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 밤, 반짝이는 수많은 별, 초록색 숲 사이 고랑에 한 아이가 두 손을 모으고 똑바로 누워 있다. 얼굴엔 미소가 어려 있고, 볼은 발그레하다. 까만 저고리 하얀 치마, 신발은 어디 갔는지 발가락 끝도 볼처럼 발그레하다. 오른쪽 끝에 새로 쓰기로 ‘숨바꼭질’, ‘김정선 그림책’이라고 글이 쓰여 있다.
숨바꼭질은 전쟁이 일어나고 피난을 떠나는 어린 순득이의 이야기이다. 그림 속의 입은 옷이나 동네의 정경을 보니 한국전쟁이 그 배경인 듯하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작가의 말에 작가님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만들었다고 되어 있다. 어린 순득이는 김정선 작가님의 어머니가 아닐까 미루어 짐작해 본다. 글은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라는 숨바꼭질이 전부이다. 그렇지만 그림은 다르다. 소녀의 순진함, 친근함, 따스함 옆으로 전쟁으로 힘겨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대비시켜 독자의 감정을 극대화시킨다.
같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순득이 늘 붙어 다녔다. 그러나 숨바꼭질이 시작되면서 둘은 만나지 못한다. 책 표지에 숲이랑 사이에 숨어 있던 아이는 자전거 집 순득이였다. 표지에서 따스하고 귀여웠던 장면은 내용으로 들어가서 보면 폭격을 피해 밭고랑 사이에 숨은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인 순득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슬퍼진다. 아직 어린 순득이는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마 알면서도 모른 척한 것인지 작은 것에서도 즐거움을 찾는다.
양조장 집 순득이와 강아지는 남고 자전거 집 순득이는 동생을 업은 엄마와 짐을 든 아빠와 함께 떠난다. 그때 양조장 집 순득이가 자전거 집 순득이에게 말한다.
숨바꼭질할까? 내가 먼저 술래.
자전거 집 순득이는 이 말에 기대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산을 넘을 때도 물을 건널 때도 무서운 것을 피해 이랑 사이에 숨어 있을 때도 순득이는 꼭꼭 숨으며 즐긴다. 순득이의 미소는 또 다른 순득이와 만날 날 어떤 날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사람의 마음은 어찌나 힘이 센지 바깥의 힘든 상황에서도 순득이와의 작은 약속의 기억으로 순득이는 힘을 낼 수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순득이는 조금 자랐다.
이제 내가 술래.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다시 돌아온 순득이의 동네는 여기저기 허물어지고, 사라져서 원래 우리 집도 찾기 힘들다. 그래도 순득이는 열심히 찾는다. 우리 집도, 같이 놀던 강아지도, 그리고 내 친구 박순득도.
어디 어디 숨었니?
못 찾 겠 다. 꾀 꼬 리.
강아지와 순득이가 폐허가 된 동네를 빨간 단풍잎이 물든 언덕에서 바라보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목이 멘다. 힘든 일들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 모든 것이 시작되고, 우리는 무너진 자리에 다시 멋진 우리 집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영원히 숨어 버려서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쳐도 찾을 수 없는 어떤 것들을 우리는 '잃어버린 것'이라 부른다. 잃어버린 것이 눈 속에 덮이는 모습과 어느새 소녀가 된 순득이의 뒷모습을 보며 어쩌면 잃어버린 건 영원히 가슴에 남는 것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