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위로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심채경(문학동네:2021))

by 릴리안

이 책이 처음 온라인 서점 베스트셀러에 올랐을 때 , 열심히 살라고 말하는 우리는 모르지만 그쪽 세계에서는 유명한 교수님이 내신 책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신기했었다. 어떤 매력으로 베스트셀러까지 되었을까 살짝 궁금하긴 했지만 읽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최근에 그런 책 몇 권 있었다. 제목을 다르게 지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그러다가 읽고 나면 이 제목이 정말 딱 맞아서 바꿀 수는 없겠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더 많은 사람이 읽으려면 좀 더 미끼가 될 만한 제목을 만들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고 혼자 고민하면 안타까워하는 책 말이다. 그건 어쩌면 정말 성급한 오해를 잘하는 나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들은 잘만 찾아서 읽을 텐데 말이다.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도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렇게 생각한 책이었는데 Yes24에서 만드는 팟캐스트 '책읽아웃'에서 심채경 작가님이 나와서 이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듣고 몹시 읽어보고 싶어 진 책이었다. 작가님의 이야기가 뭐 그리 좋았냐고 물어본다면 솔직 담백하면서도 많이 똘똘해 보이는 목소리로 차근차근 이야기하는 것이 좋았던 것 같다. 그렇게 풀어놓는 책 속 이야기들에 흥미가 생겼다. 천문학자로 살면서 해야 했던 학부생, 석사, 박사, 엄마, 연구원, 대학강사 같은 역할 들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새로우면서 남일 같지 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책 속에는 '책읽아웃'의 인터뷰에 나온 에피소드들이 조금 더 깊게 녹아 있고, 옆으로 퍼져 있는 또 다른 이야기들이 있다. 천문학을 어려워하는 일반 독자를 위해 흥미가 생길 만한 이론을 쉽게 풀어서 보여주는 천문학적 지식도 좋았고, 이과형 인간들의 매력에 흠뻑 빠졌으며, 여자이면서 직장이기도 하고 또 엄마인 사람의 이야기는 공감이 갔고, 이 땅의 청춘들에게 조금 더 산 사람이 보내는 따뜻한 위로를 보며 작가님처럼 말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적도에서 보는 초승달은 어떨까? 배처럼 아래쪽으로 볼록하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우리가 규정한 것이다. 하늘의 달도 우리가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보이지 않는가. p.183


북극성을 보며 집을 찾고, 사계절 늘 하늘에 떠있는 별은 북극성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남반구에서는 남십자성이 그 역할을 한단다. 초승달의 모양도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놀라운 사실. 유니버스, 코스모스, 스페이스는 모두 우주를 말하는 것이지만 조금씩 의미가 다르다. 그 외에도 조금씩 일반인들이 이해할 만하고 흥미를 가질만한 천문학적 지식을 아주 쉽게 풀어놓고 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우주와 별에 관한 낭만을 깨지 않으면서 적절한 지적 자극을 해줄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작가님이 우주를 연구하는 자신의 직업을 아주 많이 사랑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런 것들을 읽고 있으면 천문학에 관한 흥미도 생기지만 내 직업과 삶을 바라보는 방법은 어떠한가 점검하게 된다.


학회에서 발표자를 당황시키기 딱 좋은 고약한 질문 중 하나는 ‘확실한가요?’다. 그 순간 발표자의 머릿속에서는 방금 자신이 주장한 내용을 반박할 수 있는 온갖 희귀 사례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p. 95(이과형 인간입니다.)


'100퍼센트 별똥별입니다'라는 에피소드도 이와 유사하다. 문과형 인간은 두루뭉술하다. 계속 그쪽으로 파다 보면 '이 말도 옳고 저 말도 옳다.'가 점점 더 심해진다. 거기다 나는 이지적이기보다는 감정형의 인간이라 그때그때 상황이나 감정에 따라 다르게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실 이과형 사람들과 결이 달라 쉽게 친해지지는 못한다. 그러나 많이 동경하고 몰래 흠모하고 있다. 말투부터가 이지적인 그들의 세상을 조금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대충 이렇게 하다 보면 저렇게 되겠지가 아니라 정확한 원인과 결과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하여 움직여서 멋있게 보였던 그들도 실수와 당황을 한다는 것에 또 문과 감정형 인간이 공감을 느꼈다. 당황하는 지점이 나와는 많이 다르긴 하지만.


