인 독고 씨를 만난다. 사장님은 독고 씨에게 편의점 밤 근무를 맡기고, 독고 씨는 그 편의점에 만난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리며 불편함을 통해 편안함을 찾아 갈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독고 씨 또한 그렇게 사람들과 만나면서 잊고 싶었던 불편한 자신을 만난다. 그리고 편안함을 찾으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살기로 했다. 죄스러움을 지니고 있기로 했다. 도울 것은 돕고 나눌 것은 나누고 내 몫의 욕심을 가지지 않겠다. 나만 살리려던 기술로 남을 살리기 위해 애쓸 것이다. 사죄하기 위해 가족을 찾을 것이다. 만나길 원하지 않는다면 사죄의 마음을 다지며 돌아설 것이다. 삶이란 어떻게든 의미를 지니고 계속된다는 것을 기억하며, 겨우 살아가야겠다. p. 266


불편한 편의점의 가장 편안한 지점은 누구도 버리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편의점의 사장님은 편의점 사장님이 되기 전에 선생님이었다. 사장님은 사람들이 왔다가 떠나는 편의점 사장님으로 가장 적합한 인물이다. 선생님만큼 많은 사람들 만나고 떠나는 직업은 흔치 않다. 만나는 학생들 중 누구도 누락되지 않게 맡은 기간 동안 함께하고 그들이 마침내 떠나갈 때도 평생의 안녕을 빌며 떠나보낸다. 그리고 또 새로운 학생을 만난다. 편의점 사장님은 그런 의미에서 이상적인 선생님이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들에게 잠시간의 안식처와 성장의 밑거름을 제공하고 따뜻하게 떠나보낸다. 그런 사장님과 함께 하는 직원들이라 손님들에게도 그 마음이 전해진다.


“그러니까요... 편의점에서 접객을 하며... 사람들과 친해진 거 같아요. 진심 같은 거 없이 그냥 친절한 척만 해도 친절해지는 것 같아요.”p. 156


뭐지? 무엇보다 이곳의 따뜻한 온기가 좋았다. 옆구리를 간질이는 온풍기의 열기도, 앞에 마주 앉아 바람을 막아주는 큰 덩치의 사내도, 직원들 생계를 위해 돈 안 되는 가게를 접지 않는다는 사장이 있는 편의점도. p. 222


세상에 이런 편의점 하나 있었으면 싶지만 실제로 존재한다면 우리는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지나친 참견과 오지랖은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불편한 편의점;이 되지 않았을까? 불편한 노숙자 아저씨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어서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자꾸 물어보고 고쳐주려는 사람이 있어서 불편하기도 한 편의점이다. 꼭 편의점이 이럴 필요는 없다. 그러나 주변에 이런 오지랖 가진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살아내기가 너무 힘들다. 사회는 자꾸 상대방에 관한 관심을 끄라고 말한다. 지나친 참견은 불편하다고. 그렇지만 뭐든 적당히가 좋은 거 아니겠는가. 순수하고 다정한 호의는 어떤 방식으로든 따스한 다음의 호의를 만든다. '불편한 편의점'은 그런 걸 믿게 하는 책이다. 내가 가진 작은 호의를 세상에 흩뿌리고 싶게 하는 책.  


“밥 딜런의 외할머니가 어린 밥 딜런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행복은 뭔가 얻으려고 가는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가 행복이라고. 그리고 네가 만나는 사람이 모두 힘든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친철해야 한다고.”p. 140


각자의 삶의 힘든 여정을 보여주어서, 다른 사람의 행동에는 안쓰러움을 느끼게 한다. 불편한 편의점은 시의적절한 소재(편의점, 고용 불안정, 코로나 등), 사람, 장소(서울역, 지하철, 강남역, 대구 등)들로 친근감을 준다. 거기에 우리가 지금 가장 필요로 하는 서로를 향한 친절을 주제로 삼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아마도 한동안은 이 인기가 지속될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벚꽃 에디션 표지보다는 초판본 밤의 편의점 표지가 더 '불편한 편의점'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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