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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안 Oct 24. 2022

영원한 작별이 어쩌면 곧

작별인사(김영하;복복 서가;2022)


끈질기게 붙어 있던 나의 의식이 드디어 나를 떠나간다. 책의 마지막 문장.


생의 마지막 시점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철'이 기억하는 생의 전환점으로 되돌아가서 천천히 그가 누워있는 시간까지 거슬러 온다. 그 속도는 어떤 때는 속속들이 천천히 흘렀다가, 어떤 시기는 기억에도 남지 않기도 하고, 어떤 시기는 한 줄로 요약할 수 있게 흘렀다. 그리고 철이는 이 생에서의 의식을 잃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작별인사라는 제목과 주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이 책의 장르 즉 SF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잘 굳이 어울리지 않을 것 까지는 없지만, 이야기가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로봇 철이의 작별은 특별했다. 온 세상에 구하는 철이의 작별은 지구에 인간이 고하는 인사였다. 오래전에 멸종된 공룡처럼 우리도 드디어 지구와 작별을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철이는 미래사회 통일된 한국의 평양의 연구단지에서 살고 있었다. 소년 철이는 학교에 가지 않는다. 아빠의 말에 따르면 “과거의 학교는 일종의 수용소였단다. 부모들이 직장에 나가 일할 수 있도록 나라가 맡아주었던 거야. 피가 뜨거운 십대들을 모아놓았으니 늘 문제가 생겼지.” p. 21 곳이다.  대신 아빠는 집에서 철이를 가르치고, 연구소에 친구들과 놀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아빠가 정해준 공간에서만 지내는 것이 답답했던 철이. 그런 철이에게 완전히 다른 세상을 볼 기회라고는 볼 수 없는 재앙 같은 일이 발생한다. 아빠를 찾으러 뒤따르다가 등록되지 않는 로봇을 찾아서 잡아가는 사람들에게 들킨 것이다.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철이였는데, 잡아가는 이들은 철이가 로봇이라고 한다. 꿈까지 꾸는 자신은 로봇이 아니라고 확신했지만 결국 철이는 로봇이었다. 그동안의 로봇과는 완전히 다른 게 만들어진 로봇. 사람을 위해 봉사하고 끊임없이 웃고 있는 결국 로봇일 수밖에 없는 존재가 아니라 사색하고 우울할 수도 있는 인간의 감정에 가까운 로봇을 철이의 아빠는 만들어 내었다.


데카르트, 칸트 그리고 갈릴레오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지만 큰 의미는 없었다. 학부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는 ‘인공지능의 윤리적 선택’을 주제로 받은 아빠식 작명법이었다. 늘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어 마치 깊은 사색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데카르트, 정확한 스케줄에 따라먹고 자고 싼다고 해서 칸트라고 명명되었다. 책상 위에 있는 물건을 툭하면 밀어 떨어뜨리는 녀석은 마치 낙하 실험을 하는 것 같다고 하여 갈릴레오가 되었다. 내 이름 ‘철이’도 ‘철학’에서 따온 것이라고 했다. p. 27


철이는 수용소에서 민이와 선을 만나게 된다. 나중에는 달마라는 로봇을 만나게 된다. 그렇게 여러 존재를 만나면서 철이는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한다. 인간이 인간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사고하고 고민한다. 그렇다면 철이는 사람일까? 로봇일까? 철이의 아빠는 종국에는 뇌에 칩을 심는다. 그런 사람이 철이 아빠만은 아닐 것이다. 뇌에 칩을 심기도 하고 몸의 일부분을 개조하기도 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로봇인가 인간인가? 김영하 작가는 극 중 존재들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독자에게 당신도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


달마는 개별적인 의식은 모두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고 했고, 선이는 어차피 우리는 모두 우주정신으로 돌아갈 것이니 살아 있는 동안 자기 이야기를 완성하라고 했다. 쇄골의 버튼을 누르면 구조는 되겠지만 내 개별적 자아는 지워지고, 내 의식과 경험, 프로그램도 인공지능에 흡수돼버릴 것이다. 그러면 나는 더 이상 어떤 고통도 느끼지 않고 나라는 존재가 있었다는 것조차 잊고 통합된 의식, 기계 지능의 일부로 영생하게 될 것이다. 나는 버튼을 누르지 않기로 했다. 선이의 생각이 맞기를 바랐던 것이다. 나는 팔을 내려놓았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야겠지만, 그리고 만나도 알아보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어디서든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꿈도 없는 깊고 깊은 잠을 자면 된다. p. 298


철이는 두 가지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었다. 죽음이란 결국 무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책을 읽어 가다 보면 철이의 마지막 선택에 수긍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자연스러운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그림을 보여주긴 하니까. 작별인사를 보고 있으면 아빠의 선택은 이미 애초에 틀려 먹었고, 철이는 달마와 선이의 생각에서 어느 쪽을 선택할지 마지막까지 고민한다. 결국 모든 것을 살아보고 사유하는 철이는 선이의 생각에 손을 들어준다. 아빠가 어리석은 지금 우리의 모습이라면... 선이와 달마는 오래전 맹자와 공자가 살고 천자문을 만들던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를 표현하는 듯하다. 그 이름만 봐도. 술술 잘 읽히고, 주제도 흥미롭고 마지막에 눈물도 핑 돌았지만.. 스토리보다는 작가의 가르침이 많이 들어간 소설책은 아무래도 내 취향은 아닌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미래사회를 대처하는 나의 자세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이 책은 마치 내 머리에 들어왔던 것처럼 그 고민을 펼쳐놓는다. 그래 읽는 내내 생각했고, 읽으면서 나도 철학책을 좀 읽어 볼까 고민했다. 그리고 2주가 지나 이렇게 리뷰를 쓰면서 나만의 결론을 내려본다. 나는 나의 길을 가야겠다. 사유하는 건 중요하지만 거기에 매몰되지 말자라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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