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학교 이름이 뭐였지? 학교에 이름이 있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학교 안에 있는 학생, 선생님, 거위 같은 살아 있는 것들이 그림이 그려지듯 살아난다. 보건실, 교실, 교무실, 운동장도 마치 내가 직접 본 것처럼 그려진다. 이건 어쩌면 넷플릭스에서 했던 보건교사 안은영 1편을 봐서 일수도 있다. 그렇지만 1편을 봤다고 해서 그 뒤의 장면들까지 그려질 수는 없다. 그러니까 이건 정말 살아있는 인물처럼 생생하게 묘사를 잘해서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2015년에도 나는 오가다 '보건교사 안은영'을 만났다. 누군가가 대출해가기도 했고, 다른 책을 정리하다가 보기도 했다. 노란색의 알록달록한 표지에 '보건교사'라는 친숙한 제목이 붙어 있어서 이상하게 눈길이 갔던 책인 것 같다. 그리고 또 혼자 책에 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읽지 않았다. 2015년 정도만 해도 유명한 소설가들이 보여주는 한국 고등학교에 흐르는 정서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민음사의 총서라는 말이 무겁게 느껴졌다. 아무리 젊은 작가가 붙어도. 그리고 넷플릭스에서 하는 '보건교사 안은영'을 보았다. 당시만 해도 정세랑 작가를 믿어서라기보다는 '보건교사 안은영'의 감독님이 '미쓰 홍당무'라는 영화의 감독님이라 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미쓰 홍당무'같은 이야기를 기대하고 봤는데 이건 뭐 SF였다. 젤리가 나오고, 운동장에서 하트 모양으로 촛불을 붙이더니, 학생들이 갑자기 옥상으로 뛰어올라가서 떨어지려고 철장에 매달리고, 거대한 두꺼비 같은 것이 운동장에서 입을 벌리고 있었다. 배경음악 또한 남달랐다. 그 와중에도 정유미 배우는 귀엽고 멋졌으며, 남주혁 배우는 촌스러운 셔츠조차도 예쁘게 소화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편을 보지 않았는데 주변에서 또 재미있다고 난리다. 그래서 다시 1편을 봤는데 역시나 다시 접었다. 나는 이런 SF는 맞지 않다는 결론으로 내리며 '보건교사 안은영'을 접었었다.
그러다 '이만큼 가까이'를 읽었다. 주변에 점점 늘어나는 정세랑 소설가의 팬들 덕분에 한편은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나마 제일 무난해 보이는 책을 골랐던 것이다. 그리고 빠져들었다. 그렇게 시작해서 10년 전부터 꾸준히 써온 정세랑 소설가의 책을 읽고 인터뷰들을 보며 소설가님 덕후가 되어갔다. 그리고 드디어 '보건교사 안은영'을 읽었다. 2015년 처음 이 책을 봤을 때 상상했던 이야기와는 완전히 다른 정세랑 월드에 초대되어 마음껏 뛰어놀았다.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나는 내 마음속에 들어갔다 온 것 같은 표현들에 고개를 끄덕였고, 어쩌면 이렇게 선생님 하다가 글 쓴 사람처럼 선생님들의 다양한 마음을 잘 표현했는지 하면서 감탄했었다. 한편으로는 안은영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의 아픈 모습과 이를 함께 감싸주며 살아하는 잔잔한 일상들에 마음이 계속 따뜻해져서 계속 읽고 싶었다. 그런데 너무 금세 읽어버렸다.
대흥의 부모님도 온건한 성격이셨고, 조부모님들도 마찬가지였다. 대흥은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갈지 스스로도 짐작할 수 없는 온건함의 계보 끄트머리에 서 있었다. 대흥의 마지막 여자 친구는 헤어지기 직전, 그런 대흥을 두고 ‘더치커피처럼 더디고 차갑고 카페인이 없다’고 폭언을 퍼부었는데 더치커피를 좋아하는 대흥이어서 더 상처가 컸다. p. 222
-그리고 대흥은 조금 덜 온건해졌다. 갑작스러운 변화는 아니었고 몇 년에 걸쳐 천천히, 대흥은 변했다. 학생들은 대흥이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을 대흥의 기대보다 자주 하곤 했다. 이를테면 ‘왜 그렇게 나쁜 사람이 선거에 뽑히나요? 왜 좋은 방향으로 일어났던 변화들이 무산되나요? 왜 역사는 역류 없이 흐르지 못하나요?’그런 질문들이었다. 예전 같으면 얼버무리거나 피했을 텐데 대흥은 최대한 덜 민감한 방식으로 설명을 해 주려고 애썼다. p. 232
온건한 성격의 역사교사 대흥의 성품은 나와 닮았다. 마지막 여자 친구에게 대흥이 제일 좋아하는 '더치커피 '같다는 말을 듣고 상처를 받았다는데.. 온건한 사람에게는 가끔 이런 폭언이 퍼부어진다. 화를 내지 않으니 상대방은 자기가 상처 받지 않으니까 충고랍시고 상처 받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나는 온건한 사람들에게 조금 더 사람들이 조심해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온건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조금 더 용기를 내어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드니까, 대흥처럼 온건함이 조금씩 사라지기는 했다. 온건함이 사라지는 동안 내 안에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나빠지는 것 같은 모습이 무서웠고, 꼰대가 되는 것 같기도 했고, 이 방향이 옳은 것인지 고민도 했었다. 그런 시절을 지나고 나니 조금 덜 온건해진 내가 좋다. 예전에 나에게 상처 주는 말을 했던 사람을 만나면 '최대한 덜 민감한 방식'으로 사과를 받고 싶다.
