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아저씨의 동네는 가뭄이 들어 오아시스가 말라 버렸다. 아저씨는 아기코끼리들을 위해 물을 길러 길을 떠난다. 그곳에서 큰 양동이에 100개의 물방을을 모아 집으로 향하는 코끼리 아저씨.
그림책의 그림은 검정색, 회색, 하얀색, 그리고 100개의 물방울에 밝은 파란색만 존재한다. 글도 거의 없다. 처음에 코끼리 아저씨가 왜 집을 떠나 오아시스까지 갔는지와 돌아왔을 때 몇줄이 전부이다.(중간중간 의태어와 의성어가 아주 조금 나온다. ) 아주 적은 설명이지만 아저씨의 고난은 그림만으로도 충분히 설명된다. 아저씨가 가는 길이 얼마나 험하고, 무섭고, 힘들었는지, 그리고 그냥 물이 아닌 물방울들이 어떻게 지켜지고 어떻게 서서히 사라지게 되는지 말이다. 물방울들이 하나씩 사라질 때마다 내 마음까지 아파져 온다. 그리고 마침내 물방울들이 모두 사라졌을 때 코끼리 아저씨의 큰 눈 가득 고인 파란 눈물에 마음이 덜컥거리며 미어진다.(그림은 분명 어린아이가 그린 듯 아기자기 귀엽고 사랑스러운데) 마지막엔 해피엔딩으로 끝남에도 책을 덮고 난 지금도 아저씨의 눈물이 잔상처럼 남아있다.
미녀와 야수에서 죽은 야수를 미녀의 눈물로 살려내는 것처럼, 아저씨의 눈물과 함께 하늘에서 내린 비가 아저씨의 양동이에 다시 100개의 물방울을 만들었다는 설정이 와닿지 않는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마지막에 쓱 내미는 별책부록 같은 해피엔딩은 거짓말 같다. 마치 “많이 슬프지 여기 있다. 니가 원하는 행복한 결말.”하는 느낌이다. 그건 어른이 되 버린 내가 이제 갑작스런 행운과 우연을 믿지 않게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세상으로 눈을 돌려본다면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더 이상 네잎클로버를 기대할 수 없게 만들어 놓은 때문일지도.
찾기 힘든 네잎클로버의 행운을 쫓기보다는 행복의 이름을 가진 세잎클로버를 사랑해주라고 한다. 소소한 삶에서 행복을 자신이 가진 것에서 만족을 느끼라고 한다. 물론 허황된 행운을 쫓아다니는 것은 경계해야겠지만, 행운의 네잎클로버가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세상살기가 너무 팍팍하지 않을까? 가진 것 안에서의 소소한 행복도 좋지만, 어떤 것들은 나에게 안성맞춤의 시기에 하늘에서 내리는 맑은 파란색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는 희망을 보게 된다면 세상은 한층 초록초록 해질 것이다. 그러면 나도 코끼리 아저씨의 큰 눈에 맺힌 눈물보다는 맛있는 물을 먹고 있는 아기코끼리들과 그 아기 코끼리를 바라보는 아저씨의 웃음에 마음을 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