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에게 ‘너 같은 거 꼴도 보기 싫어’라고 말한다면.
미움이라는 책은 그렇게 시작된다. 얼굴이 빨갛고 안경을 쓴 더벅머리 애가 큰 소리로 말한다. 그리고 하얀 오른쪽 페이지에 ‘이런 말을 들었어.’라고 적혀있다. 순간 내 마음이 하얀 여백 위에 올려진 듯 답답해진다.
페이지를 넘기면 빨간 아이가 뒤통수를 보이며 걸어가는 장면이 등장한다. 오른쪽 페이지에는 ‘처음 듣는 말이었어. 왜 그런지 말도 안 해주고 혼자 가버렸어. 눈물이 나올 것 같았어.’라고 적혀있다. 순간 나는 그 말을 들은 사람이 되어 뒤통수를 노려보고 있다. 세 번째 장에 이르면 '너 같은 거 꼴도 보기 싫어'라는 말을 들어버린 아이가 등장한다. 나는 ‘나도 너를 미워하기로 했어’라고 말하는 아이의 표정을 본다. 나도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저런 표정이었을까? 심술 맞아 보이기도 하고, 눈물이 나올 걸 같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한 표정이다.
상처 받는 말을 들은 아이는 이제 미워하기로 했으니 종일 그 아이의 말을 머릿속에 간직하고 더벅머리 뒤통수의 그 아이를 미워하고 또 미워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깨닫는다. 미워하느라 스스로가 매우 힘들다는 것을. 그래서 더 미워하지 않기로 한다. 그리고 여전히 나를 미워하는지 알 수 없지만 나를 힘들게 했던 그 아이가 내가 그 아이를 미워할 때 힘들었던 것처럼 힘들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나는 털고 씩씩하게 걸어가는데 그 아이에게는 나의 몸이 쇠사슬이 되어 걸려 있는 그림으로. 미워하지 않고 지워 버린 내가 이긴 거로 생각하는 듯하다.
'미움'을 읽고 나니 책읽아웃의 황정은 편이 자꾸 내 마음에서 덜그럭거린다. 황정은 작가가 자신의 소설
연연세세'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가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을 우리 사회는 ‘용서하고 잊으면 네가 편하다’라는 메시지를 자주 받았다고 한다. 그것이 자꾸 성질이 났다고 한다. 고통스럽게 하고 병들게 하는 말이 '용서하고 잊으라는 요구들' 같았다고 한다. 그런 말을 한 사람이 편해지려고 나에게 한 말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순 없으니 잊으라 한다고.
그 두 사람 때문에 괴로울 때마다 아버지는 나더러 잊으래, 편해지려면 잊으래. 살아보니 그것이 인생의 비결이라며 그 말을 들었을 땐 기막혀 화만 났는데 요즘 그 말을 자주 생각해. 잊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면 잊어. 그것이 정말 비결이면 어쩌지. '연연세세의 한 부분‘
용서하고 잊는 것이 인생의 중요한 부분을 뭉개고 외면하게 하는 말은 아닐까요? 그것이 정말 비결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할까요? 연연세세를 인용하며 시인 오은의 말
책읽아웃 중에서
이전에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이 미움이라는 책에 나오는 말처럼 용서는 아니더라도 내가 잊어버리고 떨쳐 버리면 그게 이기는 거라고. 그런데 그게 진짜 이기는 걸까? 살아보니 그때 속상했던 것은 여전히 나에게 남아 가끔 내 마음을 들쑤신다. 그때 이 말을 했더라면, 물어보았더라면 지금 내 마음에 그렇게 남지 않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 수는 없지만 적어도 외면은 하지 말고 부딪혀는 봤어야 하는 거 아니었을까. 앞으로는 그렇게 살아야겠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 책을 한쪽에 놓고 있는데 아이가 우다다 달려온다. 아이는 내가 읽고 있는 그림책을 탐낸다. 내가 읽고 내려놓으면 잽싸게 들고 가서 읽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기특하게 보다가 아이의 생각이 궁금해진다. “누가 너한테 그 더벅머리 아이처럼 말하면 너는 어떻게 할 거야?” 그러면 책에 나오는 이유도 모른 채 미움받은 아이처럼 할 것 같단다. 내가 그러면 안 될 것 같다고 '왜 나를 미워하냐고'한번 따져 물어보라고 말한다. 그랬더니 그럴 용기가 나지 않나 보다. 직접 따져 묻는 대신 선생님께 이를 거라고 말한다. "그러면 집에 와서 자꾸 생각나지 않을까? 속상하고…." 그랬더니 아이가 말한다. “엄마의 사랑으로 괜찮아질 거야.”라고.
아이의 아무렇지도 않은 대꾸에 우문현답을 들은 기분이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을 따져 묻든지, 선생님께 이르든지, 잊어버리려고 하든지…. 어떻게 해도 나는 온전히 마음에서 밀어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내가 믿고 사랑할 수 있는 든든한 누군가가 있다면 마음을 바로 세울 수 있구나. 돌이켜 보니 나도 그렇게 지금에 이를 수 있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에 나에게 미움을 던진 아이의 잔영도 영영 사라지지는 않고 어떤 날 갑자기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따스한 기억과 마음들로 잘 덮어두고 살고 있다. 아이도 앞으로 그런 일들을 이겨내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을 것이다. 나는 곁에서 엄마가 줄 수 있는 사랑의 기억과 마음을 힘껏 주어보려 생각해본다.
나도 여전히 상처를 깨끗하게 치유하는 방법을 찾는 중이다. 다만 엄마의 사랑의 힘을 믿는 아이의 그 말 한마디는 앞으로 나의 평생에 보호막이 되어 상처 받은 날이면 떠올라 나를 치유해 주지 않을까 한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 삶에서 조금 더 미움을 잘 이겨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