'보건교사 안은영'에는 학생들도 등장하지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성실하고 친절하게 근무하고 있는 선생님들이 등장한다. 내가 만나는 많은 선생님들이 거기에 있었다. 건성 인척 하지만 언제나 상담에 진심이 되는 선생님도 있고, 애들 때문에 힘들다 하면서도 의욕 넘치게 늘 새롭고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공부하고, 실행해보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선생님들이 아주 많다. 때로는 '사랑과 보호가 필요한데 얻지 못하는 학생'들을 보며 내일처럼 마음 아파한다. 부모는 아니기에 한계가 있음에 안타까워하면서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그 시기를 잘 이겨낼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아이의 눈 안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보고 희망을 얻는다.
나는 그렇게까지 친절하고 성실하게 선생님의 역할을 수행하는 많은 선생님들을 보며 늘 나의 부족함을 돌아보게 된다. 좀 덜 성실하고 덜 친절한 것 같아서. 그래도 10년 넘게 교직생활을 하면서 그거 하나는 생겼다. 멀고 희미한 가능성을 헤아리는 일을 좋아하게 되고, 평화로워 보이는 학교의 한 풍경이 영원히 질리지 않을 것 같은 예감 같은 것 말이다. 힘들다, 뭐 이러냐 이런 소리도 가끔 하지만 그 나이 때 필요한 어떤 것들을 조금이라도 채워 주워 먼 미래에 지지가 될 수 있다는 그런 믿음이 하루하루 출근하게 하는 힘이 되게 한다. 이런 것들은 그냥 마음에 이리저리 굴러 다니고 있었는데 '보건교사 안은영'을 읽으며 실체화되는 것 같았다. 17, 18, 19살의 아이들과 계속 함께 하며 조금씩 나이 들어가는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았다.
김애란 작가의 '달려라 아비'를 읽었을 때 그런 기분이 들었다.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왔는데 어쩌면 이렇게 예민하게 시대의 풍경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마음을 잘 잡아내서 글에 녹여낼 수 있을까. 부러운 마음이 많이 들었었다. 그 이전에도 훌륭한 소설가가 많았겠지만 이전의 소설가들은 나보다 앞선 세대였기에 공감보다는 존경에 가까웠다면 김애란의 소설은 공감 그 자체였고, 꾹꾹 눌러진 감성들이 형태를 갖추어 나에게 천천히 걸어오는 기분이었다. 필라테스를 하면 강사님이 끈적하게 몸을 움직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눈에 보이지 않고 잘 쓰이지 않던 근육들이 느껴지면서 비명을 지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달려라 아비'는 그런 책이었다.
정세랑 작가의 '보건교사 안은영'은 다른 방향, 다른 방식으로 내 안에 어떤 것들을 건드린다. 정세랑 작가가 '책 읽아웃'에 나와서 그런 말을 했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가 있어서 나쁜 일이 생기면 일어서지 않을 수 없다고. 소설 속 보건교사 안은영은 그렇게 약자를 위해 일어서서 보호해주는 마음을 가진 정세랑 작가의 친절함을 닮았다. 엄청 상쾌한, 미세먼지 하나도 없이 맑은 봄의 초입에 이제 막 개나리가 피어나는 그런 날 강 옆에 있는 마라톤 코스를 러닝메이트와 달리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달리는 것이라고 조금만 더 달리라고 시간을 체크하며 나의 보폭에 발맞추어 주는 메이트가 있으면 조금 더 멀리 달리게 된다. 그러면서 천천히 나의 숨겨진 근육들이 '나 여기 있어'하고 인사를 건넨다.
