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을 찾다 보면 어른에 의한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라는 느낌이 오는 책들이 꽤 많다. 노인경 작가의 그림책도 나에게는 그렇게 보였다.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라고 하면 어떤 그림책을 떠올릴 수 있을까? 내용이 어려울 수도 있고, 어려운 단어를 많이 사용한 것일 수도 있겠다. 또는, 어른이 주인공인 그림책, 어른이 되어야만 비로소 이해가 되는 감정을 다룬 그림책도 있다. 여러 가지 기준이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어른의 그림책의 기준은 주제를 직접적으로 던지지 않으면서, 보고 또 보며 사색하고 음미할 수 있게 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노인경 작가의 ‘곰씨의 의자’는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일단 주인공 곰씨 자체가 아주 큰 어른같이 생겼다. 그림도 아기자기 귀여운 느낌보다는 사색적인 느낌이 강하다. 마지막으로 그림에 나타난 곰씨의 표정과 그의 마음이 끊임없이 나의 머릿속 생각들을 두드렸다. 곰씨는 자기의 의자에서 시집을 읽고 있다. 옆에는 차 한잔, 가방, 담요가 있다. 바람을 즐기는 곰씨, 음악을 듣는 곰씨, 시집을 읽는 곰씨는 '내가 꿈꾸는 삶'이다.
혼자서도 충만한 삶을 살고 있는 곰씨에게 어느 날 지친 낯선토끼씨가 나타난다. 토끼씨에게 곰씨는 자신의 벤치에서 잠시 쉴 수 있도록 한다. 토끼씨는 세계를 탐험하는 토끼니까 잠시 쉬다가 힘을 차리면 떠날 것이라 곰씨는 기대하고 있다. 새로운 만남은 즐겁지만 혼자만의 충만한 시간이 곰씨에겐 꼭 필요하다.
그런데 낯선토끼씨는 곰씨의 의자에서 우연히 만난 마을에서 쫓겨난 토끼씨와 사랑에 빠진다. 토끼씨 두 명은 결혼을 하게 되고 곰씨는 이제야 곰씨만의 시간으로 돌아가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따로 삶을 꾸려야 할 것 같은 토끼씨 부부는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서도 계속 곰씨를 찾아온다. 처음에는 새로운 이야기와 친구에 신났던 곰씨는 이제 좀 피곤하다. 그만 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벤치에 온갖 장치를 취해보지만 토끼씨 가족은 눈치도 없고 곰씨를 향한 애정은 넘친다.
곰씨는 마지막 방법으로 벤치에 똥을 싼다. 그런데 세상에나 비가 내린다.
“말도 안 돼!! 날보고 더 이상 어쩌란 말이야.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난 세상에 다시없는 친절한 곰이라고.”
그리고 곰씨는 감기에 걸려 쓰러진다. 토끼씨 가족은 그런 곰씨를 극진히 간호하여 곰씨는 깨어나고 깨어난 곰씨는 또 운다.
“저는 여러분이 좋아요. 하지만 그동안 저는 마음이 힘들었어요. 물론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은 소중해요. 가끔은 혼자 있고 싶어요. 저는 조용히 책을 읽고, 명상할 시간이 필요해요. 앞으로 제 코가 빨개지면 혼자 있고 싶다는 뜻이니 다른 시간에 찾아와 주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제 꽃을 살살 다뤄주세요.”
곰씨의 행동이나 말에서 내가 보였다. 나에게는 아마도 푸근한 인상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이 말을 걸어올 때가 많았다. 그러면 말을 걸어주는 것이 고마워서, 으스대고 싶어서, 때로는 그들이 안쓰러워서라는 이유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피곤해졌다. 곰씨처럼 나만의 시간을 가지며 충전할 때가 오는 것이다. 그러나 왜 피곤한지도 모르고, 알면서도 나를 찾아준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참았더랬다. 어쩔 땐 곰씨처럼 에둘러 표현하기도 했었다. 그러면 쉽게 알아듣고 일어나서 나의 시간과 공간을 확보해주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 많은 토끼씨 같은 사람들도 존재했다.
곰씨처럼 이런 방법 저런 방법을 사용하며 세월을 지내다 보니 나도 요령이 생겼다. 내가 힘을 잃지 않고 세울 수 있는 영역이 어디까지인지 기억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영역을 지키려 노력한다. 때로 그 영역을 넘어오려는 사람에게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만만한 사람은 아니에요. 적당한 거리를 지켜주시고, 존중해 주세요.” 예전에는 그러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저 사람에게 미움받으면 어쩌지? 화를 내면 어쩌지? 같은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타인의 시선보다 나를 돌보는 일에 마음을 쓰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쓰러진 곰씨가 일어나 토끼 씨 가족에게 하는 것처럼 나의 생각을 차근차근 이야기해주고 있는지, 여전히 그 전의 곰씨처럼 나의 마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똥이나 싸고 있는지 돌아보았다.
두려움 때문에 계속 참으면 눈치 없는 그 사람들은 자꾸 더 많이 내 영역을 스멀스멀 침범한다. 내가 의사를 표현한다고 해서 싫어하고 나를 떠난다면 안 보면 그뿐인데도 쉽지 않다. 짧지 않은 생을 살아보니 나를 진정으로 존중하는 사람이라면 나를 좋아해서 다가오는 만큼이나 내가 싫어하고 침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영역은 들어오지 않는다. 토끼씨 가족도 눈치가 없었을 뿐 곰씨를 아꼈기에, 곰씨의 고백을 듣고 곰씨의 의견을 존중하여 그를 살피고 그가 원할 때만 그의 의자에 가기로 한다. 내가 말하지 않아서 눈치 없는 토끼씨를 만들고 있을지도 모르니 눈치 없는 토끼씨 같은 사람에게는 일단 말을 해 줘 보기로 한다. 그래도 못 알아들으면 그냥 안 만나도 되는 사람 목록에 올리는 것이 옳다.
사람과 사람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인간사회에서 100% 내 목소리 내가 가지고 싶은 영역을 주장하며 살 수는 당연히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곰씨처럼 남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내가 힘들지 않을 수 있는 공간, 나만의 시간, 나에 대한 존중이 지켜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남들이 알아주길 바라며 우물쭈물하지 않고 당당하게 또박또박 큰소리로 나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어야겠지. 오늘도 열심히 연습해야지. 내 상태와 의견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