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 오후 10시 5분 4.16 특집 다큐멘터리 '열여덞의 기억, 스물다섯의 약속'을 방영했다. 어느새 7년이 지나 세월호에서 살아남은 단원고 졸업생들은 25살이 되어있었다.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다니며 살아가고 있는 여전히 어리고 어여쁜 그들은 그날 각자가 겪었던 이야기, 그날 이후의 삶을 담담히 이야기한다. 그리고 왜 이 다큐에 출연하였는지 말한다.
"친구들 얼굴을 기억나는데 어느 순간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는 거예요. 제일 슬픈 건 기억들이 조금씩 잊히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우리가 당사자인데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면, 누가 기억하겠어요?"
<열여덞의 기억, 스물다섯의 약속> 중에서
7년 전 그날 나는 육아휴직 중이었는데 아이가 잠이 들어도 눕히면 울면서 잠이 깨서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아이를 안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갑작스러운 속보와 침몰하는 배가 나왔다. 너무 놀라서 그날 무슨 일인지 집에 있었던 남편에게 "배가 침몰했데. 사람들이 많이 있나 본데." 했었다. 남편은 방에서 나와 보지도 않고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걱정 마 곧 모두 구조될 거야."라고 말했다. 그리고 잠시 후 "전원 구조"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그 이후로 뉴스는 시시각각으로 바뀌었다.
'기억하는 소설'은 나를 지난 4월 16일에 보았던 다큐 속으로, 다시 7년 전 그날로 데리고 갔다.
강영숙 작가의 '재해지역 투어버스'는 미국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후일담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은 투어버스를 타고 재해지역을 관광하고, 관광버스의 운전기사는 그 지역에서 어떤 일이 있어났는지 이야기해준다. 그렇게 투어를 끝낸 저녁 재즈 뮤지션의 공연장을 찾아가 음악을 듣는다. 김숨 작가의 '구덩이'는 돼지 구제역이 생긴 마을에 전염병이 생긴 돼지를 묻기 위해 구덩이를 파는 하루를 다루고 있다. 임성순 작가의 몰은 삼풍백화점을 다루는 동시에 침몰하는 배를 다루고 있다. 최은영 작가의 '미카엘라'는 잃어버린 누군가를 찾아 광화문으로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다. 조해진 작가의 '하나의 숨'은 비정규직 교사가 담임을 맡은 고3 학생인 '하나'가 나간 공장에서 사고를 당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막내야, 백화점이 왜 무너졌는지 아냐?”
만수 아저씨가 갑자기 물었다.
“부실 공사 때문에요?”
“아니야. 무너진 쇼핑몰을 쓰레기장에 버리는 놈들이 있는 나라니까, 그러니까 백화점이 무너지는 거야.”
p. 103(몰 중에서)
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든 이회창이 대통령이 되든 그게 우리의 삶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엄마는 그녀의 수학여행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손이 발이 되도록 아줌마들의 머리를 말고 있었다. 밥상머리에서 아빠는 말했다. 자본이 가난한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있다고, 앞으로는 중산층 붕괴가 가속화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빈곤 속으로 떨어지게 될 거라고. p.119
그녀 나이 서른하나, 그녀 또래의 이들은 함께 힘을 모아 무엇 하나 바꿔 보지 못했다. 세상은 그녀가 온몸을 던져도 실금 하나 가지 않을 것처럼 견고해 보였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안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그녀는 그녀의 이십 대를 통해 깨쳤다. p. 130
(미카엘라 중에서)
다시는 너네 학교에서 학생들 데려오지 말라고 상부에 보고 하겠다고도 했고, 공장에서 일할 거면 운동해서 힘 좀 길러 놓지 않고 지금까지 뭘 했느냐고 따지듯이 묻기도 했다. p. 162 (하나의 숨 중에서)
강영숙 작가의 단편은 마치 '이제 당신은 이제부터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야기를 읽으러 떠납니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재해가 아니지만 그들이 대처하는 방식이나, 재해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상처와 차별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이지는 김숨, 임성순, 최은영, 조해진 작가가 그려내는 소설은 바로 우리가 겪었던 그 이야기 들이다. 근접거리에서 촬영하여 그대로 현실을 보여주는 느낌으로 읽게 된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내가 보았던 일이고, 주인공들이 듣는 이야기는 나에게도 아픔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고 내뱉는 멈칫, 갈등, 좌절 같은 것들 안에도 내가 있었다.
강화길 작가의 '방'부터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방의 이야기는 괴기스럽다. 두 여자가 한 집에 살고 싶어 돈을 벌기 위해 이상한 물질이 뒤덮인 도시에 청소를 하러 간다. 위험한 걸 알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못하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다가 결국 매몰된다. 박민규 작가의 슬(膝)은 시대적 배경이 BC17000년이다. 빙하기가 도래하여 하나둘 죽어 가던 그때, 아이와 아내 그리고 자기가 살기 위한 매머드와의 싸움을 그리고 있다. 마지막 이야기인 최진영 작가의 '어느 날'은 우주에서 날아온 돌멩이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돌멩이가 날아오고 유력하게 지구와 부딪혀 곧 인류가 멸망할 예정인 그때 주인공 여자는 일시불을 할부로 바꾸기 위해 끊임없이 콜센터로 전화를 건다.
강화길, 박민규, 최진영 작가의 이야기는 어쩌면 오래전에 있었거나, 어쩌면 앞으로 있을 이야기들이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했으며,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지 보여준다. 우리가 만들었던 것으로든, 거대한 우주의 섭리 인한 것이든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망가질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질문한다.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이 질문은 '재해지역 투어버스'에서 시작하여 '어느 날'로 이어지는 각각의 이야기에 스며들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질문에 관하여 각자가 찾고 해낼 수 있는 것은 조금씩 다를 것이다. 그러나 각자의 자리에서 해낼 수 있는 것을 차근차근한다면, 그 모든 것이 하나로 뭉쳐져 '어쩌면 앞으로 있을 이야기'들이 일어나지 않게 해 줄 것이라 믿는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설정하고 고등학교 국어교사 3분과 장학사 1분이 모여 엮은 이 소설집은 통일성을 가지고 잘 묶여있어서 한편씩도 또, 한 권의 책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분들이 찾아 묶은 단편소설들은 실상은 성인 대상으로 출판된 작가들의 단편집에서 뽑은 것이다. 그래서 성인이 읽어도 하나의 거리낌이 없는 내용이다.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읽고 그날의 기억을 덮어버리지 말고 계속적으로 파헤쳤으면 좋겠다. 그리고 몸과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다독이며 함께 했으면 좋겠다.
하나의 주제로 엮인 이 단편집 시리즈를 볼 때면 편집해서 낸 사람들이 모여서 회의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비슷한 주제를 다룬 많은 단편들을 찾고 읽고, 또 읽었을 것이다. 그중에서 회의와 고심의 시간을 통해 8편을 고르고, 순서를 정하는 모습 말이다. '기억하는 소설'은 그들의 노고와 '잊지 않는 따뜻한 마음'을 담은 단편집으로 기억될 것 같다.
" 친구들을 오래도록 기억해준 수많은 분에 대한 고마움 덕분에 저희가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여러분께 '감사하다'라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날에 대한 아픔이 비단 저희만의 몫은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의 죽음이 허망하지 않도록 그 아픈 기억을 되돌아보고 잊혀가는 이름을 불러준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그 따뜻한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함께해 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