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브:단요:창비:2022
무언가가 온전히 끝났고, 새로 시작된 것을 느꼈다.
선율 또한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책의 마지막)
서울은 언제나 한국의 동의어였다.(책의 첫 문장) 서울이 한국의 동의어였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 지 15년이 된 2057년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2042년 세상은 얼음이 녹아 바다에 잠긴다. 남은 곳은 높은 산들이고 그곳에 운 좋게 피신한 사람들만이 살아남았다. 높은 산이 많은 강원도가 한국의 중심이 되었다. 서울의 남산, 둔지산, 노고산 정도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강원도에서 보내주는 보급품과 바다에 잠수해서 건져낸 물건들로 생활한다.
이야기는 노고산에서 다이브로 살고 있는 선율이라는 아이에서 시작된다. 선율은 남산에 살고 있는 우찬이라는 다이브와 내기를 한다. 일정 기간 동안 물속에서 건져 올린 물건 중에 더 신기한 물건이 있으면 이기는 것이다. 선율은 내기에 이기기 위해 잠수를 하고 그곳에서 멀쩡한 AI 로봇을 발견한다. 로봇의 이름은 수호. 수호는 2042년에 만들어진 로봇으로 출시되지 못하고 로봇회사에 있다가 물에 잠겨 있었다. 수호를 만든 회사는 사람의 뇌를 1년 동안 스캔해서 그 사람의 추억과 성격을 가진 동일한 로봇을 만든다. 사람이었던 수호는 암에 걸렸었고, 죽음을 앞두었을 때 수호의 부모는 수호와 동일한 AI 로봇을 만들기로 마음먹고 사람 수호의 동의를 구해 로봇 수호를 만든 것이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수호는 깨어나지 못하고 그곳에 있었고, 선율에 의해 깨어난 수호는 2038년까지의 기억만 남아있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2038년의 기억을 가진 로봇 수호는 2038년과 2042년 사이에 사라진 4년을 찾기를 원하고 선율은 그걸 도와주기로 한다. 대신 남산의 우찬이와의 대결에 전리품으로 수호가 나가기로 한다. 수호는 선율에게 잠수를 배우고, 자신의 집을 찾고, 잃어버린 4년간의 기억도 찾는다.
이야기는 크게 두 개의 축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서울이 한국의 동의어였던 시절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18살의 로봇 수호의 과거 찾기이고, 다른 하나는 서울이 물에 잠기고 서울을 잃고 가족을 잃고, 문명을 잃고 15 년을 살아온 10대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과거의 기억은 이미 물에 수장되고 산 위에서 살아가는 삶에서 자란 아이들이다. 그들은 과거의 기억을 어른들에게 그리고 물속에 들어갔을 때 주운 것들도 단편적으로 알 뿐이다. 어른들은 초반에 서울이 그리워서 빠져 죽기도 했지만 이 아이들은 그 마저도 없다. 현재에 순응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시작은 환경과 AI 로봇이다. 몇 년 전부터 SF소설로 등장하고 있는 주요 소재 중 하나다. 특히 청소년 소설에서 많이 만날 수 있는 부분이라 처음에는 또 그런 이야기 인가하고 지례 짐작했었다. 하지만 작가는 비슷한 소재로 또 다른 이야기를 다루어 독자를 끌어당긴다. 이 이야기는 로봇과의 우정이나, 환경의 변화로 생긴 문제 같은 내용을 다루지 않는다. 대부분의 청소년 SF소설이 그러하듯 미래 세계의 로봇이 나오는 이야기지만 주제는 현재 우리가 가진 마음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마치 시대와 장소가 달라져도 우리의 문제는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듯하다. 고도로 문명이 발달했던 막 물에 잠기기 전의 서울도, 모든 것이 물에 잠겨버린 지금의 서울에서도 사람의 문제는 비슷하다.
어머니는 예전이었으면 그냥 죽었을 텐데, 기술이 쓸데없이 좋아져서 사람을 괴롭힌다고 했다. 살아야 할 사람이나 죽어야 할 사람이나. 나는 그게 쓸데없이도 아니었고 괴롭히는 것도 아니었다고 생각해. 여전히 그래.
하지만 어머니가 그렇게 느끼는 것도 사실이었고, 그리고,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나니 내심 홀가분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슬픈 만큼이나 마음이 가벼웠고, 그래서 미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지. 모든 게 끝났는데도 세상이 더 끔찍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어. p. 167
암에 걸린 수호와 같은 방을 썼던 암환자 아주머니 서문희씨의 아들 서문경의 말이다. 그는 암에 걸린 어머니의 병원비로 박사과정을 그만두고 일을 시작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죽음을 연장하며 살아가는 자신의 삶에 대해 비관적이었다. 서문경씨는 세상이 물에 잠기기 전에 노고산에 있다가 노고산에 피신 온 사람들과 함께 지낸다. 거기서 변한 서울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으러 또는 고향인 물에 잠긴 서울에들어갔다가 사람들이 건져 올려 살아난 우찬이의 누나를 돌보게 된다. 그러나 서문경씨는 살고 싶지 않아서 약을 거부하는 누나에게 약을 억지로 먹이지 않는다. 죽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삶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을 선택권을 준 것이다. 그 사건으로 우찬이는 노고산에서 남산으로 떠난 것이었다.
다이브는 그런 책이다. 삶을 연장하는 일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 만약 내 가족이 삶을 더 이상 연장하지 않으려 한다면... 나는 아마도 살리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런데 내가 죽음을 앞두고 삶을 연장해야 한다면.. 또는 더 이상 삶을 살아갈 의미를 찾지 못하겠다면 어떻게 하고 싶을까? 그래도 어찌어찌 살아보려 노력했겠지. 그게 삶이니까. 서문경씨가 전하는 오랜 투병 끝에 죽은 어머니에 대한 감정과, 우찬이 누나에게 약을 주지 않은 마음, 로봇 수호가 선택한 생사, 수호의 부모가 선택한 로봇이 된 수호 만드는 마음 들 모든 마음들에 내가 있었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하며 살고 있을까? 언제나 생각한다. 매몰되지 않고, 적정하게 나아가는 삶에 대해서. 그러나 그 선은 언제나 보이지 않고. 우리는 종종 잘못된 선택을 한다. 그에 대해 작가는 말한다. 문득 기회, 라는 낱말이 새삼스레 커지는 느낌이 들었다. 앞날이 아니라 지나간 일에 대해서도 기회는 있다. 그걸 매듭짓고 새롭게 만들 기회가. 선율은 더 말하는 대신 수호를 보았다. p. 165
그래 살아있는 한 우리에게 기회는 있다. 지나간 일에 대해서도. 그리고 우리 마음은 힘이 세서 아픔마저도 다른 것으로 바꾸어 살 수 있다고. 그것이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줄 거라고 말이다. 다이브는 모든 것이 무너지고 상처받아 뭉개진 마음에도 새살이 돋아날 수 있다는 마음의 힘을 믿어 보라고, 지지 말라고 말하는 그런 책이다.
그건 아마도 마음의 힘일 것이다.
뾰족뾰족한 기억 위에 시간을 덧붙여서, 아픔마저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
고통을 지우는 게 아니라, 잊는 게 아니라, 피해 가는 게 아니라,
그저 마주 보면서도 고통스럽지 않을 방법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건 다시, 다른 시간의 발판이 된다는 것. p.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