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상을 향한 열정 옆에서

구스토, 몬드리안을 만나다:바우터르 판레이크

by 릴리안

책의 첫 장이다. 몬드리안씨와 레드 강아지, 구스토와 옐로 강아지가 크고 예쁜 나무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몬드리안씨가 미래를 찾고 있었어요.

구스토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어요.

“미래는 기다리면 저절로 찾아오잖아요.”


다음장에서 이제 둘은 조금 더 가까이 만난다. 레드는 보이지 않고 옐로는 당황한 듯 뒤를 돌아본다. 몬드리안씨는 열변을 토하고 있고, 구스토는 긴 막대기를 하나 들고 “뭘까?” 하는 표정을 짓고 몬드리안씨를 쳐다보고 있다.


그러자 몬드리안 씨가 말했어요.

“기다리고만 있으면 전부 낡을 뿐이야. 새로운 것을 찾아야만 해.”

.... 중략

“딱총나무 열매는 미래가 아니야. 그건 언제나 있어 왔잖아. 미래란 지금은 없는 새로운 것들로 가득한 것이지.”


“어서 가요, 전 저 멀리에 있는 미래의 냄새를 맡을 수 있어요.” 레드가 말하자 몬드리안씨는 구스토와 옐로에게 작별 인사를 한 뒤 길을 떠났어요


이미 무언가를 찾아 떠난 몬드리안씨의 이야기를 들은 구스토는 이제 딱총나무 열매를 따러 다니던 예전의 구스토일 수 없다. 구스토는 옐로와 함께 몬드리안씨의 발자취를 찾아 떠난다. 처음에는 아주 익숙한 곳들이었지만 앞으로 나아갈수록 낯설다. 새로운 세상에 신기하고 즐거워하는 것도 잠시 옐로를 잃어버린다. 그리고 레드를 만난다.


“안녕. 구스토! 너도 미래를 찾고 있는 거니?”

“아니요. 옐로를 잊어버려서 찾고 있어요.”

“옐로가 아니라 네가 길을 잃은 것 같은데?”


우연히 만난 레드 덕분에 구스토는 몬드리안씨를 다시 만난다. 몬드리안씨는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고 싶어 하고 구스토는 잃어버린 옐로 생각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마침에 다시 옐로를 찾았을 때 구스토의 눈과 귀에 몬드리안씨가 만든 새로운 세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화가 몬드리안이 부기우기라는 재즈 음악을 들으며 새로운 작품을 구상했었을까? 책의 말미에 2명의 사람과 2명의 강아지는 부기우기 재즈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춘다. 나도 부기우기를 들어본다. 빠르고 경쾌한 리듬의 피아노 소리가 들썩이게 한다.


'구스토, 몬드리안을 만나다.'는 몬드리안의 초기 작품인 풍경화로 시작해서 구성주의 작품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림 속에 그대로 담아 두었다. 구스토가 몬드리안씨를 쫓아가는 과정에서 배경화면이 한적한 풍경화의 모습에서 도심의 사각과 그 사이로 새어 나오는 불빛으로 이어진다. 구스토가 지하철로 들어가면서 구성주의의 느낌은 점점 더 시각화된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 부기우기‘음악이 여러 가지 색깔 조각으로 공중에 흩어지고 구스토, 몬드리안, 레드, 옐로가 모두 몬드리안씨의 작품처럼 변한다.


“그래! 이게 바로 내가 찾던 거야! 미래는 이런 거라고!”


구스토에게 미래는 가만히 있어도 오는 것이다. 그 미래는 예측 불가능하고, 찾는 방법을 모르므로 두려운 존재였다. 몬드리안씨가 들려주고 보여주는 미래를 통해 구스토는 게 된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찾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바로 곁에 있는 미래를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걸.


“아이는 모릅니다. 단지 눈먼 늙은 화가인 저는 신께서 이 세상을 7살짜리 아이가 보고 싶어 하는 대로 창조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은 우리가 볼 수 있도록 세상을 창조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본 것을 이야기하며 서로 공유하도록 우리에게 단어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단어로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를 위해 그림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림은 신의 기억을 되찾는 것이며, 세상을 그가 본 대로 다시 보는 것을 뜻합니다.”(내 이름은 빨강 p. 141)

'내 이름은 빨강'을 읽으며 오르한 파묵이 전해주는 오스만 제국의 그림과 빨강에 대해 배웠다. 서양의 그림과 다른 형태지만 그 나라 화가들의 열정과 임하는 자세 같은 걸 읽고 나면 빨강이 가득한 낯선 그림이 친숙해진다. 오르한 파묵은 미스터리와 역사, 생활상을 적절히 섞어 누가 읽어도 오르한 파묵의 나라에 있는 그림에 이스탄불에 애정을 가지게 만들고, 우리만큼이나 서양의 문화에 잠식당하고 있는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한 동질감과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는 오르한 파묵이 만들어 놓은 '내 이름은 빨강'이라는 책을 통해 새로운 시각과 촉각을 가지게 되고 그렇게 나의 세상은 재구조화된다.


그림으로 세상을 다시 창조한다는 것. 그림뿐만 아니라 음악, 춤, 글, 영화 등등 보고, 들은 세상의 것들을 내 안에 가져와 다시 창조하는 작업은 늘 경이롭다. 몬드리안이 눈앞에 보이는 풍경을 캔버스에 옮기는 일에서 시작하여 피카소를 만나고 세상을 보면서 미래에 대한 자신의 마음속 풍경을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그린 그린처럼. 책을 읽고 그의 부기우기 음악을 들으며 몬드리안의 작품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라는 그림을 본다. 그가 느낀 미국과 재즈의 느낌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바우터르 판레이트가 표현한 몬드리안의 창작과정을 표현한 그림을 본다.


때때로 내 머리 안에 있는 어떤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고 싶은지 답이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 창작자들의 작품을 만나면 내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어떤 질문과 답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리를 재구조화해 주는 작가의 작품을 보 건 읽는 자들의 소소한 기쁨이다. 세상에 다양한 창작자들이 보여주는 재창조된 세계를 음미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들에 동화되어 정을 만들어내며 한 발짝씩 나아간다. 마치 몬드리안씨를 만난 구스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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