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릴리안 Apr 19. 2022

양가적인 인간 마음을 마무하는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프랑수와즈 사강:민음사:1959;2008 번역)

1935년 프랑스 카자르크에서 태어나, 1951년 파리로 이주해서 살았던 프랑수아즈 쿠아레는 2004년 심장과 폐질환으로 사망했다. 프랑수아주 쿠아레는 본명이며 마르셀 프로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고 작품 속 인문의 이름을 필명으로 사용하여 '프랑수아주 사강'이 되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프랑수와즈 사강이 1959년에 발표한 5번째 소설로 150페이지의 중단편이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39살 1번의 결혼과 이혼, 현재 연상의 남자 친구가 있는 폴이라는 직업여성이 등장한다. 폴의 현재 남자 친구인 로제는 운수업을 하고 있다. 로제와 폴은 서로 사랑하는 관계를 5년 정도 지속하고 있다. 둘은 서로의 다른 점에 매력을 느껴 사랑하고 있지만 그 다른 지점이 좁혀지지 않은 상태다. 서로의 매력이 되었던 부분들은 넘지 못할 선이 되어 외려 서로를 멀어지게 하고 말을 멈추게 만든다. 남은 것은 사랑의 흔적과 집착뿐일지도 모른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는 열린 창 앞에서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잠시 서 있었다. 그러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하게 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는 여전히 갖고 있기는 할까? 물론 그녀는 스탕달을 좋아한다고 말하곤 했고, 실제로 자신이 그를 좋아한다고 여겼다. 그것은 그저 하는 말이었고,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어쩌면 그녀는 로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고 여기는 것뿐인지도 몰랐다. 아무튼, 경험이란 좋은 것이다. 좋은 지표가 되어준다. 스무 살 때 그랬던 것처럼 그녀는 누구에겐가 속내를 털어놓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p. 57


그러던 어느 날 25살의 시몽이라는 남자가 폴의 인생에 뛰어든다. 그는 14살이나 연하이며, 아직 자신이 누구인지 조차 잘 모르지만 열정만은 충만하다. 세상을 잘 모르고 열정과 사랑만으로 뛰어드는 무모한 어린아이 같았던 시몽은 폴에게 다가간다. 폴은 처음에 치기 어린 소년처럼 보였던 시몽보다 어쩌면 자신이 더 자신을 모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폴은 살아온 경험으로 많은 것을 잘 알고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생각들이 무너져 내린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무얼 하고 싶은지 생각해본다. 그러나 그뿐이다.


이제 그녀는 새로 개척하는 대신 갖고 있는 것을 지키려 애쓰고 있었다. 직업을, 그리고 남자를…. 오래전부터 변함없이 추구해 온 그런 것들에 대해 그녀는 서른아홉 살이 된 지금도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p. 141


새로운 시도를 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라고 생각하는 폴은 결국 원래의 삶으로 돌아갈 것을 선택한다. 폴의 선택은 답답하지만 1959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생각해보면 수긍이 간다. 우리만 해도 불과 20년 전, 그러니까 19XX년이라고 불리던 시기와 지금의 생각이나 문화가 많이 달라졌다. 폴이 이 시대에 살고 있었다면 보다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끝까지 파고들어 바꾸어 버릴 생각을 하지 못하고 이렇기도 하고 저렇기도 해 하면서, 나의 필요를 알지 못한 상태로 안주하는 폴과 로제의 모습은 현재의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 사이에 뛰어들어 완전히 새로운 모습의 시몽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시간이 흘러 경험이 많아졌다 생각하는 시기가 되면 그도 이들과 같아질까?


‘시간의 보고’라는 서점 간판을 똑바로 보면서, 그 서점에 얼마나 많은 보물과 얼마나 많은 쓰레기가 있을까 막연하게 자문했다. p. 98


마무를 사전에서 찾으면 세 가지 뜻이 나온다. 손으로 두루 어루만짐, 타이르고 얼러서 마음을 달램, 분쟁이나 사건 따위를 어물어물 덮어 버림이 그것이다. 세 문장은 비슷한 듯 하지만, 읽고 있으면 다르다.  마음을 달래는 일은 따뜻해 보이지만 그렇게 달래서 어물어물 넘어가 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달래서 위로와 위안만 주고 넘어가 버려서는 같은 곳을 돌기만 할 뿐이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인간의 마음을 마무하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고결하지 못하고, 시도 때도 없이 변하고, 한 번에 여러 가지 이기적인 생각들이 떠오르곤 하는 마음을 두루 어루만져 주기고 하고 타이그로 얼르기도 한다. 그렇지만 해결하지는 않는다. 있는 그대로 헤쳐서 보여주고 어루만진 뒤 어물어물 덮어 버리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두 번째 읽었다. 분명한 이야기 전개가 중요한 책은 두 번째 읽으면 뻔한 결말에 지루해질 수 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삼각관계라는 아주 간단한 이야기가 주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들어찬 감정을 직면하게 하는 책이다. 그래서 두 번째가 지루하지 않았다. 장면 장면이 마치 흑백사진 같은 이 책은 한 발도 떼지 못하는 마음을 마무하고 싶을 때 또 보고 싶은 책이다.


이제 그녀는 새로 개척하는 대신 갖고 있는 것을 지키려 애쓰고 있었다. 직업을, 그리고 남자를…. 오래전부터 변함없이 추구해 온 그런 것들에 대해 그녀는 서른아홉 살이 된 지금도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p. 141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도시의 등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