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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안 Mar 29. 2021

소년, 떠나다

레베카 영

유유히 흐르는 구름을 바라보며 소년은 생각했어.

속삭임 하나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바꿀 수 있는지.


아~~~ 아름답다.

‘소년, 떠나다’는 표지를 보는 순간부터 이 말이 머릿속에 떠오를 수밖에 없는 그림책이다. 그림책 가득 유화로 그려진 풍경과 이를 표현하는 색은 딱 우리 집에 걸어놓고 싶을 정도이다. 전체적인 그림의 분위기가 모네의 '파라솔을 든 여인'을 연상시킨다. 책 표지의 아이는 구름이 산처럼 있고, 바다가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장에 노를 젓는 작은 배, 작은 배낭, 그리고 작은 찻잔 하나를 가지고 우리를 등지고 서있다.


소년은 이제 떠난다. 작은 배에 배낭과 찻잔을 싣고. 소년의 배낭엔 책 한 권, 물병, 담요 한 장 이 전부이며, 작은 찻잔에는 늘 놀던 곳의 흙이 담겨있다. 소년이 왜 무엇을 위해 떠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떠남은  많이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 그냥 묵묵히 배를 타고 지나가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정착할 어떤 곳을 찾고 있지만 딱히 보이지 않는다.


그런 소년에게 변화가 생긴 것은 ‘저녁 먹으라고 부르던 엄마의 목소리가 떠오를’ 때부터였다. 그다음 장에 나타는 그림에서 소년은 유년시절의 많은 것들을 배 아래로 흐르는 물속으로 흘려보낸다. 그리고 고향의 흙에서 싹이 자라나기 시작한다. 그 싹이 자라 커다란 사과나무가 되었을 때 소년은 그 나무에 올라가 땅을 더욱 적극적으로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소년의 여행은 막을 내린다. 자신이 정착할 장소를 찾은 것이다.


책의 소개를 보면 난민에 대한 이야기라고 적혀 있다.  나는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그와 동시에 성장으로 읽었다. 아이가 성장하여 소년이 되고 그 소년이 어른이 되어 새로운 자신의 보금자리를 꾸리는 이야기. 소년이 성장에는 무엇이 필요할까? 책을 보고 있으면 자신을 천천히 돌아볼 수 있는 자기만의 공간, 그리고 거친 바다와 같은 시련, 어두운 밤, 책, 따뜻한 담요가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또 무엇이 필요할까? 소년의 진정한 변화의 시작에는  엄마의 목소리와 고향의 흙, 그 안에서 나온 새싹이 있었다. 소년은 그 바다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었고, 스스로 그 바다에서 나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소년은 머무르지 않고 한발 내디디고 새로운 정착을 선택한다. 세상에는 떠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떠남의  시기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사람도 있다. 그들에게 이 책은 말한다. 당신 안에 있는 속삭임의 씨앗을 찾아보라고 그 속삭임을 찾으면 당신은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말이다. 성장은 결국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그런 성장이 있어야 스스로 뿌리내리고 나무가 될 수 있다. 땅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나무가 된 소년은 마침내 다른 사람이 기대고, 먹고, 쉴 수 있는 공간을 가지게 된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머물러 있는가, 떠남과 새로운 정착을 이루었는가 되짚어 본다. 내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다시 귀를 기울여 본다. 나는 나무가 되었는지...


이제 엄마가 된 나는, 나의 아이의 떠남에 내가 필요한 부분은 어느 정도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아이에게 시련에 쉽게 이겨낼 수 있도록 큰 배를 만들어주고, 아주 큰 배낭에 많은 물건을 넣어주고, 필요하다고 하면 같이 타고 노도 저어준다면 배는 죽죽 잘 나아가겠지만 아이는 내면의 속삭임을 듣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배가 너무 좋아서 영원히 내리지 않으려 할 수도 있겠다. 그러니 내가 아이에게 해주어야 하는 일은 아이가 떠남을 준비하고, 떠나고, 다시 뿌리를 내리는 그 시간 동안 자신 안에 있는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정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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