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우주가 보내주는 위로

너만 모르는 엔딩(최영희(사계절 1318 문고 116권))

by 릴리안

너만 모르는 엔딩을 손에 들고 집으로 들어오는데 아이가 관심을 보인다. 나는 아이에게 티는 나지 않았겠지만, 흠칫 놀랬다. 등학생인 아이가 내가 읽는 책에 이렇게까지 관심을 보인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제목만 묻는 것이 아니라 무슨 내용인지도 궁금해한다.


“엄마 이거 무슨 내용이야?”

“응 이거 어떤 중딩이 우주인에게 납치되는 거야. 중딩을 외계인이 왜 납치했냐 하면 대한민국 중학생들이 무서워서 못 쳐들어온다는 말을 지구 정복을 위해 파견 나온 외계인 공무원이 들었기 때문이야. 그 말을 들은 외계인이 상부에 보고해서 연구원이 파견된 거야 한국에. 근데 중딩을 별로 납치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납치를 안 하려고 했는데 이 중딩이 어제 짝사랑하던 여자애가 자기 절친이랑 약속을 잡은 걸 안 다음 날이었거든. 거기다가 이 중딩이 짝사랑 한 거랑 절친과 약속을 잡은 게 전교에 소문이 난 거야. 얼마나 부끄럽겠어. 그래서 막 학교 가기 싫어서 납치해달라고 말하는 이야기야.”


아이도 눈을 반짝이며 좋아한다. 아이가 왜 이렇게 관심을 보이는가 했더니 책의 표지 덕분이었다. 나는 예쁘지 않고 오히려 괴이하기까지 한 표지를 보고 ‘꽃 달고 살아남기’를 재미있게 읽었음에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는데 아이 입장에서는 매력적이었나 보다. 표지는 광택 나는 종이에 우주, UFO가 떠 있는 영화관 같은 장소이다. 영화관 안에는 땀을 흘리는 소년과 영화를 보고 있는 소녀가 제일 앞에 있고 뒤로는 각종 외계인이 같이 영화를 보고 있다.


표지의 그은 바로 너만 모르는 엔딩 소설집 안에 있는'너만 모르는 엔딩'이라는 단편소설의 한 장면이었다. 동네 점집에 우주인이 살고 있다. 우주인은 복채를 내면 복채를 낸 사람이 원하는 우주의 기운을 받을 방법을 알려준다. 날 때부터 친구였던 여자애와 절대 결혼하지 않은 데 필요한 ‘다중우주론에 기반을 둔 미래 설계 및 가능성의 분기점 추출장치’(P.80)를 통한 우주의 변수로 결혼하지 않는 방법을 알게 된다. 바로 내일 영화관에 가서 그 여자애와 손을 잡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웬걸 이상하게 손을 잡고 싶지 않다. 손 잡기를 피하려 하는 노력을 하다 결국 손을 잡게 되었는데 그제야 알게 된다. 소년은 자신이 그 아이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런데 이미 손을 잡아 버렸으니 이 우주에서는 영영 결혼할 가능성은 제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좌절하는 소년을 위해 외계인 ‘흡’씨는 소년을 과거의 한 시점으로 보내준다. 그곳에 가만히 있기만 하면 다시 결혼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우주가 시작된다고 했지만, 소년은 좋아하는 여자애를 위해 과거에 끼어든다. 그러자 돌아온 현재의 세계가 이전과 다른 우주가 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의 세상은 수많은 같은 시간의 우주가 있기에 소년이 바꿔버린 과거가 새로운 현재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소년에게 우주인 흡씨는 한마디를 남기고 떠난다.


“호재 군은 여전히 같은 사람이죠.” p. 103


그 말을 듣고 호재는 마음속으로 외친다.

지켜봐 무슨 일이 있어도 네가 있는 곳으로 우주를 몰아갈 테니까. p.104


이 문장이 이때껏 본 사랑 고백 중에 가장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주가 바뀌어도 나는 나일뿐이고 그 아이를 사랑하는 것도 변하지 않았다. 온 힘을 다해 너의 곁으로 가겠다니 이 얼마나 우주적이고 귀여운 사랑인가. 그렇다 ‘너만 모르는 엔딩’은 주인공 호재가 짝사랑하는 민아와의 우주의 기운을 모은 엔딩을 준비하고 있는 이야기이다. 앞서 제일 먼저 아이가 눈을 반짝일 때 내가 읽고 있던 첫 번째 이야기는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이다. 외계인 공무원의 근무 태만과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야망으로 대충 조사한 대한민국 중학생 위험설은 전혀 그럴 일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며 외계에 기록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도 우주인이 등장하는 그래서 장르는 SF지만 그 안에는 너무나 평범하고 풋풋한 첫사랑야기가 들어 있다.


그러나 작가는 사랑 이야기만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 일상 곳곳에서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일을 제대로 웃기게 비꼬기도 하고, 너는 그 누구도 아닌 너 자신의 주인이라고 말해주기도 한다.


결론 ‘대한민국 중딩’이 지구의 비밀병기라는 주장은 떠도는 말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실제로 대한민국에는 중학생들이 나라의 미래라고 정의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중딩들은 외계 침략을 대비한 비밀병기도 아니고, 나라의 미래도 아니다. 그들은 자기 삶을 살아갈 뿐이며, 그네들의 삶은 언제나 현재형이다. 이 문서를 읽는 당신이 그러하듯. p. 33(기록되지 않은 이야기 중에서)


오빠는 나무젓가락을 짬뽕 그릇에 팍 내리꽂으며 소리쳤다. 생의 욕구를 자극하는 짬뽕 냄새…. 하필 불짬뽕이었다. 차해린은 눈물이 나려 했다. 카운터 위의 짬뽕 그릇. 그 옆에 놓인 꼬깃꼬깃한 나무젓가락 포장지, 포장지 따라 구겨진 ‘상해 반점’ 이란 글자. 인류가 멸종한다는 건 세상의 중국집들이 사라진다는 거였다. 그토록 정답고 맛있고 좋은 것들이 하루아침에 무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차해린은 학생부장의 부탁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p. 67(최후의 임설미 중에서)


최후의 임설미는 삼선 슬리퍼와 학교 그리고 외계인 침략을 소재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안에 적절한 비율로 왕따, 타인에 대한 이해와 친구와의 우정을 절묘하게 섞어서 이야기한다. ‘그날의 인간병기’는 개발업체의 실수로 인간병기가 된 아이의 하루를 통해 학교 폭력을 다루고 있다. 글 속에 묻어나는 코믹의 요소가 좋고, 아주 가까운 일상에서 나타나는 외계인의 존재가 친숙하다. 마치 ‘안녕 자두야’에서 자두 엄마가 사실은 외계인이었다는 에피소드와 비슷한 일상이 작가님의 머릿속에 항상 있는 것 같다. 그렇게 깔깔 웃게 하는 친숙한 SF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사람을 보듬고 위로하는 그 마음이 따뜻하다.


아이가 첫 번째 편의 줄거리를 듣더니 더 읽고 싶어 해서 조금 튕기는 중이다. 엄마 다 읽고 주겠다고, 엄마가 지금 재미있게 읽고 있다고 말이다. 다 읽고 나면 아이 빌려줘야겠다. 아이가 재미있어서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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