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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안 Mar 10. 2022

꼭! 올 거라는 믿음

앙통의 완벽한 수박밭

콜린 로브라 비탈리 글;마이롱 뒤발 그림;이하나옮김;2021



글쓴이 코린 로브라 비탈리는 작가의 말에서 안톤 체호프의 말을 인용한다.


안톤 체호프가 그의 형제에게 '너는 네 삶이 도둑맞은 수박인 것처럼 행동해야 해.'라는 말을 했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 코린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안톤이었답니다. 또 고양이에 의해 구조된 경험이 여러 번 있습니다.



코린 로브라 비탈리를 소개하는  문장이  책의 모든 것을 표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앙통의 완벽한 수박밭은 무엇 하나 빠지지 않고 완벽하게 줄지어진 수박이 탐스럽게 열려 있었다. 그런데 완벽한 수박밭에 있던 수박 하나가 사라진다. 앙통의 눈에는 다른 모든 수박은 보이지 않고 오직 사라진 하나의 수박의 빈자리만 보인다. 그는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온통  하나의 수박 생각에 잠도 자지 못하고 수박 하나가 없어진 수박밭은 돌볼 기력도 없다. 그러던 어느   고양이들이 마법을 부린다. 앙통은 고양이들의 마법으로 괜찮아진다. 앙통은 행복해진 것은 아니다. '이제 허전하거나 슬프지 ' 되었다. 고양이들의 도움으로 정신없어진 수박밭은 다시 완벽하다. 왜냐하면 사라진 하나의 수박의 자리가 어디인지 보이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코린 로브라 비탈리는 '안톤 체호프'가 말한 도둑맞은 수박은 무엇인지 수박을 가꾸는 농부 앙통을 통해 표현한다.


도둑맞는 그 수박은 다른 수박들보다 훨씬 탐스러웠을 것이다.

크고 먹음직스러운 데다 한 입 물면 아삭하면서 달콤했을 테고,

분명 어떤 수박보다 완벽했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고 아름다운 것은 '도둑맞은 000'이다. 그런데 도둑맞은 000처럼 산다면 삶은 완벽하고 행복할 것이다. 안톤 체호프는 동생에게 그렇게 살아보라 조언했다고 작가는 생각하는 듯하다. 코린 로브라 비탈리는 그 말을 오래 간직하고 있다가 여기에 한 가지를 더 한다. 도둑맞은 000, 잃어버린 000은 완벽했을 것이나 이미 사라졌다. 그걸 인정하는 과정은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없다고 해서 내 삶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그걸 깨닫는 순간은 혼란스러운 중에 보이는 작은 무엇이다.


작은 무엇은 사람마다, 시기마다 다르다. 앙통은 도둑맞는 수박이 있던 자리가 사라질 정도로 엉망이 된 수박밭에서 작은 무엇을 찾는다. '앙통의 완벽한 수박밭'과 비슷한 책으로 '모두가 다 네모반듯 씨(제롬 뤼예;큰나;2007)이 있다. 네모반듯하게 정리하고 기록하던 네모반듯 씨에게 찾아온 시련은 폭풍이다. 폭풍으로 엉망이 된 집과 정원에서 반듯 씨는 헝클어진 작은 질서를 발견하고 회복한다.


아이는 자아가 생겨날 무렵 종종 자신만의 작은 질서에 집착에 가까운 애정을 보일 때가 있다. 타인에 의해 나의 세계가 무너지는 것을 못 견뎌한다. 무너진 세계는 영영 회복되지 못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원래와 똑같은 모습은 존재할 수 없다. 자라면서 아이는 나의 질서가 계속 변화하고 수정해 나가야 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하여 편안해진다.


우리는 이미 이런 것들을 배웠지만, 종종 잊어버린다. 나의 어떤 세계는 어른이 되어도 무너지지 않을 거라 믿고 싶어 한다. 나의 어떤 세계가 망가지지 않으면 가장 좋겠고, 그러기 위해서 잘 지켜야 한다. 그렇지만 피치 못하게 무너졌을 때 '작은 무엇'으로 다시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고 받아들이는 마음도 잘 키워야 한다. 앙통의 완벽한 수박밭은 그런 마음을 키우는 책이다.


코린 로브라 비탈리이라는 글 작가가 도둑맞은 수박과 회복에 관한 글을 그림책에서 표현했다면, 마이롱 뒤발이라는 그림작가는 그런 마음을 그림으로 부드러우면서도 확실하게 들려준다. 완벽한 수박의 그림은 먹음직스럽다. 특히 앙통의 도둑맞은 수박의 먹음직스러움을 표현하는 그림은 그림 만으로도 군침이 돌게 한다. 자나 깨나 도둑맞는 수박을 그리워하는 앙통의 수박모양 바지와 거대한 몸집에 볼 홍조를 띄 앙통 씨의 모양새는 다 자란 어른 안에 있는 어린 모습을 형상화한 것 같다. 유연하고 도도한 고양이는 도움을 준다기보다는 막무가내로 나를 괴롭히는 언니에 가깝다.


그렇다. 내 삶을 변화시키는 작은 무엇은 언제나 미풍의 모습으로 오지는 않는다. 그래도 괜찮다. 내가 내가 변할 준비만 되어 있다면 무엇은 어떻게든 온다. 폭풍의 좌절 후에 작은 무엇이 온다는 믿음만 있다면 우리는 폭풍을 견뎌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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