“애는?”p.104

유학을 가지 않은 국내파도, 맞벌이하며 아이를 키우는 엄마도, 다 괜찮다는 걸 알리고 싶어서였다. p. 148


육아를 할 예정이거나, 육아 중이거나, 육아가 마무리에 들어갔거나 어떤 상황에 있건 간에 한 번쯤 아니 그 이상 "애는?"이라는 벽에 부딪힌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여성이 있을까 싶다. 애가 없어서 '애는?'이라는 질문을 받고 애를 낳으면 낳아서 '애는?'이라는 질문을 던진다. 작가님의 남편이 육아휴직을 한다고 했을 때 회사에서 '이 회사의 역사에 길이 기록되고 싶으면 어디 신청해봐라'p.103였다고 적혀있다. 내 남편도 육아휴직을 할 때 회사에서 첫 육아휴직자였다. 그리고 빠른 복직을 종용받았다. 여자들도 육아휴직을 하면 너의 권리이니 잘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여전히 조직의 구멍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 스스로도 육아 휴직할 때 고민이 많았다. 경력단절이라는 거 생각보다 무섭다. 본인의 휴직 결정도 쉽지 않았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세상에 무슨 일이든 쉬운 결정은 없다. 수많은 고민과 만약을 생각하고 한 결정일 것이다. 그러니 주변 사람들은 '그냥' 지지해줬으면 좋겠다.


이 젊은 청춘에게 그따위 싸구려 축복조차 해주는 ‘선생先生’한 자가 이때껏 없었다는 게 화가 났다. 넌 잘하고 있다고, 너만의 특질과 큰 가능성이 있다고, 네가 발을 깨기만 하면 앞뒤가 아니라 사방, 아니 만방으로 길은 열릴 것이라고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가. 스무 살, 스물한 살은, 그런 이야기를 차고 넘치게 들어도 되는 나이다. p. 62


대학 강의에서 만났던 20살 21살 친구들과 작가님의 에피소드들을 보며 같은 선생先生으로서 '잘하고 있다, 너만의 특질과 가능성이 있다'라고 이야기해 주었나, 했다면 작가님처럼 마음을 움직이게 해 주었나 같은 생각들을 했다. '그녀의 다독임'에 관한 몇 가지 에피소드를 읽으며 좀 더 마음을 울리는 다독임을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결국은 진심을 담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말이다. 작가님의 글을 읽고 있으면 가르치는 학생들을 동등한 사람으로 그러면서도 먼저 태어나 세상을 조금 더 살아 본 자의 따뜻한 진심이 그대로 보인다.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를 보면서 잠시 자기 계발서 제목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자기 계발서가 아니더라도 그 비슷한 이야기가 적혀있을 거라고 지례 짐작했었다. 막상 펼쳐보니 나의 착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낭만이 가득 들어있었다. 밤하늘에 별을 보며 낭만을 이야기하던 시절의 모습을 잊고 살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함께 하늘을 보고 서로의 별자리를 찾고, 별똥별을 보며 소원을 빌어주던 그런 때 말이다. 3년 전 아이와 추석 전날 소원을 빌겠다고 밖으로 나갔었다. 아이가 하늘을 보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빌었다.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는 그때 내가 들었던 아이의 소원과 비슷한 마음이 담겨있다. 천문학자만 별을 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별을 보지 않고 사는 것이 아닌가 한다. 책을 덮고 나서 역시 이보다 더 이 책을 표현할 좋을 제목이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제목을 보고 오해한 건 세상에 나 하나뿐이었는지 꽤 오랜 시간 베스트셀러에 있었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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