운동은 다 힘들지만 하지 않으면 쓰지 않는 근육들이 점점 퇴화되어 일찍 늙는다. 쉽게 다치기도 한다. 문득 이렇게 우리 안의 근육을 깨우는 소설책을 읽는 것은 나의 정신을 젊어지게 하는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들여다보고, 형태를 만들어 가면서 오래오래 쓸 수 있도록 하는 것. 젊고 튼튼해진 마음 근육으로 다치지 않고 살게 하는 것. 운동을 가르쳐 주는 강사를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나의 역량이 달라지는 것처럼, 작가가 보여주는 스펙트럼도 다양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작가들 마다 깨워주는 마음도 다르고 강도도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나에게 맞는 운동강사님이나 소설가의 책을 읽으면 좀 많이 반갑다.
건성으로 진학상담에 들어간 인표는 어째선지 하다 보니 꽤 진심이 되고 말았다. 덕분에 두 아이는 의식을 잃었던 시간을 눈치채지 못했다. p. 86
-은영은 죽겠다, 힘들다, 피곤하다를 입에 달고 살면서도 사실은 의욕이 넘치는 보건교사였다. 인표를 설득해 응급처치 교육에 필요한 더미를 중고로 업어 와서 다른 선생님들의 양해를 얻어 20분씩 수업을 했다. 20분이라 해도 전교를 돌아다니는 건 쉽지 않았다. 강당에서 한꺼번에 하지 그러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가까이서 봐야 한다는 게 은영의 주장이었다. 기도 확보하는 법, 구강 대 구강 인공호흡, 흉골 압박 심 마사지를 가르쳤는데 설령 태반이 까먹고 일부분을 기억한다고 하더라도 그중 한 사람이 언젠가 누군가를 구하게 될지도 몰랐다. 그런 멀고 희미한 가능성을 헤아리는 일을 좋아했다. 멀미를 할 때 먼 곳을 바라보면 나아지는 것과 비슷한 셈이다. p.112
-어떤 나이에는 정말로 사랑과 보호가 필요한데 모두가 그걸 얻지는 못한다. p. 125
-“생물 샘 20대 아냐?” “옷 봐. 아닐 거야.” 여학생들이 뒤에서 말했을 때, 한아름은 ‘얘들아, 조금만 작게 얘기하렴’하며 자포자기하고 말았다. p. 131
학교에서 두 사람을 가장 개의치 않아하는 무리였다. 하긴 그렇게 폭넓고 놀라운 이야기들에 푹 젖어 사는 아이들이었으니, 쉽게 편견에 사로잡힐 리 없었다. p. 183
-대흥의 설명을, 어른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세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학생들에게는 끄트머리에 그렇게 덧붙여 주기도 했는데 그러면 아이의 눈 안에서 뭔가가 반짝였다. 대흥은 그 반짝임 때문에 늘 희망을 얻었다. p. 233
-야간 자율 학습을 신청하지 않는 학생들이 슬슬 돌아가고 있었다. 급식을 빨리 먹은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고 과학 실험부 애들도 있었다. 배드민턴도 치고 캐치볼도 몇 팀 있었다. 평화로워 보이는 풍경이었다. 그대로 80년쯤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았다. p. 257
인표는 몰랐지만 다른 사람들은 인표의 그런 걸음걸이가 어쩐지 유쾌하다고까지 생각했다. 마치 한쪽 다리가 짧은 게 아니라 다른 쪽이 더 길어서, 리듬감 있게 스텝을 밟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이다. p. 19
보호 장막이 하도 세서 인간 장갑차에 가까운 사람이 무슨 장애인이람, 은영에게 인표의 다친 다리는 너무 미미한 문제로 보였다. 그런 속마음을 자주 들켰으므로 인표는 매우 억울해했다. p. 49
정세랑 작가의 글은 찰지다. 착착 달라붙은 리듬감이 있다. 마지 안은영처럼 우울하고 슬픈 일도 장난감 총과 칼을 들고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주인공 인표가 불편해진 다리로 걸어가는 장면과 안은영이 인표를 향한 부러움을 말하는 장면 같은 것을 보면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따스하고 유쾌한 시선의 오로라가 보이는 것 같아서 좋았다. 편견 없이 때로는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상대방을 바라본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이다. 이제 다시 '보건교사 안은영' 실사판을 보려고 한다. 책을 읽지 않고도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봤지만 나는 책을 읽고 난 후라 이해하지 못했던 감정선을 잘 따라가며 이제는 잘 볼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남주혁 배우가 인표가 되어 안은영에게 앙탈 부리는 대사를 실사로 꼭 한 번 들어보고 싶다.